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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단순한 바둑 대국이 아니었다. 남자의 자존심은 건 ‘승부’ 따위도 아니었다. 단 한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으니 ‘세기의 대국’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인류 역사에 남을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이세돌이 섰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중압감에도 이세돌은 승리했다. 어쩌면 알파고는 이세돌 그 자신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역사적인 대국이 한창이다. 15일은 그 역사적 대국의 마지막 날이다. 이미 5판 3선승제에서 3승을 먼저 내주며 승부는 졌지만 이세돌은 4국을 통해 아직 인류가 기계에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이번 이세돌의 대국은 엄청난 상금, 주목도를 뛰어넘는 의미를 가졌었다. 마치 `인류vs컴퓨터 인공지능(AI)'의 구도로 가면서 이세돌은 ‘인류 대표’가 됐고 자연스레 그의 어깨에는 ‘인류 역사’라는 그 누구도 감당키 힘든 짐이 올려졌다.

마치 인류 역사상 달을 처음으로 밟았던 닐 암스트롱처럼 전 인류가 지켜보는 존재가 된 이세돌에게는 74억 인구가 자신을 지켜보고 반드시 이겨주길 바란다는 부담감이 함께한채 대국을 진행했다. 그 어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버티기 힘든 수준의 압박이다.

이세돌이 무너지는가 했다. 3번의 대국을 내리 내줄 때만해도 이세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와 인간을 넘어선 기계에 대한 찬미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모두 질 것’이라는 IT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4국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이는 어쩌면 이세돌의 상대였던 알파고처럼 이세돌 역시 기계같이 차갑고 냉정한 정신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을 것이다. 전 인류가 주는 엄청난 기대감과 압박감을 이세돌은 알파고와 같은 차갑고 냉정한 마음으로 버텨냈고 결국 승리했다.

4국 후 한종진 9단은 “저 정도면 무너질 법도 한데 내가 질렸다. 이세돌이 알파고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승리만 바라보는 기계처럼 이세돌도 ‘인류 역사가 달렸다는 등’, ‘세기의 대국’이라는 등 전 인류가 주는 중압감을 기계처럼 대응했기에 역사에 남을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인간처럼 생각하되 알파고처럼 반응한 이세돌이 진짜 알파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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