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시애틀 매리너스가 왜 이대호(34)를 영입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실질적인 이유는 단 두 가지다. 좌투수 킬러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것과 일명 ‘브릿지 플레이어(Bridge Player)’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4일(이하 한국시각) 공식 SNS를 통해 이대호를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영입했음을 알렸다. 마이너리그 계약은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으로 한국 최고의 타자이자 일본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던 이대호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굉장한 충격이다.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진입할 경우 1년 400만달러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너리그 계약은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이 전혀 보장되어있지 않다. 마이너리그에 있을 경우와 메이저리그에 있을 경우 계약 내용이 다르다. 마이너리거 신분으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다.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에 실패할 경우 FA가 되거나 마이너리그에서 승격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일단 시애틀이 ‘갑’이다. 시애틀 입장에서는 일단 스프링캠프에서 써보고 좋으면 쓰고, 아니면 안 쓰면 된다. 마이너리그 계약의 장점이다. 일단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점에서 시애틀은 어떻게해서든 이대호를 영입할만한 이유가 된다.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는 강점을 제외하고도 시애틀이 이대호를 원한 이유는 명백하다. 반쪽짜리 선수인 ‘플래툰’을 생각한 것과 동시에 유망주가 성장할 때까지 가교 역할을 ‘브릿지 선수’이다.

주전 1루수로 예정됐던 애덤 린드의 강점은 분명하다. 린드는 지난 7년간(2009~2015) 144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연평균 21개의 홈런이며 35홈런을 때린 적도 있고 지난 시즌에도 20개의 홈런을 때렸다.

그러나 약점도 명확하다. 바로 ‘좌투수’다. 린드는 통산 2할7푼4리의 타율이지만 좌타수를 상대로는 2할1푼3리에 불과하다(차이 -0.061). 지난 시즌 이 모습은 더 심해졌다(우투수 타율 0.291 좌투수 0.221, 차이 -0.070). 일명 ‘좌상바(좌완상대바보)’인 것이다.

좌투수상대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애덤 린드. ⓒAFPBBNews = News1
그렇기에 이대호에게 린드가 해결하지 못하는 좌투수 문제점을 맡기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이대호는 KBO시절에도 김광현, 류현진 등 정상급 좌완에게 강했고, 일본에서도 그 강점은 유지됐다.

▶이대호의 2014, 2015시즌 NPB 좌투수 상대 성적

2014년 83타석 타율 0.370 출루율 0.439 장타율 0.563 OPS 1.002
2015년 135타석 타율 0.400 출루율 0.482 장타율 0.757 OPS 1.239

이대호는 2014, 2015시즌 일본에서도 최고의 좌완킬러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 그 명성은 극에 달해 좌투수 상대 타율이 4할을 넘었고 장타율은 7할을 넘어 8할을 넘봤다. 좌투수 만큼은 완벽하게 두들기는 이대호의 모습은 좌투수에게 바보인 린드를 보유한 시애틀로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좌투수 킬러를 기대하는 것과 함께 시애틀은 브릿지 선수로도 이대호를 활용하고 싶어한다. 이는 린드 역시 포함된다.

브릿지(Bridge) 선수란 단기 계약으로 팀의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선수다. 특히 팀내 특급 유망주가 있지만 아직 메이저리그 올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 노장 선수를 단기적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있다. 2010년에 버스터 포지라는 특급 포수 유망주를 올리기 직전 벤지 몰리나로 버텼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지난 시즌 유격수 지미 롤린스로 버틴 후 올 시즌부터 특급 유망주인 코리 시거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할 예정인 LA다저스의 예가 있다.

현재 시애틀 마이너리그에는 D.J. 피터슨(25)이 있다. 대학출신인 피터슨은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2번의 높은 순위로 1라운드 지명됐다. 원래는 3루수지만 2015시즌에는 1루수로서 더 많은 경기(1루소 59경기, 3루수 30경기)를 보내면서 1루수로 전향시킬 계획이다. 어차피 시애틀 3루에는 장기계약으로 묶인 정상급 3루수 카일 시거(코리 시거의 형)가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1루수 유망주인 D.J. 피터슨 ⓒAFPBBNews = News1
피터슨은 BA 랭킹 팀내 2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85위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시즌 막판에는 트리플A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 시즌 더블A에서 출루율이 3할도 넘지 못하면서(0.291)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가 올라올 시간을 벌어야하는 시애틀이다.

이대호와 린드는 1년계약이기에 2016시즌을 충분히 버텨줄 것이다. 이후 피터슨이 계획대로 성장한다면 2017시즌 주전 1루수를 맡기고 아니면 FA시장에서 새로운 1루수를 찾을 것이다. 어찌됐던 이대호와 린드는 브릿지 선수로서 역할을 부여받을 것이고 이대호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는게 1년동안 자신의 능력만 보여주면 또 다른 FA대박을 노릴 수도 있다.

결국 시애틀은 린드의 좌투수 상대 약점과 브릿진 선수로서 이대호를 잡았다. 이대호가 이 두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해준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인 ‘린드를 밀어내고 주전 1루수 확보’까지도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