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프로 선수로서 은퇴를 발표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후배들을 묵묵히 이끌고 있다. 1998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의 영광을 나란히 품에 안았던 한국 야구와 농구의 대들보 임창용(38)과 김주성(35)에게 어느덧 유종의 미를 다짐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종목은 다르지만 임창용과 김주성은 오늘날의 프로야구와 농구를 이끌어온 전설적인 선수들이다. 수많은 현역 선수들이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고 리그를 발전시켜왔다. 실제 생애 첫 야구 대표팀에 승선한 한화 이태양(24)은 대선배 임창용과의 만남에 부푼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LG 김종규 역시 평소 김주성을 둘도 없는 우상으로 꼽으며 남다른 존경심을 표현한 바 있다.

임창용은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24명 가운데 최고참 선수로 합류했다.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봉중근(34)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만큼 그가 선수단 전체에 미치는 아우라는 절대적이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5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으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그동안 총 5번의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만큼 대표팀 경험도 풍부하다.

반면 김주성은 문태종(39)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지만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어 온 경력에서만큼은 가히 독보적인 존재다.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 당시 대학 1학년의 신분으로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주역 중에서도 유일하게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임창용, 마무리를 잘 부탁해

임창용은 사실상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보직마저 마무리로 나선다. 류중일 감독은 임창용과 봉중근을 더블스토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명단 발표식 때부터 밝혀왔다.

올시즌 5승2패 29세이브(3위) 평균자책점 5.71을 기록 중인 임창용은 세이브 수치에 비해 분명 압도적인 모습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총 9번의 블론 세이브로 이 부문 1위의 불명예를 떠안고 있으며, '창용 불패'를 자랑했던 5월 이후부터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오승환의 빈자리를 안정적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중일 감독은 임창용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류 감독은 7월 말 엔트리 발표 당시 "회의 결과 블론 세이브는 몇 차례 있었지만 그래도 임창용이 국제대회 경험이 많아서 마무리로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났다"며 그의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임창용은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의 사소한 잡음 뿐 아니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마지막으로 공을 던졌던 2009년 WBC에서의 아픔까지 한 번에 만회할 책임감을 등에 짊어졌다.

일본과의 결승전 당시 임창용은 3-3으로 맞선 연장 10회 2사 2, 3루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치로에게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당시 김인식 감독의 고의4구 사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빚어진 참사였으나 선수의 지나친 승부욕만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그는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임창용으로서는 당시의 가슴 아픈 기억을 씻어내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가 던지게 될 마지막 공이 이번에는 대표팀에게 금메달을 안겨다주는 기념비적인 공으로 보관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한국 농구의 심장' 김주성(35)이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마지막 투혼을 불태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김주성, 2002 부산 AG 금메달 영광 재현할까

남자 농구대표팀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같은 해 한일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남긴 4강 신화만큼이나 그 과정이 극적이었다. 필리핀과의 준결승에서는 이상민(현 삼성 감독)의 짜릿한 3점 버저비터로 1점 차의 역전승을 거뒀고, 중국과의 결승 역시 4쿼터 막판 믿기 힘든 집중력을 발휘해 연장에서 기어이 만리장성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완벽한 신구조화와 함께 역대 최강의 멤버들로 구성된 2002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 중에서 현재까지도 대표팀, 아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앞서 언급했듯 김주성이 유일하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아선 것이 절대 아니다. 그만큼 김주성은 남자 농구대표팀에서 대체불가의 선수였으며, 제대로 된 휴식은커녕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도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 위해 묵묵히 소집에 응해왔다.

이제 에이스의 자리는 조성민, 김선형 등 그보다 젊은 선수들이 이어받았고, 김종규, 이종현과 같이 젊은 빅맨진이 급성장했지만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주성이 빠진 대표팀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가 팀 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아 최강으로 자리매김한 이란을 비롯해 최근 기세는 주춤하지만 여전히 한국에게는 높은 벽이나 다름없는 중국, 농구 월드컵에서 세계적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한 필리핀 등 만만치 않은 상대가 버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주성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12년 만에 다시 한 번 안방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김주성 스스로도 2002년 부산에서의 금메달 신화를 재현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박수 칠 때 떠나라? 떠나는 순간 박수를 보내자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될수록 남아있는 노장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선수단의 분위기가 이들의 리더십에 의해 좌우될 뿐 아니라 위기의 순간 무게 중심을 잡아줘야 할 임무도 결국에는 고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로서 세월의 흐름은 결국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렇기에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임창용과 김주성은 이와 같은 시기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박수를 받을 때 차마 떠나기 힘든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최후의 불꽃을 태우고 미래의 주역들에게 새 희망을 전달하고자 두 선수는 대표팀 유니폼을 다시 한 번 기꺼이 받아들였다. 개인보다는 나라, 그리고 스포츠 팬들을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희생이다.

선수 당사자나 지켜보는 팬들이나 이번만큼은 '진짜'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매번 기쁨만을 안기지 못해 박수 칠 때 차마 떠날 수 없었던 두 선수에게 떠나는 순간만큼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임창용과 김주성 모두 이러한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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