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16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어느새 폐회(22일)를 눈앞에 두고 있다. 120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 성화가 남미 대륙에서 타오른 가운데 206개국 1만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동안 흘려온 땀방울의 결실을 맺기 위해 열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냈다.

어느 올림픽에서나 그랬듯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반짝반짝 떠오른 스타 선수들이 대거 탄생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아쉽게도 저문 별들도 많았다. 리우올림픽 무대를 통해 새롭게 뜨고 진 다양한 별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 ‘2관왕’ 짱콩과 까불이, 그리고 “할 수 있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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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장혜진(29)과 구본찬(23)이 양궁 2관왕에 나란히 오르며 다시 한 번 ‘신궁의 나라’가 어디인지를 확인시켰고, 박상영(21) 역시 대역전 드라마를 통해 남자 펜싱 에페에서 기적과도 같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연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선수들이다.

먼저 장혜진은 뒤늦게 빛난 만큼 그 의미가 더욱 값졌다. 여자 양궁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에서도 모두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같은 결실을 맺기 전까지 그녀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활시위를 잡은 장혜진은 2014년 27세가 됐을 때 비로소 월드컵 대회 개인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한국대표 선발전 후보 선수 최종 4인에 이름을 올렸으나 막판에 최현주에게 밀려 런던행이 불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번 대회 역시 강채영을 단 1점 차로 제치고 힘겹게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었으나 당초 런던 2관왕에 등극했던 기보배와 세계랭킹 1위 최미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혜진은 ‘신동’이 아닌 늦깎이 선수 역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여기저기에 배긴 굳은살과 퉁퉁 부운 손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금껏 누구도 여자 개인전 2연패를 달성하지 못했을 만큼 언제나 치열한 내부 경쟁을 펼쳤던 한국 양궁이 이번에는 ‘짱콩’ 장혜진이라는 최고의 스타를 탄생시켰다.

구본찬 역시 한국 남녀 양궁대표팀이 올림픽 최초로 전 종목을 석권하는 대업에 마침표를 찍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 양궁은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중국의 홈 텃세에 시달려 여자 개인전 우승을 아쉽게 놓쳤고, 남자 양궁은 2012년 런던에서 동메달에 머문 가운데 개인전의 경우 2012년에 비로소 오진혁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처럼 다소 엇박자가 있었던 가운데 구본찬의 활시위에서 마침내 한국의 전관왕 등극이 이뤄진 것.

특히 구본찬은 개인전 16강에서 세트 스코어 3-3으로 팽팽한 승부를 이어가던 중 4세트 모든 화살을 10점에 적중시키는 강심장의 면모를 뽐냈고, 8강과 4강 역시 슛오프를 통해 극적인 같은 승리를 가져갔다. ‘까불이’라는 별명과 달리 중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최고의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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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금메달 스토리는 더욱 기적에 가까웠다. 국제펜싱연맹 랭킹 21위에 머물러 있던 박상영은 32강부터 본인보다 높은 순위에 위치한 상대를 연이어 격파했고, 결승에서도 백전노장 제거 임레(헝가리)를 꺾는데 성공했다.

특히 박상영은 10-14까지 밀리며 단 1점만 내줘도 금메달을 놓치는 최대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기어이 승부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며 조종형 총감독 역시 막판에는 포기했다고 언급했을 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었으나 박상영만큼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중계카메라에 잡힌 그의 혼잣말 ‘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이번 대회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밖에 세계적으로는 여자 기계체조의 ‘흑진주’ 시몬 바일스(19·미국)가 4관왕에 등극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바일스는 비록 평균대에서 미끄러지는 실수를 범해 동메달에 그쳐 전인미답의 5관왕 등극은 놓쳤지만 단체전과 개인종합 금메달, 도마에 이어 마루 종목을 싹쓸이하며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바일스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성장했고 어머니가 마약과 알콜 중독에 빠져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한 흑인 선수들이 그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체조 종목에서 145cm의 작은 신장 역시 핸디캡으로 작용했지만 바일스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체조 여제로 우뚝 섰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의 6관왕 도전에 유일하게 제동을 건 조세프 스쿨링(21·싱가포르)도 리우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스쿨링은 수영 남자 접영 100m 결승전에서 50초39의 기록으로 터치 패드를 찍어 마이클 펠프스(51초14)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미 펠프스는 접영 100m 올림픽 3연패 및 세계신기록(49초82) 보유자였고, 지난해 4월 자격정지 징계를 마친 뒤 8개월 만에 가진 복귀전에서도 1위에 올라 우승이 유력했지만 스쿨링이 대이변을 연출해냈다. 준결승부터 50초83으로 가장 좋은 기록을 남겼던 스쿨링은 이같은 성과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결승에서 또 한 번 입증해냈다.

