[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한 위클리] ‘모두가 외면한’ 김병지는 어떻게 韓 축구의 전설이 될수있었나(인터뷰 上)'에서 계속

▶승부수를 띄운 꽁지머리+염색, 골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김병지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은 꽁지머리에 형형색색 물들인 헤어스타일이다. 사연이 있는 것인지를 묻자 “무명 골키퍼로서 승부수였다. 솔직히 당시만 해도 염색을 하면 비행청소년이나 날라리 이미지가 있어 시각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전 프로선수로서 튀어야한다고 생각했고 승부수를 건 것이다. 처음엔 많은 분들이 ‘염색한 골키퍼’로 보다가 실력도 좋으니까 이름을 기억하고, 헤어스타일은 제 상징이 됐다. 튀는 만큼 실력에서 구멍을 보이지 않으려했다. 그 결과 꽁지머리는 유행이 됐고 다른 선수들도 따라하더라”라며 웃었다.

2016년이 저물어가는 지금봐도 파격적이었던 김병지의 꽁지머리와 염색
“겉으로는 진보적입니다. 염색도 하고 머리도 기르고, 또 아이들과 소통을 위해 최신 유행 게임도 하고 제 나이답지 않게 SNS도 활발히 하죠. 하지만 안은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은퇴했는데도 여전히 술 담배는 안 해요. 사람들은 말술일줄 아는데 전 선수시절 항상 10시안에 잠들려 하고 경기력에 지장 있을까 저녁약속도 잡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김병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경기장 내에서 승부욕이 넘치고 실점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김병지는 “항상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섰고 어떤 경기도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라며 “누가 봐도 수비 실수로 실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골을 먹으면 정말 화가 났다. 네덜란드전에서 외신이나 국내 언론에서 ‘5실점을 했지만 김병지가 정말 잘했다’고 하지만 저에게 그 경기는 5골이나 실점한 경기일 뿐이다. 언제나 골 먹을 때 열 받고 결코 실점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실점은 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리블 사건이 축구인생 실패? 그건 실패도 아니다

김병지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경기는 1998 K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의 헤딩골이나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 활약상 등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2001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 중앙선까지 드리블을 치고 나간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난 경기나 2004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승부차기 실축에 의한 준우승과 같은 비극적인 것도 있다.

원래 희극보다 비극이 더 재밌듯 김병지 역시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고 K리그 최다출전과 같은 영광된 기록이 있어도 드리블 사건이나 승부차기 실축과 같은 과오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같은 실패의 기억이 더욱 영광된 기억과 기록이 있음에도 먼저 따라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냐는 질문에 김병지는 “내 업보다. 이미 오래된 기억들이라 추억으로 지나갔다. 굳이 지나간 과거를 갖고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현재와 미래만이 중요할 뿐”이라며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그런 사건들로 정말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감독님, 구단 등에 질타도 많이 받았죠. 바로 그것이 중요해요. 그런 사건들이 없었다면 성장할 수 없었어요. 만약 드리블 사건, 승부차기 실축과 같은 아픈 과거가 없었다면 706경기 출전은 없었을 거에요. 실패를 발판삼아 성장 동력으로 삼은 것이 지금의 김병지를 만들었다고 봐야죠. 오늘보다 밝은 미래를 꿈꿔왔기에 아픈 과거도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네요.”

악연 혹은 인연? 히딩크와 김병지. ⓒAFPBBNews = News1
그럼에도 한 번 더 물었다. 그 당시 정말 힘들지 않았냐고. 모두가 비난하고 그 비난이 자신의 미래 혹은 은퇴 후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는지. 지금처럼 ‘김병지’하면 떠오르는 나쁜 경기로 남아 되돌리고 싶거나 혹은 떠올리기 싫은 힘든 기억은 아닌지.

