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그래도 데뷔전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더라고 칭찬했다. 특히 아무리 맞아도 앞으로 밀고나가던 저돌적인 플레이와 투지가 좋았다고 했다. 그러자 남예현(18)은 기쁜 기색 없이 담담히 말했다.

“파이터는 투지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좋은 경기로 이겼어야죠. 모두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올해로 악명 높은 ‘고3’이 되는 여고생의 얼굴은 문자 그대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눈이며 볼이며 이마며 모두 상처투성이에 부어올랐다. 하지만 남예현은 어서 빨리 다음 시합을 뛰고 싶다고 했다. 체육관 관장인 아버지의 극구 반대를 무릅쓰고 스스로의 의지로 파이터의 길을 걸은 만큼 남들이 수능 공부할 때 더 많은 훈련량으로 ‘투지만 앞선’ 파이터가 되지 않기 위해 남예현은 다짐했다.

김봉진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남예현은 지난해 12월 26일 중국 상해 동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027 중국 여성 스트로급에서 얜시아오난과 맞붙어 심판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데뷔전 패배’. 남예현이 만 17세의 나이에 거둔 성적이었다. 체육관 관장으로 남예현을 직접 훈련시키고 세컨까지 봐준 아버지는 그런 딸을 위로했다.

▶처절하게 진 데뷔전, 핑계대지 않겠다

경기가 끝나고 이틀 후 호텔 로비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난 남예현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정말 그냥 올라갔다 내려온 것 같아 아쉽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상대와 붙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며 데뷔전을 회상했다.

“상대가 경험이 많고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많이 다칠걸 감안하고 올라갔다. 하지만 말 그대로 ‘처절하게’ 졌다”고 말하면서 웃은 남예현은 “경기 전에 몸이 무거웠고 컨디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건 진 사람으로서의 핑계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모두 제가 부족했기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고 말했다.

남예현은 경기 초반 상대의 손가락에 왼쪽 눈을 찔려 고통을 호소했다. 이 상황 이후 남예현의 경기 리듬은 완전히 깨졌다. “그 이후에는 그냥 전략이고 전술이고 뭐고 막 들어갔다. 세컨드의 말을 듣지 못하고 조급했던 제 불찰”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정타를 허용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이유

이날 경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예현이 지속적으로 공격을 당함에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전진했다는 점이었다. 쓰러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시합을 끝까지 다 뛰는 것이 선수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솔직히 체육관 오빠들에게 많이 맞아봐서 그 정도를 버텨낼 맷집은 있었다. 밀리고 싶지 않은 조급한 마음에 전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한번쯤 쓰러지고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는지를 묻자 “솔직히 카운터를 맞았을때 정말 이대로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엔 이대로 쓰러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갔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저 시합을 끝까지라도 뛰고 싶었다. 아버지가 세컨이신데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로드FC 제공
지난 중국대회는 중국 공영방송사인 CCTV에서 중계되고, 국내에서도 케이블TV를 통해 전국 생중계가 됐다. 이제 고3이 되는 남예현에게 이런 전국적인 관심은 생애 처음 있는 일.

“물론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죠. 처음 받는 주목이었으니까요. 제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경기 후에 절대 기사 찾아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 욕이 많다고요. 그런게 참 가슴 아팠어요. 저 때문에 아버지가 비난받으시니….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은 ‘고등학생 데려다가 이렇게 맞는 경기를 시켜도 되냐’라고 하셨는데 엄연히 이건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제가 이 길을 가고 싶다고 하셨을때 아버지는 끝까지 말리셨어요. 하지만 전 제 선택을 믿었어요.”

▶고3의 걱정보다 성인될 걱정이 더 커

2016년이 되면서 남예현은 이제 고3이 됐다. 지금이면 한창 고3이라는 주위의 기대에 공부에 매진할 시기지만 남예현은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사실 예전에 부모님께 ‘어차피 파이터의 길로 갈테니 학교를 자퇴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단편적인 것만 보지 말라’며 ‘언젠가 선수를 그만뒀을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것은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여전히 대학진학까지 원하시지만 전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질 못했네요.”

“남들이 수능공부할 때 전 훈련을 더 열심히 하면되죠”라고 말하는 남예현에게 고3의로서의 부담감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것보다 1년 만 있으면 성인이 된다는게 믿기질 않아요”라고 말할 때는 영락없는 여고생인 남예현이었다.

“성인은 이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요”라며 “올해는 훈련도, 학업도 열심히해서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해야죠”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파이터는 투지로만 되는 것 아냐… 전형적 인파이터 기대해달라

남예현은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 후 호텔로 돌아와 누웠을때 복잡 미묘한 감정이 가슴 속을 휘몰아쳤다고 했다.

“갈수록 씁쓸해지더라고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죠. 특히 2라운드 마지막에 ‘10초 남았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그때 좀 더 파고들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어요. 거기서 쓰러지더라도 모든걸 털고 쏟아부었어야했는데….”

로드FC 제공
그래도 여성 파이터로서 좋은 재목이 나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자 “선수는 투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시합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경기에 임할 것이다”라며 “그때처럼 밀고 나가면서 적극적인 시합을 하는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다. 맞더라도 직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전형적인 인파이터로 거듭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고3인데 공부도, 훈련도 더 열심히 해야죠. 지난 경기보다 더 뛰어난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날 겁니다. 노력하는 선수, 꾸준히 발전하는 선수로 다른 이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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