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때는 2007년, 여기 한 투수가 있다.

34세, 이제 노장의 나이에 접어든 투수가 1년에 300만달러라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딱 한 경기 뛴 후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마이너리그로 강등됐지만 9경기 평균자책점 5.92를 기록한채 방출됐고, 시즌 중 다시 입단한 마이너리그에서는 더 부진했다(15경기 평균자책점 6.21). 시즌 종료 성적은 트리플A 24경기 평균자책점 5.97.

끝이었다. 자신의 심장같았던 등번호 61번까지 달지 못하면서도 뛴 마이너리그에서 내년이면 35세가 되는 선수가 평균자책점 1점대를 찍어도 올라가기 힘든 상황에서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는 것은 곧 프로생활을 지속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스스로도 “이대로 끝나면 오라는 팀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되는구나”고 생각했다.

내로라하는 명사들도 ‘추하게 있지 말고 명예롭게 은퇴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차마 끝낼 수 없었다.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더 해보고 싶었다.

은퇴하지 못할 이유는 명백했다. ‘라이벌’로 여겼던 노모 히데오(일본)에 비해 그 어떤 기록도 나은 것이 없었기 때문. 단 하나라도 노모를 넘고 싶었다. 결국 노모의 123승을 넘을 때까지만 해보려 했다. 다시 목표를 세우고 모두가 끝났다고 여긴 투수는 2008년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했고(메이저리그 54경기 평균자책점 3.40) 이후 끝내 124승을 달성하고 은퇴했다. 그렇다. ‘아시아 최다승 투수’ 박찬호(43)의 얘기다.

MBC 스페셜
이대호(34)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이대호는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굴욕을 감수했다. ‘도전’이라는 목표 하나뿐이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자 일본 시리즈에서 MVP까지 차지한 선수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감수한 것은 놀라움 그 자체다.

분명 이대호에게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스프링캠프에서 헤수스 몬테로라는 ‘노망주’를 넘어 백업 1루수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전혀 25인 로스터 보장이 되지 않았다.

2008년 2월의 박찬호도 그랬다. 사실상 기본 연봉만 받는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박찬호는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친정팀 LA 다저스로 돌아갔다. 사실 이대호는 차라리 양반이다. 40인 로스터라도 포함됐지 박찬호는 그런 것도 없었다. 직전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6점대 평균자책점을 보인 투수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시선뿐이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가장 먼저 이탈할 첫 번째 선수로 박찬호의 이름이 언급됐다.

하지만 2008년 2월의 박찬호는 묵묵히 준비했다. 그리고 3월 스프링캠프에서 6경기(3선발) 18.2이닝 평균자책점 2.41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보였다. 이에 비록 개막전로스터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고, 개막 후 4일 만에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으며 다시 메이저리거로서 부활했다.

당시 박찬호는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하는 것도 비난을 들어야했지만 박찬호는 포기할 수 없던 이유, 바로 노모의 123승을 넘겠다는 목표 하나로 공을 놓지 않았고 끝내 2008 스프링캠프에서 부활했다.

바로 이대호가 기억해야 할 것이 2008년 스프링캠프를 앞둔 박찬호의 정신이다. 사실 이대호 입장에서는 주위를 둘러보면 초라해질 것이다. 같은 1루수 거포로 여겨진 박병호는 포스팅시스템을 거쳤음에도 1,000만달러 이상의 계약을 따냈고 동갑내기이자 친구인 추신수는 1억 3,000만달러 선수다. 함께 일본에서 미국행을 선언한 오승환은 불펜 투수임에도 자신보다 좋은 계약 조건에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까지 사실상 보장받았다. 하지만 자신은 돈이면 돈, 입지면 입지, 그 어느 것 하나 나을게 없다. 화려한 과거는 잊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한다.

박찬호도 그랬다. 이대호보다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할 것 없는 화려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몰락하며 가치는 하락했고 결국 2008시즌을 앞두고 제로 베이스, 아니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야했다. 이대호는 일본에서 30홈런-일본 시리즈 MVP라는 성적을 가지고도 메이저리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0에서 시작하게 됐다.

박찬호는 ‘노모’라는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었다. 이대호에게는 어린 시절 꿈꿔왔던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다. 분명한 목표 의식이 있다면 0에서 시작해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목표 의식을 가진채 임한다면 100을 가지고 있어도 0이 될 수 있다. 당장은 모든 것을 포기한 2016년 2월의 만 34세의 이대호는 8년 전인 2008년 2월의 만 35세의 박찬호를 거울로 삼는 것은 어떨까.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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