무엇보다 스쿨링은 13세 때 수영장에서 우연히 펠프스를 만나 사진을 찍었고, 이를 계기로 수영 선수의 꿈을 키워온 것이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 고개 숙인 마린보이, ‘우생순’ 바통 넘긴 왕언니

‘마린 보이’ 박태환(27)은 그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번 대회에서 끝내 고개를 숙였다. 본인의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예선 통과에 실패했고, 100m 역시 59명 중 공동 32위에 그쳤다. 마지막 1500m는 고심 끝에 출전을 포기한 채 중도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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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약물 스캔들로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은 물론 지난 3월까지 1년 6개월간 징계를 받았던 박태환은 징계 해제 후에도 ‘금지약물 적발 선수는 향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이중처벌을 명시하던 대한체육회와 스포츠중재재판소까지 가는 법정싸움을 벌였다. 올림픽 최종명단 제출 직전인 7월 초 극적으로 리우행을 확정짓고 담금질에 들어갔지만 준비 기간이 너무 촉박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금지 약물 적발 자체만으로도 많은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아야 했고, 반대로 여전히 그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은 국민들도 있었지만 그는 실망감을 되돌리지도, 기대감에 부응하지도 못한 채 쓸쓸히 이번 대회를 마쳤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 결정이 아직은 시기상조임을 밝힌 가운데 만약 박태환이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냉정히 전성기 기량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자 핸드볼의 오영란(44)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21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오영란은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임영철 감독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8년 만에 다시 복귀를 결심했다.

여자 핸드볼 뿐 아니라 한국 선수단의 최고령 왕언니로서 마지막 ‘우생순 신화’를 노려봤으나 1승1무3패로 끝내 조별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1984년 LA 올림픽을 시작으로 여자 대표팀의 8회 연속 4강 진출의 신화도 아쉽게 막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후배들의 뒤를 든든히 지킬 수 없게 됐지만 오영란은 “너희들의 우생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는 격려를 마지막까지 잊지 않았다. 2020년에는 오영란의 뒤를 이을 새로운 별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연합뉴스 제공
이 밖에 세계적 스타 중에서는 남자 농구의 마누 지노빌리(39·아르헨티나)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게 됐다. 지노빌리는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팀 던컨, 토니 파커와 함께 소속팀 샌안토니오를 전통적 강호로 발돋움시킨 주역이지만 사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 더욱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제 지노빌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준결승에서 당대 최강 미국을 꺾고 결승에서는 이탈리아까지 격파하며 조국에 역사상 첫 농구 금메달을 안긴 장본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세계적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보다도 영웅으로 대접 받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며, 메시 역시 지노빌리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노빌리는 이번 리우 올림픽 8강전이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경기로 남게 됐다. 공교롭게도 12년 전 그가 영웅으로 떠오른 계기가 됐던 미국이 이번에는 지노빌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세계 최고의 ‘육상 전설’ 우사인 볼트의 맞수 저스틴 개틀린(34·미국)도 다소 씁쓸한 마지막 올림픽을 치렀다. 15일 열린 ‘육상의 꽃’ 남자 100m에서는 9초89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결국 라이벌 볼트에게 0.08초 뒤져 짙은 아쉬움을 삼켰다.

개틀린은 200m를 통해 설욕을 다짐했으나 이번에는 준결승에서 20초13으로 조 3위에 그쳐 결승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4년 뒤 만 38세에 접어드는 개틀린에게 이번 대회는 사실상 볼트를 밀어낼 가능성이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었지만 과거 약물 복용으로 인해 관중들로부터 야유만 잔뜩 받은 채 일정을 마쳐야 했다.

한편 리우의 ‘저문 별’들이 대부분 마지막 순간 아쉬움을 삼킨 것과 달리 마이클 펠프스는 ‘영원한 강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은퇴 의사를 전했기 때문에 ‘저문 별’로 분류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원히 빛난 별’로 남게 된 선수가 바로 펠프스다.

펠프스는 리우에서도 5관왕에 등극한 것을 비롯해 은메달도 1개를 보태 개인 통산 올림픽 메달 숫자를 28개(금메달 2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까지 늘리는 기염을 토했다. 더 이상 펠프스를 올림픽에서 볼 수 없게 됐지만 그가 남긴 업적만큼은 평생 올림픽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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