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세상] "신의 자손이 운명을 거부하니까 인생살이가 험난…"

"전화로 예약한 사람입니다."

"신림동서 오셨나요."

예약하고 온 손님이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와 상상했던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 통화했던 목소리는 상당히 도시적 이미지를 풍겼고 또한 교양미가 넘쳤는데,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옷차림새도 노숙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신령을 청문해 문복해 보니 이 아주머니가 왜 세상을 굴곡이 많게 사는지 짐작이 되었다.

"기구한 삶을 스스로 자초했네요."

"뭘 자초했다고 합니까?"

"신의 자손이 운명을 거부하니까 그렇죠. 따님도 그 풍파 때문에 벌써 인생살이가 험난하네요…"

신의 자손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머니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금방 울음을 터트린다. 한참 울고 난 후에 파란만장한 삶의 스토리를 스트레스 해소하듯 토해냈다.

아주머니는 15년 전에 내림굿을 받았다고 한다. 이 무렵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홀아비인 남편의 친구와 재혼하고 무당 생활도 청산했다고 한다.

재혼해서 몇 년은 그런대로 무탈하게 살았는데 그 후부터는 인생이 엉망이 되었다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자신은 특별한 증상도 없이 몸이 매일 아프거나 밤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몽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몸이 아파 만사가 귀찮아 살림살이와 부부생활에 좀 소홀하니까 신랑은 술과 여자에 빠져 최소한 생활비만 주고 집에는 가끔씩 온다며 한숨이다. 또한 딸은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뒷전이고 유흥업소를 전전하더니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않고 양아치 같은 사람을 만나 동거하고 있다며 기구한 팔자타령을 한참동안 했다.

"신령님께 속죄하고 다시 모시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람은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몇 달 전부터 신령을 다시 모시고 무업을 재개했다. 수입은 보잘 것 없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좋고, 말썽만 피우던 딸도 정신을 차려 기쁘다며 가끔 안부전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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