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세상은 말한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 없다고.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는 ‘노력과 재능, 운’ 세가지 요소가 골고루 갖춰줘야 한다고.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를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천재가 노력하고 즐기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게 된다. 세상은 불공평하게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의 영역이 있다.

근대 철학의 거성인 이마누엘 칸트는 천재에 대해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지금 소개할 이들은 최고의 노력을 다해야 한 분야에서라도 최고가 된다는 기존의 규칙을 깨고 압도적 재능으로 새 규칙을 만든 예시들이다.

왼쪽부터 데니스 키메토, 보 잭슨, 베이브 루스. ⓒAFPBBNews = News1
어려서부터 노력? 24세에 시작해 세계기록 세운 키메토

마라톤 세계 기록 보유자인 데니스 키메토(32·케냐)는 24세까지 옥수수 농사를 하고 일과 후에는 소떼를 관리하는 농부였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뛰는 걸 좋아하고 실제로 빠르기도 했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든 케냐의 흔한 서민이었다.

하지만 키메토는 24세였던 2008년 케냐의 마라톤 영웅인 조프리 무타이의 눈에 발탁된 이후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다. 마라톤 전문 교육을 받은 지 3년 만(27세)이었던 2011년 데뷔 대회였던 케냐 나이로비 하프 마라톤(21km)에 1시간1분30초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베를린 하프 마라톤에 출전해 세계기록과 고작 49초 차이인 59분14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같은해 풀마라톤(42.195km)으로 전향하자마자 2시간4분16초의 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2014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2분57초의 세계기록을 세우며 현재까지도 인간이 깰 수 없는 벽이라 여겨졌던 2시간3분대를 깬 유일한 인간으로 남아있다. 풀코스 도전 2년만에 일궈낸 업적이었다. 2시간2분57초의 기록은 42.195km인 마라톤에서 100m를 17초대를 뛰어야만 가능하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기뻐하는 데니스 키메토. ⓒAFPBBNews = News1
결국 키메토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24세에 처음으로 전문 교육을 받고 3년 만에 하프마라톤에서 세계 기록에 49초차, 그리고 풀마라톤 전향 2년 만에 세계 신기록 달성이라는 믿기 힘든 일을 해냈다. 어려서부터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메토의 사례를 보면 재능이기는 노력 없음이 드러난다.

야구와 풋볼 동시 최초·최후의 올스타, 보 잭슨

보 잭슨(54·미국)의 경우 천부적 재능으로 미국 스포츠계를 양분하고 있는 풋볼(미식축구)과 야구에서 최정상의 위치에 올라섰던 경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부적인 운동재능을 보인 보 잭슨은 고교 졸업 무렵 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로부터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을 받고도 대학 진학을 위해 포기한다. 대학 졸업시즌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풋볼(NFL)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에 전체 1라운드 1번지명을 받았으나 야구와 병행을 허가하지 않자 스스로 거부했다. 잭슨은 프로에 가기도 전에 MLB 드래프트 2라운드, NFL 드래프트 1라운드를 모두 거부한 것이다.

잭슨은 메이저리그 1986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먼저 야구에 데뷔한다.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4라운드 지명을 받으며 야구를 시작한 그는 이례적으로 지명을 받자마자 빅리그 데뷔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유망주라도 1년 이상의 마이너리그 경험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곧바로 데뷔했다는 것만으로 잭슨이 얼마나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외야수 겸 지명타자를 맡은 잭슨은 풀타임 1년차인 1987시즌부터 1990년시즌까지 4년간 연평균 27홈런에 20도루를 기록한다. 특히 1989년에는 32홈런 105타점을 기록하며 올스타에까지 선정됐고 올스타전 MVP까지 거머쥔다.

야구 선수로서의 보 잭슨. ⓒAFPBBNews = News1
그 사이 잭슨은 풋볼도 병행한다. NFL 1987 드래프트에서 자신에게 야구와 병행을 허용한 LA 레이더스에서 프로 풋볼을 시작한 것. 비록 야구시즌이 끝나고 뛰기에 시즌 절반을 조금 넘는 출전에 그쳤지만 시도당 평균 5야드 이상을 기록하는 특급 러닝백으로서 활약한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뽑힌 이듬해인 1990년에는 풋볼 올스타전에도 출전하며 MLB, NFL 동시 올스타전에 나간 선수로 기록됐다.

그러나 잭슨은 1990년 NFL 플레이오프에서 상대의 태클에 엉덩이뼈를 다쳐 선수 커리어를 마감해야했다. 잭슨은 풋볼은 그만두고 야구는 지속했지만 워낙 큰 부상이었기에 야구에서 성적도 좋지 못했고 결국 고작 31세의 나이에 선수생활을 모두 그만둬야했다.

그럼에도 미국 스포츠를 양분하고 있는 NFL과 MLB에서 모두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최정상의 운동능력을 보인 보 잭슨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말해 입 아픈 베이브 루스, 알고 보면 가장 저평가된 ‘투수’

베이브 루스가 야구 역사상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대단한 ‘야구선수’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루스는 타자로서도 뛰어났지만 투수로서도 엄청난 선수였다.

루스는 데뷔 당시 투수와 타자를 병행했다. 더 두각을 드러냈던 것은 사실 투수가 먼저였다. 1916시즌에는 평균자책점 1.75에 23승을 기록했다. 특히 323.1이닝을 던지며 단 하나의 피홈런도 허용하지 않은 엄청난 기록을 보유했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는 14이닝 1실점 완투승을 따내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기도 했다.

1918시즌에는 투수로 13승, 타자로는 95경기만 뛰고 11홈런을 때려 당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하지만 타자로서 흥행성이 더 있었기에 타자에 전념했고 결국 우리가 아는 루스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AFPBBNews = News1
많은 전문가들이 뽑는 야구 역사상 투수 1위로 꼽는 월터 존슨을 넘어 평균자책점 1위(1916년)를 차지하기도 했던 루스에 대해 야구 기자 제이슨 스타크는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좌완 투수 1위로 그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루스가 투수를 ‘못해서 안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안한 것’임은 그의 말년을 통해 알 수 있다. 35세의 나이였던 1930년, 무려 9년 만에 선발투수로 나서 9이닝 3실점 완투승을 거둔 것. 38세였던 1933년에도 선발로 나서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루스가 얼마나 대단한 운동신경을 가졌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다보니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는 당시에 지명타자 제도가 있었다면 하루는 선발투수로 등판, 휴식일에는 지명타자로 출장해 400승-800홈런이 가능했을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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