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기억한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2016시즌 홈 개막전. 메이저리그 25인 선수 소개를 할 때 김현수(28)가 등장하자 홈구장 캠든야즈에서는 야유가 흘러나왔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파동을 지켜본 현지 팬들은 김현수가 팀의 시즌 첫 걸음부터 발목을 잡았다고 야유했고 국내에서는 ‘그런 대우를 받을 게 뻔한데 왜 굳이 메이저리그에 남았느냐’고 핍박했다.

그리고 두 달이 흐른 6월 초의 현재. 경기장에는 김현수 얼굴 사진을 잘라 응원도구로 쓰는 현지 팬들이 있고, 중계화면에 심심찮게 김현수의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는 관중들을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두산 시절, 그것도 초기 두산 시절 불렀던 별명인 ‘사못쓰(사할도 못치는 쓰레기)’가 다시 김현수 앞에 붙고 있다. 김현수는 두달 전만해도 정말로 핍박을 받았지만 현재는 너무 잘해서 장난 섞인 구박을 받고 있다. 김현수는 참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이제는 볼티모어의 어엿한 핵심선수가 된 김현수. ⓒAFPBBNews = News1
마이너리그 거부권 파동, 미운 오리 된 김현수

김현수는 스프링캠프에서 몹시 부진했다. 17경기에 나섰으나 타율은 2할도 넘지 못하는 1할7푼8리. 장타는 하나도 없었다. 볼티모어는 김현수를 영입할 당시 ‘주전 좌익수’를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17경기에서 부진한 김현수의 모습을 보자 황급하게 마이너리그행을 강요했다. 미국 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오라는 것.

그러나 김현수는 계약서에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포함시켰었다. 그럼에도 볼티모어는 무리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김현수를 ‘미운 오리’로 매도했고 마이너행을 강요했다.

그럼에도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 남았고 볼티모어는 김현수에게 출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으로 신경전을 펼쳤다. 간혹 나올 때마다 안타를 때려내도 곧바로 벤치로 보내기 일쑤였고 한번 벤치에 앉으면 일주일이고 한없이 기다림만 반복됐다.

서서히 기회 잡던 김현수, 운명의 5월 26일

혹독한 4월을 보냈다. 4월 고작 6경기에 나섰고 선발은 4경기였다. 하지만 출전할 때만큼은 멀티히트를 쳐내며 5할의 타율로 타격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5일 쉬었다 한 경기 나가고 다시 일주일을 쉬는 등 불안한 출전기회에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현수는 버텼다. 그리고 경쟁자인 조이 리카드의 돌풍이 사그라지길 기다렸다. 그 시점은 5월 26일이었다. 4월 한 달 동안 2할8푼의 타율로 맹활약하던 리카드는 5월 2할1푼4리로 무너졌다. 아무래도 작년에 싱글A에서 시작했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

리카드가 주춤하던 사이 김현수가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5월 2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원정부터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했던 김현수는 이 경기에서 2루타 2개에 3안타 1볼넷 경기를 펼치며 맹활약했다. 이 경기부터 김현수는 8일까지 팀의 14경기에서 12경기(11선발)에 나서며 주전 대우를 받았다.

홈개막전에서 야유를 받던 김현수. ⓒAFPBBNews = News1
‘사못쓰’의 부활이 반갑다

김현수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타격기계’다. 두산시절부터 타격에서만큼은 기계처럼 기복 없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리고 ‘타격기계’와 동일선상으로 ‘사못쓰’라는 별명도 유명했다. ‘4할도 못치는 쓰레기’라는 별명은 어감은 이상하다. 하지만 야구에서 4할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김현수는 그래도 4할이라도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기에(2008, 2009시즌 타율 0.357) 붙여진 ‘사랑 담긴 구박’이 바로 사못쓰다.

한동안 ‘사못쓰’라는 별명은 사라졌다. 김현수가 4할은커녕 3할도 못친 시즌이 나오고(2012년) 미국 진출 후 스프링캠프에서 부진했기에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사못쓰’라는 별명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8일까지 3할7푼8리로 4할에 근접한 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4할을 치거나 3할7푼8리의 타율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이 별명이 회자된다는 것 자체가 김현수가 부활했다는 것과 동일어이기 때문에 반가울 수밖에 없다.

타구의 질도 나아지고 있는 김현수, 운이 다가 아니다

8일까지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80타석 이상을 들어선 320여명의 선수 중 타율 3위(0.378), 출루율 2위(0.446)를 기록 중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잘하고 있는 것. 분명 운이 따르고 있기에 가능한 성적이다.

그러나 운이 다가 아니다. 김현수는 시즌 초 멀티히트를 때려내더라도 지나치게 내야안타나 땅볼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팬그래프닷컴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현수는 분명 땅볼이 많지만(땅볼 57.6%, 메이저리그 평균 45.2%) 땅볼타구 평균각도는 -3.3도로 ML 4위였다. -5도와 0도사이의 타구각도를 보이는 땅볼타구의 평균 타율은 3할1푼5리다. 즉 김현수는 강한 땅볼을 만들어내기에 '평범한 땅볼'이 아닌 ‘안타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강한 땅볼’을 쳐내고 있음이 드러났다.

땅볼도 뛰어나지만 김현수는 서서히 공을 공중으로 보내고 있다. 장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고 아웃이 되더라도 외야 뜬공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시즌 초에 비해 많아졌다.

편안해진 마음가짐과 한국시절로 돌아간 타격폼 때문이다. 시즌 초에는 무조건 안타라도 치기 위해서 흐트러진 타격폼과 메이저리그의 강속구와 변화무쌍한 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출전기회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고, 시즌 초 무너졌던 타격폼의 수정이 이뤄졌다. 또한 80타석 이상 들어서며 메이저리그 공에 대한 적응도 서서히 되고 있다. 본인 역시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털어놨다.

ⓒAFPBBNews = News1
물론 지속적으로 4할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제 김현수에게 내려갈 일만 남았을지 모른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내려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일이다. 그리고 타율이 1할이 떨어져도 3할에 근접한 타율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편안할 것이다. 어차피 시즌초에는 ‘왜 뛰냐’고 핍박받던 김현수가 아닌가. 이제는 4할을 못 친다고 사랑의 구박을 받는 상황과는 180도 달라지게 만든 것도 본인 스스로 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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