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역사적 대국은 요란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조용히 막을 내렸다. 한국기원에서 최초로 명예 9단을 수여하고, 이세돌 9단의 사인이 담긴 바둑판까지 선물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사적 대국은 인공지능 알파고의 4승1패, 완승으로 끝났다.

인간들은 처음엔 인공지능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이세돌 본인도 낙승을 예상했다. 반대로 이세돌의 패배를 예상한 IT전문가들은 졸지에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되면서 인공지능의 가공할 능력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꼈고, 어느새 형국은 ‘이세돌이 1승이라도 해서 인간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느냐’가 됐다. 이세돌이 4국에서 승리한 순간에는 전 인류가 열광했고 이세돌은 바둑계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세기적인 사건답게 촌철살인과 같은 `말의 성찬'도 볼 만했다. 특히 알파고와 마주했던 이세돌과 알파고를 만든 구글 관계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자체로 인류에게 큰 파장과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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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2가 아니라 한판 질까 말까 정도”(2월22일 이세돌 첫 기자회견)

알파고와의 대국이 확정되고 이세돌과 구글 측은 처음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 당시 이세돌은 “3대2정도의 승리가 아니라 한판 질까 말까 정도”라며 압승을 자신했다. 그 이유로 “지난해 10월 열린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의 기보를 봤는데 저와 승부를 논할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업데이트됐다고 하지만 5개월 만에 따라잡긴 쉽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세돌 9단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어투이기도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이세돌 9단의 자신감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5개월 만에 프로 2단 수준에서 9단을 뛰어넘는 기력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5대0승리는 아닐 듯”(3월8일 이세돌 대국 전날 기자회견)

대국을 하루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가 자가학습으로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생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이 향상됐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허사비스가 설명한 알파고의 작동원리와 학습능력에 대해 끝까지 들은 이세돌 9단은 “조금 긴장했다. 5대0승리는 아닐 것 같다”며 지난 자신의 발언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이세돌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물론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두는 게 아니기에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바둑이 설령 기계에게 지배당해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음을 함축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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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랐다”(3월9일 이세돌 첫 대국 기자회견)

9일 오후 1시부터 열린 첫 대국 후 약 5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놀랐다. 압승을 호언장담했던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졌다. 당연히 승리를 예상했던 바둑계와 인류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가늠할 수 없는 능력에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이세돌 역시 대국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소리 죽여 “하하”하고 먹쩍게 웃은 뒤 “진다고 생각 안 했는데 너무 놀랐다”며 첫 마디를 뗐다. 3국 심판을 보고 5국 한국기원 공개 해설을 한 한종진 9단에 따르면 이 9단은 지인들에게 “다른 대국보다 특히 1국은 그 누가 둬도 알파고에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만큼 알파고가 실수도 많아 인간이니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의 승리를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 팀이 자랑스럽다"며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에 비교하며 환호했다.

▶“실수는 알파고만 했다”(3월10일 송태곤 9단 2국 해설 도중)

2국마저 패했다. 첫 대국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실력을 떠보기 위해 다소 무리한 초반 운용을 했다는 것이 중론. 그렇기에 이세돌 9단 역시 처음부터 신중하게 나섰다. 대국을 지켜보던 해설자들은 “이세돌 9단이 조심스럽게 둔다”며 달라진 기풍을 설명했다.

하지만 종반으로 갈수록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사이에 이세돌의 열세가 이어졌다. 송태곤 9단은 “시청자 여러분께 죄송한데요, 이세돌 9단의 패착을 찾지를 못하겠어요.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실수는 알파고만 하고 있었거든요”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세돌 9단은 후에 2국을 가장 아쉬운 한판으로 꼽았다.

▶“인류가 진게 아니다. 이세돌이 진거다”(3월12일 이세돌 3국 기자회견)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 하루 동안 인류는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이 충격은 가실 줄 몰랐다. 3국마저 패하며 5판 3선승제였던 승부가 알파고의 승리로 확정됐다.

이세돌은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다”는 말로 첫마디를 꺼내 가슴졸이며 TV 화면을 지켜보던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또한 “무력했다”는 말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대국이 단순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넘어 인공지능이 인류를 넘느냐를 보는 전초전의 성격으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세돌 역시 이러한 시선을 “이세돌이 패한 것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며 “이렇게 심한 압박감, 부담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그걸 이겨내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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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3월13일 이세돌 4국 후 기자회견)

드디어 승리했다. 180수만에 백을 잡고 승리를 거둔 이세돌은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 3연패 후 1승인데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라고 기뻐했다. 전 인류도 함께 기뻐했다.

특히 중앙에서 보여준 끼움수인 78수는 바둑 역사에 남을 ‘신의 한수’로 평가됐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이세돌의 78수를 알파고는 1만분의 1 미만의 확률로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이 한수에 알파고는 무너졌고 결국 불계패를 선언했다.

이세돌은 4국에 대해 “그전에도, 앞으로도 그 어떤 것과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평가했다. 역사에 남을 인류의 승리였다.

▶“알파고와 대국, 원 없이 즐겨”(3월15일 이세돌 5국 기자회견)

5국마저 승리하며 인류의 자존심을 지켜주길 바랐지만 끝내 패했다. 그럼에도 한종진 9단은 “전체 5국 중 최고의 바둑을 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알파고 역시 처음으로 초읽기에 몰릴 정도로 끝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다”고 한 이세돌은 “다시 붙어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력보다 심리적인 부분과 집중력에서 인간이 따라갈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세돌도 분명 이번 대국을 통해 얻은 것이 있었다. 이 9단은 “어느 순간부터 제가 바둑을 즐기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은 원 없이 즐겼다”며 바둑을 즐기던 초심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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