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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100년 뒤에도 계속해서 전해질 이야기다.”

레스터 시티가 써 내려간 한편의 동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레스터 시티는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2위 토트넘 홋스퍼가 첼시를 꺾지 못하면서 2015~2016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정상에 섰다. 레스터 시티의 리그 우승은 1884년 구단 창단 이후 132년 만에 처음이다.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확정되자 잉글랜드 전 국가대표 출신인 제이미 캐러거(38)는 "100년 뒤에도 전해질 이야기"라며 크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기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시즌 전 현지 베팅업체들은 레스터 시티가 우승할 확률을 가수 앨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거나, 혹은 스코틀랜드 네스호에 괴물이 실제로 존재할 확률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산술적으로 표현된 그들의 우승 확률은 0.02%에 불과했다.

레스터 시티는 이 확률을 뚫어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전력을 보강해온 다른 팀들을 제치고 정상에 섰다.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감독과 초라한 몸값의 선수들이 똘똘 뭉쳐 만든 기적이어서 그 의미는 더욱 값졌다. 전 세계적으로 그들을 향한 뜨거운 박수와 찬사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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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레스터 시티의 시즌 전 우승 확률

창단 이래 레스터 시티는 영국 축구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1부리그보다 2부리그에 속한 시즌이 더 많았고, 7년 전에는 3부리그에서 뛰었다. 1부리그에 승격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었다. 올 시즌은 레스터 시티가 1부리그 승격 후 맞이하는 ‘2번째 시즌’이었다.

선수단 면면은 초라했다. 세계적인 선수도 없었다. 트랜스퍼마르크트 자료에 따르면 시즌 개막 전 레스터 시티 선수단 전체의 몸값은 약 1116억원, 20개 구단 중 17위에 불과했다. 이는 당시 1위 첼시(6785억원)의 6분의1 수준에 불과했고, 리그 평균(2581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쳤다.

당초 레스터 시티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은 자연스러웠다. 수년간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팀들이 리그 정상에 등극하던 흐름과 뚜렷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었던 까닭이다. 오히려 그들은 생존 경쟁을 펼쳐야 하는 팀으로 분류됐다. 0.02%에 불과했던 그들의 우승 확률은 이러한 정황들이 뒷받침된 현실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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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에리 감독과 선수들이 빚어낸 ‘기적’

그러나 시즌의 막이 오르자, 레스터 시티의 돌풍이 리그 판도를 흔들었다.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선수비 후역습’ 전술에 상대팀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나갔다.

그 중심에 새로 지휘봉을 잡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이 있었다. 그는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술을 짰고, 깜짝 파티를 하는 등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을 이끌었다. 리그에서 우승을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아버지 같은 리더십으로 팀을 지휘했다.

선수들도 저마다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8부리그 축구선수로 뛰던 제이미 바디(29·잉글랜드)는 22골(36라운드 현재)을 터뜨리며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길거리에서 공을 차던 리야드 마레즈(25·알제리) 역시 17골11도움이라는 맹활약 속에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우뚝 섰다.

뿐만 아니라 주장 웨스 모건(32·자메이카)을 비롯해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25·프랑스)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30·덴마크) 등도 저마다 맹활약을 펼쳤다.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들은 라니에리 감독의 무한 신뢰 속에 리그 최정상급 선수들로 거듭났다.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팀 분위기, 여기에 짜임새 있는 전술과 선수들의 기량이 더해지자 고스란히 결과로 이어졌다. 시즌 초반부터 거센 돌풍을 일으켰던 레스터 시티는 개막 후 17경기에서 단 1경기만을 패하며 선두 경쟁을 펼쳤다. 곧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그들의 경기력은 점점 더 무서워졌다.

특히 우승이 가시권으로 들어오던 3월 이후, 레스터 시티는 5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 포함 6승3무의 성적을 거두는 집중력까지 발휘했다. 이제는 돌풍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호평이 이어졌고, 결국 그들은 토트넘의 추격을 뿌리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새 역사가 쓰이는 순간이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우승이 확정된 직후 “사실 레스터 시티 지휘봉을 잡은 이후 우승을 기대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선수들은 매우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모두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덩달아 태국과 일본도 들썩였다.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58·태국) 킹파워 회장이 2011년부터 구단주를 맡은 이후 레스터 시티는 태국 현지에서 국민클럽의 인기를 누려왔기 때문. 승려들이 우승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거나, 우승이 확정되자 태국 현지에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일본 언론들 역시 "레스터 시티가 우승하면서 오카자키 신지(30·일본)는 EPL 우승을 경험한 세 번째 일본인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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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이 낳은 달콤한 열매들은?

132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레스터 시티는 영국 축구리그 역사상 24번째, EPL 출범 이후 6번째 우승팀이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블랙번 로버스, 아스널,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 내로라하는 팀들에 이어 레스터 시티는 EPL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라니에리 감독도, 선수들의 인생도 바뀌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1986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이끈 감독이 됐다. 보너스 수익도 83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선수들 대부분 역시 1년 만에 몸값이 몇 배로 뛰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대표팀 발탁은 물론 빅클럽들의 러브콜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레스터 시티는 이번 우승으로 약25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됐다. 브랜드 평가기관 레퓨컴의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수익에는 TV중계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새 스폰서십, 입장권 수익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성적에 따라 수익은 추가로 발생할 예정이다. 승격 후 2번째 시즌 만에 '기적'을 일궈낸 레스터 시티가 마주한 달콤한 열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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