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노예계약 vs 가족같은 신뢰계약

故장자연의 발인제가 3월 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한 신인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그는 방송 중인 드라마에 출연했고 두 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고(故) 장자연의 이야기다. 장자연은 생전 심경을 털어놓은 글을 남겼다. 자신을 짓누르는 무엇인가에서 벗어나고픈 아리송한 구절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장자연의 고통은 소속사와의 갈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자연의 자살을 통해 연예기획사와 배우들의 관계를 짚어봤다.

공정위 조사 연예인 중 204명 불리한 계약
# 노예계약의 갇힌 소속사와 연예인

장자연의 자살에는 소속사와의 갈등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자연의 측근이었던 한 매니저는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희생양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자연이의 뜻에 따라…(중략)"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현 소속사는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발끈했다.

'실과 바늘' 같은 연예인과 소속사는 서로가 만족할 만한 전속계약을 맺기가 어렵다. 소속사는 연예인을 스타로 키우기 위해 때로는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소 불공정한 계약을 요구한다.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연예인들의 노예계약이 바로 그 극단에 서 있다.

제2의 보아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들, 이들에게 연예기획사와의 계약관계는 미래를 좌우할만큼 중요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간에 체결되는 불공정 계약을 대대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 10곳을 조사한 결과 전속계약에서 연예인에게 불리한 유형의 약관 조항을 찾아내 계약을 수정,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이 불공정 계약에 발목을 잡힌 연예인은 총 204명이나 됐다.

당시 공정위가 찾은 조항들은 홍보활동 강제 및 무상출연 조항, 과도한 사생활 침해 조항, 연예활동에 대한 자율적 의사 결정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항 등이다. 연예기획사가 주최, 주관하는 행사에 연예인은 무상으로 출연한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 이동하는 위치까지 모두 통보하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전부 소속사에서 지휘하는 경우도 불공정 사례로 지적했다.

연예기획사들의 조항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요즘 전속계약은 연예인들에게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는 게 연예계의 평가다. 공정위가 지적한 일부 조항에도 전체 계약 내용으로 볼 때 연예인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공정위가 문제를 삼은 조항들은 대형 기획사에 국한된다는 비난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독소 조항을 삭제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정 노력도 하고 있다.

문근영·김주혁 소속사 계약서 없이 한솥밥
#소속사는 연예인에게 제2의 가족이다

소속사와 연예인도 궁합이 있다. 불공정 계약으로 얼굴을 붉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가족보다 더 친밀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계약서에 묶여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수년째 계약서 없이 신뢰만으로 움직이는 연예인과 그를 돌보는 연예기획사도 있다.

배우 문근영, 김주혁은 계약서 없이 연예 기획사 나무액터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신인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준 매니저와 여전히 한솥밥을 먹고 있다. 문근영은 매니지먼트사의 회사 상호도 직접 만들었을 정도다.

배우 전지현과 그의 소속사(혹은 매니저)도 만났다 헤어지기가 비일비재한 연예계에서 남다른 호흡을 자랑해왔던 사이다. 비록 얼마 전 핸드폰 복제사건으로 결별설이 나돌았지만 전지현은 재계약을 마쳐 외부에 나도는 불협화음을 소거시켰다.

한 연예관계자는 "연예인의 입장에서 신뢰관계가 깊이 형성되지 않은 연예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할 때 따져볼 것이 많다. 고액의 전속계약금이 회사와 연예인간에 신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