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조형래 기자] 이제 ‘유망주’라는 소리는 지겹단다. "만년 유망주 소리를 듣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제는 보여줄 때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 2009년 미국무대를 처음 밟았고 올해면 어언 7년차. 마이너리그에서는 이제 소위 ‘짬이 찬’ 선배 노릇을 할 정도다. 2015년에는 반드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겠다는 ‘동갑내기 친구’ 이학주와 하재훈(25)의 각오는 정말 남달랐다.

2015시즌을 4개월여 앞둔 세밑, 경기도 안양의 한 헬스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학주와 하재훈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만 모인다는 미국에서도 팀내 순위권에 드는 것은 물론 전체 유망주 랭킹에서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다.

탬파베이 레이스 마이너리그에 있는 이학주는 2013시즌 초반 메이저리그 바로 밑단계인 트리플A에서 타율 4할2푼2리의 맹타를 휘두르다 십자인대 파열로 중도하차 한 뒤 재활을 거쳐 2014시즌을 보냈다.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 속해 있는 하재훈도 2013시즌 종료 후 손목 수술을 받고 뒤늦게 2014시즌에 복귀해 힘겨운 시즌을 보냈지만 그래도 트리플A에서 시즌을 마치며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2014시즌 부진의 이유

많은 이들이 두 선수의 2014시즌에 대해 많이 아쉬워한다. 성적도 좋지 못했는데(이학주 트리플A 93경기 타율 0.203 하재훈 더블A+트리플A 총 125경기 타율 0.229)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학주(이하 이) : 연초 스프링캠프 때 장난 아니었죠(9경기 13타수 5안타 타율 0.385 3타점). 아마 올해가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잘했던 것 같아요. 연습 때도 눈에 띄고 그랬어요. 시즌 초반에 조금만 잘했으면 됐는데…. 1년을 쉬었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멘탈쪽에서 기복이 생겼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젠 보여줘야 된다'는 책임감 때문에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아 고생했죠. 장점인 도루도 부상 부담 때문에 많이 보여주지 못했죠.

하재훈(이하 하) : 겨우내 손목 재활만 하다 기술훈련 없이 시즌 도중 합류하니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원래 연습으로 감을 잡고 경기에서 보여주는 스타일인데 경기를 하면서 경기 감각을 찾으려니까 시즌 초반 타격에서 문제가 많았어요(하재훈은 시즌 첫 19경기에서 타율 0.156까지 추락하며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초반에 그렇게 부진하고 나니까 성적을 회복하기가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구단과의 약속

2015시즌이면 어느덧 마이너리그 7년차다. 이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구단과 이 부분에 대해 교감한 부분은 없었을까.

하 : 2013시즌은 거의 트리플A에서만 뛰었어요. 그러고 부상을 당했으니 구단에서는 2014시즌 초반에 잠시만 더블A에 있으면 바로 트리플A로 올려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 성적이 부진하다보니 트리플A 승격이 8월말까지 미뤄졌던 거죠. 더블A에서 부진했어도 시즌 막판 트리플A로 올려준 건 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구단의 신의였죠.

이 : 구단에다가 ‘왜 메이저리그에 안 올려주나’라고 얘기하면 구단에서는 ‘학주, 넌 이미 메이저리거야’라고 말해요. 그 말을 믿고 있어요. 물론 구단도 저에게 ‘이제 6년이 됐지 않느냐’며 압박을 주기도 해요(웃음). 조금만 더 보여주면 될 것 같아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한다면 구단에서도 알아주겠죠. (안 알아준다면?) 방법을 강구해야죠.

▶수비? 이학주는 '범위', 하재훈은 '어깨'

수비능력에는 크게 공을 얼마나 많이 잡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범위’와 빠르게 송구할 수 있는 ‘어깨’, 공을 잘 잡을 수 있는 ‘포구’로 나뉜다. 특히 수비 포지션 중 가장 중요하다는 유격수를 맡고 있는 이학주는 2011년 플로리다스테이트리그 감독들이 뽑은 ‘최고의 유격수 수비’'에 뽑힌 것은 물론 현재는 시카고 컵스 감독이 된 조 매든 전 탬파베이 감독으로부터 "이학주는 간단히 공을 잡아 1루로 던진다. 크게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 플레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야수 스타일이다"라며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이 : 세 가지 수비 모두 자신 있어요. 그 중에서 꼽으라면 역시 ‘범위’가 아닐까요. 매든 감독님 말씀은 고맙긴 한데 그렇게 수비를 잘하진 않아요.

하 : 아니에요. 실제로 보시면 정말 잘해요. 제가 이 친구랑 한 3년 같이 있었잖아요. 정말 최고예요. (이학주는 굉장히 쑥스러워했다) 전 어깨가 좋은 편이예요. 한 시즌에 보살을 10개 이상을 기록한 적이 꽤 많아요(포수 출신 하재훈은 보살 10개 이상을 기록한 시즌을 세 번이나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들 중견수가 어렵다고 하는데 전 중견수가 편하더라고요. 우익수나 좌익수를 서면 중견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제가 중견수면 눈치를 안 봐도 되잖아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에 다가가며 수비 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중견수를 선호하는 이유예요.

