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반드시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수와 감독이 갖춰야 할 능력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비스타 출신이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프로야구 지도자로서 성공 신화를 이뤄낸 넥센 염경엽 감독도 현역 시절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통산 타율 1할대 타자였을 뿐이다.

올시즌 프로농구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바로 KCC 허재, 삼성 이상민 감독이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두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실력을 뽐냈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농구 대통령', '농구9단', '컴퓨터 가드', '산소 같은 남자'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들이 그들을 따라다녔다. 경기 시작 전 장내 아나운서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면 감독이 된 현재까지도 선수들을 소개할 때보다 더 큰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다.

그러나 두 감독 모두 열렬한 환호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허재 감독의 선수들을 향한 '레이저 눈빛'은 올시즌 더욱 따가워졌고, 이상민 감독은 선수들의 답답한 경기력에 뒷목을 부여잡기도 했다. 28일까지 나란히 9위와 10위에 머물러 있는 팀 성적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허재 감독의 꼬여버린 플랜

KCC의 전주 홈 개막전이 열린 지난 10월11일. 경기 시작 전 라커룸에서 허재 감독의 속을 쓰리게 만든 세 글자가 있었다. 바로 김민구다. 한 취재원이 김민구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허 감독은 쓴 웃음을 지은 뒤 "민구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KCC는 비시즌 동안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혔던 팀이다. 병역 의무를 마친 하승진이 팀에 합류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김태술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인트 가드 및 센터의 조합을 완성시켰을 뿐 아니라 엔트리 패스에 능한 김태술이 하승진의 능력을 극대화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 모았다. 전년도 득점왕 타일러 윌커슨과 재계약을 이뤄낸 점도 호재였다.

그러나 김민구가 음주 사고로 시즌 아웃되면서 그에 발맞춘 플랜도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시즌 평균 13.4점 5.1리바운드 4.6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한 김민구의 공백은 그 자체로도 뼈아팠지만 강병현, 장민국을 내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김태술을 영입한 것도 결국에는 김민구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시도할 수 있었던 트레이드였다.

설상가상 김태술마저 데뷔 이후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허재 감독의 속은 더욱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비시즌 동안 대표팀에 합류해 있었기 때문에 호흡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폼 자체가 이미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골밑 기둥 역할을 다해낸 하승진마저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핵심 선수들만 탓할 문제는 절대 아니다. KCC는 1쿼터부터 상대에게 완전히 기세를 빼앗긴 이후 추격만 하다가 경기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18경기를 치르는 동안 KCC의 1쿼터 평균 득점은 14.2점(리그 평균 17.6점)에 그쳐있다.

또한 공격 전술이 여전히 단조롭기 때문에 평균 득점(70.8점, 9위)과 야투 성공률(2점슛 47.1% 9위, 3점슛 29.9% 10위) 역시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팀 어시스트(12.1개)와 실책(12.3개)에서도 최하위권이다. KCC의 우승을 두 차례나 이끌었지만 최근 3시즌 째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허재 감독도 팬들의 비난 앞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상민 감독, 아직은 초짜의 한계?

이상민 감독은 현역 시절 뛰어난 게임 이해도를 바탕으로 코트 위의 야전 사령관 역할을 누구보다 훌륭히 소화했다. 작전 타임 때는 종종 감독을 대신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많은 농구 관계자와 팬들은 이상민 감독이 뛰어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상민 감독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물론 삼성은 애초부터 상위권으로 평가받을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구단에서도 이상민 감독에게 당장의 성과보다는 탄탄한 리빌딩을 이뤄내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좀 더 강했다. 하지만 올시즌 전체 2순위 '슈퍼 루키' 김준일을 비롯해 최근 몇 년 동안 신인 드래프트 상위픽을 연달아 얻어냈고,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역시 전체 1순위로 리오 라이온스를 영입한 만큼 성적도 일정 부분은 뒷받침 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올시즌 유일하게 80점대 실점(80.1점)을 내주며 수비에서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또한 빠른 속공 농구를 표방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득점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평균 리바운드(34.2개 10위)에서도 알 수 있듯 제공권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리 치료까지 동원했으나 선수들은 좀처럼 패배 의식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작전 타임마다 이상민 감독은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점을 간결하게 꼬집어내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다만 선수들이 아직까지 감독의 지시에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 강하다. 한 예로 이상민 감독은 "5반칙을 당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에게 초반부터 적극적인 수비를 강조했는데 쓸데없는 파울이 많이 나왔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역량이 떨어지면 그 눈높이에 맞는 지시를 내리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 역시 선수들과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민 감독이 지도자 경험을 쌓아나가며 배워나가야 할 요소 가운데 하나다.

삼성은 28일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김동우의 극적인 3점 버저비터를 통해 짜릿한 대역전승을 거두고 9연패 수렁에서 벗어났다. 연세대 선배이기도 한 문경은 감독이 SK 사령탑 첫 해 9연패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덧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만큼 이상민 감독도 천신만고 끝에 따낸 승리의 기운을 꼴찌 탈출이라는 성과로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올 겨울이 따뜻한 스타 출신 지도자는?

허재, 이상민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반면 승승장구하고 있는 스타 감독의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현역 시절 천재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드높였던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역대 통산 최다인 521승(406패)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19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16승(3패)을 따내며 팀을 선두로 이끌고 있다. '만수(萬數 만 가지 수)'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변화무쌍한 전술을 앞세워 현역 시절보다 더욱 화려한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또한 '람보 슈터'로 명성을 떨친 문경은 감독도 SK의 감독대행을 맡은 첫 해(2011~2012시즌)에는 앞서 언급했던 9연패를 비롯해 19승35패의 초라한 최종 성적을 남겼으나 '형님 리더십'을 앞세워 어느덧 SK를 강팀 반열에 올려놨다. '사마귀 슈터' 김영만 감독 역시 지난 시즌 최하위로 추락한 동부 선수단에 강력한 수비를 덧입히며 대행 꼬리표를 뗀 첫 시즌을 순조롭게 출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