“많은 분들이 드리블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그 일로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축구인생 가장 힘든 시기는 대학도 못가고 현실의 벽에 막혀 공장에 들어가 축구를 해야 했을 때였어요. 전 밑바닥에서부터 국가대표까지 간 사람입니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도 국가대표 꿈을 이뤘는데 드리블 사건 같은 시련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연탄도 없어 추위에 떨어야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은 괜찮은 집에 사는데 보일러 기름이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힘들다고 여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선수들, 좋은 지도자에 고액 과외라도 받아야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하면 최고의 골키퍼가 될 수 있나’라고 물었다. 김병지는 곧바로 “답은 간단하다”며 “바로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좋은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일단 사회 구조적으로 힘들죠. 어린 시절 습관이 잘못 굳어지면 되돌리기 힘들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골키퍼 교육이 중요해요. 하지만 초등학교 골키퍼 코치는 많이 받아야 월급 150만원이예요. 누가 일하겠나요. 결국 선배한테 배우는데 그 선배도 어차피 차고 막고, 잡고만 알아요. 이걸 해결해줄 수 있는건 대한축구협회예요. 협회 차원에서 급여를 주면서 선수 육성이 돼야 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죠.”

사회적 문제를 통해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김병지는 또한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도 지적했다. “한국 축구에서 골키퍼가 만약 잘하고 운동신경이 있으면 골키퍼를 안 시키고 필드플레이어를 시켜요. 저도 그랬잖아요. 조금만 잘하면 골키퍼는 안 시키니까 좋은 골키퍼가 나올 수가 없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골키퍼는 ‘디테일’의 싸움이예요. 같은 펀칭이라도 어떻게 치고 어떤 그립을 잡느냐에 따라 다 달라요. 공격은 5개 중에 하나만 넣으면 되지만 골키퍼는 5개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역적이예요. 그렇기에 배움이 필요해요. 만약 주변에 좋은 지도자가 없다면 찾아가서라도, 아니면 유명한 골키퍼 코치를 찾아가 고액 과외라도 받아야 해요. 아까운 돈이라고 여기면 안돼요. 좋은 지도자에게 배워 좋은 선수가 된다면 과외비의 100배, 1000배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요. 사회적으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라도 투자를 해야 좋은 골키퍼가 될 수 있어요.”

프로축구연맹 제공
▶골키퍼 출신은 감독이 될 수 없다? 편견 깨보겠다

현재 유럽축구 해설을 맡고 있는 김병지의 은퇴 이후 꿈은 무엇일까. 공익적인 일은 물론 재활에 대한 관심, 골키퍼 교육에 대한 관심 등 하고 싶은게 많다는 김병지는 꼭 ‘감독’으로서 성공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나 세계 축구계에 골키퍼 출신 감독은 거의 없다. 현재 K리그 감독 중 골키퍼 출신은 없고 세계적으로도 FC서울 감독도 지내고 터키의 월드컵 3위를 이끈 세뇰 귀네슈 감독이나 이란 대표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정도를 제외하곤 찾기 힘들다. 아무래도 골키퍼 출신은 전술적으로 약하고, 필드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길이 되지 않겠냐는 말에 “제 인생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직장팀에서부터 국가대표, K리그 최다출전 기록까지 세운 나다. 내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예전에도 직장팀에 있을 때 프로를 꿈꾼다니까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해냈다. 감독 역시 편견에 도전하는 것이다. 현재 해외축구 해설을 하는 것도 자세히 공부하면서 세계 축구 흐름을 읽고 K리그에 뛰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공부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농구에서 감독을 많이 배출하는 포지션이 가드죠? 야구는 포수고요. 축구에선 골키퍼가 비슷한 역할이예요. 후방에서부터 공을 뿌려주고 뒤에서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두 지켜보죠. 뒤에서 지켜보며 혼잣말로 ‘이렇게 움직여야지, 저렇게 움직여야지’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해요. 잘 뛰고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어요. 또한 경기 중 상대 혹은 우리의 교체 선수 몸 푸는 것, 들어올 경우 예상 수비법 등을 모두 생각해오며 700경기를 보냈어요. ‘골키퍼는 감독이 안 된다’는 편견, 깰 수 있지 않을까요?”

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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