▶사이영상 받은 선수들을 상대해본 경험

두 선수는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다 보니 별의별 선수를 다 겪어봤다. 마이너리그는 유망주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야시엘 푸이그(LA 다저스) 같이 잠시 마이너리그에 머물다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국제 계약 선수는 물론 데이비드 프라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같은 대투수들도 재활경기(Rehap)를 위해 등판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선수들을 겪어본 두 선수의 소감은 어땠을까.

하 : 사실 푸이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봤을 때 그렇게 잘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근데 메이저리그 가니까 날아다니더라고요. 푸이그는 잘하는 선수들한테 잘하는 체질이었던 거죠. 그리고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역시 커쇼예요(2014년 5월 1일, 커쇼는 재활등판을 위해 더블A경기에 등판했고 이때 하재훈은 커쇼를 상대로 2안타를 기록했다. `각성한' 커쇼는 MVP와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하게 된다). 커쇼는 속구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는데 슬라이더 각이 정말 살벌하더라고요. 살아생전 그런 공은 처음 봤어요. 정말 노려도 못 쳐요.

이 : 커쇼하고는 타석에 들어선 걸 영광으로 생각해야지, 부럽다(웃음). 전 기억에 남는 건 미국 처음 갔을 때 아무것도 모를 때 코치가 저한테 와서 ‘저 선수는 메이저리그 선수니까 가서 한번 쳐봐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가서 쳤는데 2루타를 때린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가 존 래키(통산 152승을 거두고 있는 메이저리그 대표 선발투수)더라고요. 집에 가서 자려는데 계속 생각이 났어요.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이후로 미국 야구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죠.
또 데이비드 프라이스(2012 사이영상 수상자)도 기억납니다. 프라이스가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되기 전에 우리 팀에 있었는데 그때 마이너리그에서 프라이스가 재활경기 때문에 우리팀과 전력으로 맞붙은 적이 있었어요. 타석에서 몸 쪽으로 엄청 꺾여오는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내니까 프라이스가 저한테 와서 ‘어떻게 쳤어?’라고 묻더라고요. 전 ‘I don’t know(몰라)’라고 대답했죠. 프라이스는 정말 릴리스 포인트가 엄청 앞에 있더군요. 아! 그리고 제레미 헬릭슨한테는 이 자리를 빌려 정말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걔가 땅볼 투수거든요. 근데 제가 매번 헬릭슨이 나올 때마다 실책을 하더라고요. 걔가 어서 메이저리그 올라가야 되는데 저 때문에 못 올라가는 것 같아서 미안했어요.

하 : 너, 그 얘기도 했잖아. 맥스 슈어저(2013 사이영상 수상, FA신분으로 협상중) 공은 하도 빠르고 힘이 좋아서 포수를 통과해서 계속 지나갈 것 같다고.

이 : 맞아, 엄청났지.

▶2015 시즌? ‘죽기 살기로 도전’

2015년이면 이학주와 하재훈 모두 미국땅을 밟은 지 어언 7년이다. 한국 나이로 26세. 마냥 꿈만 쫓기에는 만만치 않은 나이다. 이학주, 하재훈과 함께 뛰던 이대은까지 일본행(지바롯데)을 택하면서 이젠 메이저리그와 가까운 레벨에 있는 한국 유망주는 이들을 제외하곤 없다. 결국 마지막 남은 한국 유망주의 보루라 봐도 무방하다. 한편으로는 이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어떻게 해서든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그들에겐 2015년은 어떤 해일까.

이 :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해야죠. 어떻게 해서든 결판을 봐야 돼요. 마이너리그에만 있으면 안되잖아요. 초심으로 돌아가 죽기 살기로 해서 메이저리그로 갈 겁니다. 우리나라 국민들께 텔레비전을 통해 제 야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하 : 저도 학주와 마찬가지예요. 이젠 외로움에 익숙해졌어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젠 결단을 내려야해요. 팬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제가 더 많이 믿고 있어요. 많은 팬분들이 지켜봐주신다는 걸 알고 있는데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말 야구만 생각하려고요.

이학주 프로필
▲생년월일: 1990년 11월 4일 ▲태어난 곳 : 서울 ▲신체조건 : 188cm, 91kg ▲소속 : 미국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트리플A 더램 불스 ▲출신교 : 하안북초-양천중학교-충암고 ▲주요 경력 : 2009년 미국진출, 2010, 2011 마이너리그 올스타전 퓨처스게임 선발

하재훈 프로필
▲생년월일 : 1990년 10월 29일 ▲태어난 곳 : 경남 진주 ▲신체조건 : 183cm, 92kg ▲소속 : 미국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 ▲출신교 : 양덕초-마산동중-용마고 ▲주요 경력 : 2009년 미국 진출, 2012 마이너리그 올스타전 퓨처스게임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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