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15년 한국 축구는 정말 대단했다. 1월 열린 아시안컵부터 무려 27년 만에 결승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것은 물론 2015년 치른 20경기에서 단 4골만을 내줬다. 경기당 평균 0.2실점은 2015년 209개 FIFA 회원국 가운데 최소 평균 실점의 대기록이었다. 16승3무1패, 승률 80%의 성적 역시 최상위권이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의 참담한 기억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으로 인해 1년도 안돼 금방 잊히게 됐다.

그런 슈틸리케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20경기 중 17경기 출전), 가장 다양한 포지션(중앙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풀백)에서 뛰었으며 지난해 8월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는 MVP까지 차지한 인물이 바로 장현수(25·광저우 R&F)다. ‘슈틸리케의 남자’, ‘슈틸리케의 황태자’라 불리기까지 하는 장현수를 1월초 서울 군자역 인근에서 만나 국가대표로서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광종과 아시안게임

이광종 전 U-23대표팀 감독은 장현수에게 각별한 존재다. 19세 대표팀부터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함께한 뒤 23세 이하 대표팀까지 오랜 시간을 이 감독과 함께했다. 이 감독은 장현수에게 19세 대표팀 때부터 주장을 맡길 정도로 신뢰를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은 감독과 주장의 관계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탈환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광종 감독은 지난해 초 급성백혈병으로 모든 업무를 중단한채 투병에 들어갔다. 이 감독은 최근 항암 치료를 끝내고 회복을 위해 요양 중이다.

“그전까지 선수들은 전혀 이광종 감독님의 투병 사실을 몰랐다. 정말 깜짝 놀랐고, 충격 그 자체였다. 감독님과 함께 선수생활, 아니 인간으로 살며 단 한 번도 느끼기 힘든 희열을 함께했다. 이 감독님에게 중앙수비수로서의 움직임 같은 축구 내적인 것만이 아닌 축구 외적으로 정말 많이 배웠다. 정말 중요한 시기에 좋은 지도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비록 연락을 쉽게 하기엔 어렵지만 언제나 만날 때면 반갑게 맞아주시는 모습이 선하다. 어서 쾌유하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슈틸리케의 황태자라니

장현수는 2013년 6월 최강희 감독의 고별전을 통해 데뷔했고 홍명보 감독 시절에도 대표팀에 부름은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이후부터였다.

“슈틸리케 감독님은 처음 오셨을 때 선수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면담도 따로 하시면서 선수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하셨다. 심지어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때도 따로 불러 어떠어떠한 이유로 주전 멤버로 내보낼 수 없는지 설명해주신다. 선발 선수들에게도 미리 주전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신다. 미팅이 잦아 ‘하나의 팀’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해준다.”

장현수는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많은 것을 이뤘다. 곧바로 대표팀 주전을 꿰찬 것은 물론 아시안컵 결승진출, 최소 실점률, 동아시안컵 우승 등 많은 것을 이뤄냈다. 그 속에서 장현수는 최다 출전과 함께 다양한 포지션에서 슈틸리케의 황태자로 활약했다.

“감독님은 굉장히 섬세하시다. 경기 전에는 항상 그 전 경기에 대한 분석을 세심하게 한다.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총 패스율 등 통계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 마음도 헤아리려 하신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꼼꼼한게 바로 슈틸리케 감독님이다. 그런 슈틸리케 감독님이 절 많이 써주실 줄 정말 몰랐다.”

진짜 포지션? 내 속엔 포지션이 없다

장현수는 슈틸리케호에서 최다출전 선수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각종 포지션에 모두 활용됐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중앙 수비수로서 역할을 다하더니 차두리가 은퇴한 이후에는 오른쪽 풀백으로도 기용됐다. 동아시안컵 때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대회 MVP에 오르기도 했다. 한 포지션도 힘든데 세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여러 포지션을 뛰는 것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어느 포지션에서나 뛸 수 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한다는 말과도 비슷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난 어디서든 감독님이 불러주고 써주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멀티 포지션으로 경기장 안에 있는게 벤치로 경기장 밖에 있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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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포지션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님도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으신 것 같다. 그 실험에 제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각 포지션을 맡을 때마다 그 포지션의 세계적인 선수들을 찾아본다. 차라리 스스로 ‘난 포지션이 없는 선수’라고 뛰면 더욱 창의성이 생긴다. 다양한 포지션을 뛰며 그 포지션 선수의 고충을 이해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지도자가 되든 더 좋은 선수가 됐을 때 분명 큰 경험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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