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감량(減量).

몸무게를 재는 격투기 선수들은 무제한급을 제외하곤 경기전 한바탕 `살과의 전쟁'을 벌인다. 링에 오르지 않았지 승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정작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이 과정이 얼마나 혹독하게 이뤄지는지를 알지 못한다. 감량의 혹독함과 고통, 그리고 그들은 왜 감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매니 파퀴아오의 계체 당시의 모습. ⓒAFPBBNews = News1
왜 감량을 해야 하나

선수들은 왜 감량을 해야 할까. 그냥 자기 몸무게에 맞게 경기에 나가면 안 되는 걸까.격투기는 적게는 3~4kg, 많게는 5~7kg으로 체급을 분리한다. 특정 체급으로 출전한다는 것은 곧 실전에서는 한 체급 이상의 경기에 나서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유는 바로 '리바운딩(Rebounding)'에 있다. 일반적으로 계체는 경기 하루 전에 한다. 계체 후 경기 직전까지 대략 하루 동안 선수들은 물이나 청량음료, 음식물 섭취로 순식간에 4~5kg을 다시 찌운다. '어떻게 하루만에 4~5kg이 찔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극심한 감량 이후 4~5kg 불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많은 선수들은 계체 하루나 이틀 전에 아예 수분을 끊는 감량을 한다. 계체 이후 천천히 수분을 다시 섭취하고 그동안 참아왔던 음식을 먹게 되면 하루만에 4~5kg가 찌는 건 일도 아니다.

격투기에서는 무게 차이로 인한 펀치의 파워나 레슬링을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힘, 장기전에 들어갈 때의 체력 등이 확확 차이가 난다. 그러니 선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낮은 체중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모두가 감량을 하지 않고 자신의 몸무게로 나간다면 감량은 필요 없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군대를 없앤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조금이라도 유리함을 점하기 위해 극심한 감량을 할 수밖에 없다.

피라도 빼고 싶은 마음

31일 열리는 로드FC 028 서울 장충대회에 출전하는 권민석에게 1월 마지막 주는 혹독한 감량을 위한 시련의 시간이다. 밴텀급(-61.5kg)에 출전하는 권민석의 몸무게는 평소 70kg초반대. 무려 10kg를 빼는 살인적인 감량이 이뤄졌다.

일단 경기 3주 전부터 식단을 조절했다. 아침엔 과일주스, 점심에는 과하지 않은 자유식, 저녁에는 샐러드와 닭가슴살로 이뤄진 식단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웬만한 지방은 빠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이때 갑자기 찾아오는 폭식 욕구를 참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정말 미칠 듯이 폭식 욕구가 밀려온다. 심지어 꿈에서도 먹는 꿈을 꿨다. 감량 압박 때문에 꿈에서도 한입밖에 못 먹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선수마다 다르지만 수분 다이어트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러 물을 과할 정도로 많이 마시는 것. 하루에 적게는 6~7리터부터 많게는 10리터까지 들이킨다. 계체 하루나 이틀 전에 그렇게 많이 섭취하던 물을 아예 끊어버린다. 그래도 몸은 그동안 먹었던 물에 대한 반응이 남아있기에 지속적으로 소변을 배출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소변을 통해 몸무게가 빠지게 된다.

권민석은 지난해 8월 상대가 바뀌면서 예정보다 더 급작스럽게 감량을 해야 하는 경우에 놓이게 되자 수분 섭취를 끊은 상태에서 사우나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정말 몸이 안으로 말리는 기분이다. 사우나에서는 뇌까지 말리는 기분이랄까. 정신이 혼미해졌다. 결국 사우나 안에서 쓰러졌고 발작을 일으켰다. 당시 옆에 있던 형이 구해줬는데 그때도 난 '헌혈하러 가야해'라고 했다고 한다. 감량에 대한 생각 때문에 피라도 빼고 싶었다"며 감량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로드FC 김수철의 74kg에서 61.5kg까지 4주간의 감량법. 로드FC 제공
로드FC의 김수철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감량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김수철 역시 4주간 10kg이상의 감량을 진행하며 자신만의 노하우가 확실했다. 모든 선수들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법이었다.

지켜보는 코치도 죽을 맛

최홍만의 개인 코치이자 수많은 경량급 선수를 지도한 정승명 트레이너는 "감량은 옆에서 지켜보는 코치도 죽을 맛"이라며 "정말 선수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많이 먹지도 못하고, 심지어 물도 못 먹는 선수를 그래도 경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훈련은 시켜야하는게 우리 일"이라고 했다.

태국에서도 활동했던 정 코치는 태국 파이터들의 극단적인 사례도 들려줬다. 태국에서는 아예 계체 장소에 사우나가 함께 있다는 것. 땀복을 입고 사우나에 들어가서 줄넘기를 뛰는 경우를 본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태국은 관장약까지도 먹어요. 모든걸 빼려는 거죠. 정말 그런 선수들은 눈 밑 다크서클이 몇 cm단위로 떨어져있어요. 또 태국은 경기 당일 아침에 계체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선수들이 경기 중에 복부를 맞으면 구토를 하기도 하더라고요. 그 사이 먹은 음식물이 나오는 거죠."

계체하고 나면 끝 아냐… 효과적인 회복 필요

계체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해서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제 남은건 어떻게 해서든 정상적으로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체중을 돌려놓는 것이다.

계체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권민석은 "계체 후 급하게 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 또 장이 받아들이지 못해 설사를 하게 된다. 미지근한 물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수분을 주입해줘야 한다. 그래야 피부가 탄력을 찾고 몸의 기관들이 깨어난다"며 "예전에 감량했을 때 감량 때와 경기 직전 몸무게가 7kg까지 차이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리바운딩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당일 경기 컨디션과 펀치력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결국 좋은 선수는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얼마나 감량을 효율적으로 잘 마치고 경기 당일 좋은 컨디션을 찾는 능력을 가져야한다.

지난해 8월 로드FC 025 계체 당시의 권민석(사진 오른쪽 두번째). 로드FC 제공
복싱 만화 '더 파이팅'에서 조연 캐릭터 마모루는 감량 중 밤에 누워있으면 물이 먹고 싶어 수도꼭지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수도꼭지는 분명 잠겨있는데 뇌에서 계속 물이 먹고 싶어 환청이 들린 것이다.

정 코치는 "실제로 주위에 감량을 자주 하는 선수들을 보면 외모도 확확 늙는게 보인다. 급격하게 감량을 하다보면 주름살이 늘고, 당연히 건강에도 좋지 못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미친 짓 같은 감량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매우 간단하다. 격투기 무대에 서기 위해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이 있다. 격투기 선수들은 링에서 그 삶의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TV를 통해 적게는 몇 초, 많게는 10여분 이상 정도만의 경기를 볼뿐이다. 그러나 그 몇 초와 10여분을 위해 선수들은 누가 봐도 미친 짓 같은 감량을 버텨내고, 링에 선다.

혹독한 운동을 통해 감량을 이겨내야 한다.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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