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물론 대단한 선수다. 하지만 득표율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말도 안 돼’였다. 켄 그리피 주니어(47)와 마이크 피아자(48)의 믿기 힘든 득표율은 야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는 7일(이하 한국시각) 기자단 투표를 통해 켄 그리피와 피아자가 올해 명예의 전당(명전) 입회자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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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의 득표율은 만장일치에 3표 모자란 무려 99.3%(총 투표자 440명, 437표 득표)로 종전 명예의 전당 최고 득표율이었던 98.84%를 넘어선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피아자는 약물 경력에도 명예의 전당 4번째 도전 만에 83.0%(444표 중 365표)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 입회 기준인 투표율 75%를 넘어섰다.

제프 배그웰은 득표율 71.6%를 얻는데 그쳐 아쉽게 탈락했고, 팀 레인스(69.8%), 트레버 호프먼(67.3%), 커트 실링(52.3%), 로저 클레멘스(45.2%), 배리 본즈(44.3%), 마크 맥과이어(12.3%), 새미 소사(7.0%) 등도 탈락했다.

▶켄 그리피, 과연 역대 최고인가

물론 켄 그리피는 뛰어난 선수였다. 그의 스윙은 그 자체로 이미 예술작품이었다. 오죽하면 골프계에서 가장 완벽한 스윙을 가졌다는 타이거 우즈가 부진할 때 ‘절친’ 켄 그리피의 스윙을 봤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켄 그리피는 한때 메이저리그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1990년대 말, 농구에는 마이클 조던, 골프에는 타이거 우즈, 야구에는 켄 그리피라는 말은 정설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어디하나 특출 난 것이 없다. 통산 홈런에서는 6위(630홈런), 타점에서는 15위(1,836타점), 역대 256명이나 있는 3할 타율도 넘지 못했고(0.284), 역대 61명이 있는 4할 출루율도 넘기지 못했다(0.370). 자신보다 높은 장타율(0.538)을 가진 선수는 37명이나 된다. 통산 fWAR(대체선수이상의 승수)은 40위밖에 되지 않는다.

홈런을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역대 10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선수가 바로 켄 그리피 주니어다. MVP도 딱 한번밖에(1997년) 하지 못했다.

물론 켄 그리피는 약물의 시대에 깨끗했던 몇 안 되는 선수라는 최고의 장점이 있다. 켄 그리피만큼은 약물에서 깨끗하다는 것은 미국인들의 자랑이었고, 이는 이후 약물 스캔들이 터졌을 때 켄 그리피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대 최고’를 꼽는 명예의 전당에서 과연 켄 그리피가 역대 득표율 1위를 받을만한 선수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켄 그리피가 베이브 루스보다 더 뛰어난 선수인가?, 리키 핸더슨(통산 도루 1위)보다 더 뛰어났을까? 테드 윌리엄스(마지막 4할타자), 놀란 라이언(통산 탈삼진 1위), 랜디 존슨(통산 탈삼진 2위, 마지막 300승 투수)보다 뛰어났나? 그 누가 자신 있게 ‘맞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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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자의 명전 입성, 약물 선수 입성의 신호탄

피아자의 입성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피아자는 명백한 금지약물 복용자다. 물론 다른 약물 복용자와 다른 점은 스스로 그 사실을 고백했다는 점이다. 피아자는 자서전을 통해 ‘약물을 했다’고 고백했고, 미디어 앞에서 눈물로 그 사실을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미국인들은 피아자에 대해서만큼은 ‘면죄부를 줘도 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아자가 스스로 고백했다할지라도 그가 ‘약물 복용자’라는 오명을 벗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순 없다. 결국 피아자도 금지약물에 손을 댄 선수다.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될 ‘금지약물 복용선수’의 명예의 전당 입성의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 부정한 방법으로 스타가 되고, 막대한 돈을 벌고, 기록을 쌓은 선수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사례가 피아자부터 생기면서 이제부터는 배리 본즈나 로저 클레멘스 등도 못 들어갈 이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피아자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피아자도 결국 ‘금지약물 복용자’다.

▶Fame은 ‘명성’이지, ‘명예’가 아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서 Fame은 한국어로 ‘명성’이라는 단어로 해석된다. 영어단어 Honor가 명예, 영예를 뜻하는 단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명성은 ‘평판 높은 이름’을, 명예는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존엄’을 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예의 전당은 번역이 잘못됐을 뿐 애초에 ‘명성의 전당’일 뿐이다. 그런 의미라면 켄 그리피는 나름 최고 득표율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물 청정 선수’라는 이미지와 함께 미국 내에서 호의적인 인기, 기자단과의 원만한 관계가 그리피의 야구성적보다 더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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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아자 역시 사실상 거의 마지막이었던 신인드래프트 1,390번째 지명 선수로서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포수가 됐다는 점은 분명 인정받아야한다. 그럼에도 피아자를 시작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한 전력이 있는 선수가 이제부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은 커다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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