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잡는 영화] 붉은 밀실-금단의 왕게임

V시네마

오늘 소개할 영화를 말하기 전에 일단 'V시네마'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V시네마란 '비디오 시네마' 의 약자로, 극장용 영화가 아니 비디오 영화라는 뜻이다. 즉 극장 상영을 하지 않은 채 바로 비디오 렌탈샵에 유통되는 영화를 말한다.

일본 영화계에는 V시네마 시스템이 정착 되어 또 다른 영화산업의 주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토에이의 V시네마는 액션 영화 쪽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어 어지간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의 영화사 들이 V시네마에 계속 힘을 쓰고 있는 이유는 역시 돈이 잘 벌리기 때문이다. 일본 비디오 시장의 연간 매출액은 일천억 엔에 달해 어느새 극장영화 산업의 배를 넘는 일본 최고 매상의 사업장이 되었다.

영화사의 입장에서 특별한 광고홍보도 필요 없으며, 전국에 바로 쉽게 유통이 가능하다. 또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극장에 갈 필요 없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 V시네마의 성장요인이다.

일본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려면 보통 천 팔백엔(약 만 팔천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비해 비디오 대여비는 사백엔(약 사천원)에 불과 하다.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V시네마가 대세가 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토에이를 비롯한 일본의 영화제작사들은 실리적으로 V시네마에 집중하고 있다. 저예산의 V시네마 중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얻어 다시 주류 상업영화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주온]이다.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V시네마로 주온을 만들었으며, 인기에 힘입어 극장 상영 영화로 나간 케이스. [주온]의 엄청난 성공 이후로는 [스파이더맨]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샘 레이미의 러브콜을 받고 할리우드에 건너가 [그루지]를 연출했다.

이 영화가 전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미국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최초의 일본 감독이자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신예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 외에도 수오 마사유키 감독을 들 수 있다. 리차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한 [쉘 위 댄스]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96년 작 [쉘 위 댄스]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그 역시 V시네마 출신으로 [변태 가족, 형의 새색시] 같은 로망 포르노 작품을 찍었던 경력이 있다.

[킬러 이치], [오디션]을 비롯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리메이크 작 [카타쿠리가의 행복] 등 숱한 화제작을 만들어낸 미이케 다카시 감독 역시 V시네마 출신이며, 그의 빠른 영화촬영 스타일도 역시 V시네마에서 익힌 듯 보인다.

그는 [기코쿠]를 마지막으로 V시네마를 떠나서 메이저엔 어울리진 않는 삐뚤어진 시각의 독특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 있는 인기 감독이다.

V시네마 시스템에서 주목할 점은 감독 데뷔가 쉽다는 것이다. V시네마는 여느 상업영화에 비해 몸집이 작은 저예산 영화가 대부분이라는 특성 상, 참신한 아이디어에와 각본, 어느 정도의 연출력만 있으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흥행에 실패한다고 해도 상업영화에 비해 몸집이 작은 덕분에, 젊고 실험적인 감독과 제작사 둘 다 윈윈 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충무로 시스템은 거의 도제제도(徒弟制度)에 가깝기 때문에 신인감독이 제작사에서 투자를 받아 데뷔를 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예술이란 개인의 상상력을 펼치는 것이기에 도제식의 배움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도제제도에 따른 권위주의와 비효율적으로 긴 시간을 요하는 충무로 시스템, 아니 한국의 영화산업이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디오 영화가 있지만, 에로에 국한되어 있는 소재의 편협함과 질적인 부분에서도 일본의 V시네마를 따라가지 못한다.

붉은 밀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V시네마 중 [붉은 밀실 -금단의 왕게임]이다.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는 일단 내 능력으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고, [주온] V시네마 버전 같이 널리 알려진 영화도 아니며, 재미있는 소재를 다뤘지만 영화 자체는 조야한 V시네마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천만엔을 건 왕게임을 다룬다. 왕게임이란 카드를 뽑아 왕카드를 뽑은 사람이 다른 카드의 번호를 불러 명령을 지시하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왕이 '2번이 3번에게 키스한다'라는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천만엔 이라는 거금이 상금으로 걸린 이 게임에 그런 시시한 요구를 할 리가 없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은 한 명에게 천만 엔을 주는 왕게임에서 점점 격해지는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들을 감상하는 것이 작품의 재미포인트... 라고 생각되지만 과연 어떨까? 그럼 영화를 직접 느껴보자. 영화를 거의 반은 보여주다시피 하니 난 전혀 보고 싶지 않다는 분은 읽지 마시길.

게임의 목적인 가학적인 벌칙을 내려 경쟁자들을 탈락 시키는 것에 집중한 이 영화는, 훌륭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에로와 폭력에 집중할 뿐 그 외에는 그다지 장점이 없는 흥미주의에 불과한 영화가 탄생했다.

감독이 처음부터 이런 작품으로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부족에 의해 탄생된 것인지 고민했지만 [붉은밀실] 2편을 비롯한 야마우치 다이스케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이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하니 아쉬울 뿐이다.

영화 자체는 그렇게 잔인하지도 야하지도 않고 소재의 뛰어남도 잘 살리지 못한 작품이지만, V시네마라는 시스템의 산물이 보통 어떤 작품을 찍어내는데 유용한지 잘 알 수 있었다고 할까. 기회가 되면 토에이의 액션영화를 한번 보고 싶지만 한국에선 구해보기 힘드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한줄요약

시간 때우기 영화론 딱 좋음! 러닝타임도 1시간밖에 안 된다.

p.s. 마지막엔 날림이 아니라 영화의 막바지까지 다 까발리면 재미없을 것 같아 저런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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