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영진공] 코리안 파이 - 허접한 입봉 감독의 VOD 코멘터리

몇 일 전 우연히 남로당에 들어와 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회원 가입한 후 이런 저런 일로 들르지 못했던 터라 가물 거리는 기억 속에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끄집어내 로그인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콘텐츠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단은 화상특위에 눈길이 가더군요. 글쎄요. 에로 비디오 쪽에 직업적으로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아직도 에로 비디오를 유료 서비스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기 때문이었을까요? 마치 멸종한 희귀 동물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도 반가운 사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건 바로 성인 베스트 10 순위였습니다. 정확히 어떤 시스템으로 베스트 순위가 집계되는지 몇 명이나 봐야 일위에 오를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성인 베스트 10 중 2위에 [코리안 파이]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코리안 파이]는 2003년 초에 출시되어 업계와 평단 양 쪽에서 '당황스러운 작품이다.', '작가주의 냄새는 나는데 난해하다.' 등의 시원찮은 평을 듣고 대여점 쪽에서도 손님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당시 이 바닥에서는 나름대로 이슈였다면 이슈였을 'H양 몰카 사건'의 실제 주인공이던 하늘 양이 출연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여점 쪽에서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고 그 후 이 비디오는 손님들의 무관심 속에 쓸쓸이 잊혀져 갔지요. 오랜만에 되새겨 봐도 가슴 아픈 기억이군요. 아~슬픕니다.

그런데 코리안 파이가 예전에 쫄딱 망했는데 지금 화상특위 베스트 2위에 오른 거랑 저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이 영화는 제가 다니던 영화학과 졸업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 준비해야 할 성(?)스러운 대학생 신분으로 에로 비디오를 찍은 그 싹수가 노란 감독이 누구냐고요?

바로 접니다.

제가 바로 이 영화를 2003년에 연출한 감독입니다. 무슨 이유로 대학 재학 중에 에로 비디오 감독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길고 긴 이야기라 언제 다시 이야기 해 드릴 기회가 생기면 아주 제대로 해 드리도록 하겠고, 일단은 감독들이 DVD 코멘터리 작성하듯 이 비디오를 만들면서 미쳐 하지 못했지만 전해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리뷰라는 형식을 빌어 주절 주절 늘어놔 보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학교 졸업 작품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오래 동안 비디오 업계에서 조감독과 작가로 활동하면서 감독으로 입봉할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기도 했지만요.

대학 졸업은 다가오고 졸업 작품은 찍어야 되고 감독으로 입봉도 하고 싶던 터에 거짓말처럼 우연히 감독 연출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에로 비디오 조감독으로 일할 때 감독으로 모시고 있던 분이 '이번엔 니가 한번 연출해 볼래?' 라면서 본인은 피디 역할로 도와주겠다면서 감독 의뢰를 해 왔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은 '영화관의 스크린 앞으로 걸어간 영화감독이 몸을 돌려, 스크린에서 반사된 빛이 관객들의 얼굴에 어른거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감동적인 광경'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에로 비디오 감독으로 입봉한다고 해도 커다란 극장 개봉관에서 자신의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얼굴에 자신이 창조한 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느 누군가가 힘든 노동의 대가로 번 돈으로 제가 만든 비디오를 대여점에서 빌린 후 두루마리 휴지 하나 준비해 놓고 숨 죽인 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관심을 가져 줄 것이라 생각해 보니 그 역시 상당히 감동적인 광경일 것 같았습니다.

수 년간 영화 매니아 신분으로 남의 작품 씹어대기만 하고 내가 하면 저거보다 잘 할 수 있는데 라며 칼만 갈아오다 드디어 그 칼을 칼집에서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얼마나 기뻣겠습니까? 영화광의 세 단계인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쓰고, 영화를 만든다.' 중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올라 최강의 영화광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입봉 제의는 갑작스러웠지만 저는 감독이 되면 해야 할 이야기를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 제가 다니던 지방 소도시 외곽에 위치한 학교에는 80년대 운동권 선배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들이 운동(?)하던 이야기가 후일담처럼 대학 이곳 저곳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후일담들은 80년대의 상처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90년대 후반 학번을 가진 새내기들에 의해 깔끔하게 청소가 되고 있던 시기였죠.

주인공 동명은 재학 중 데모만 하느라 취업 준비를 못 해 결국 졸업한 후에도 직장을 잡지 못해 백수로 지내고 있는 취업 재수생입니다. 그는 대학생 신분으로 사회를 위해 할만큼 했다고 자부하지만 아무 이득도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아 세상에 대해 미련한 자신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졸업 후 사회에 적응 못한 채 방황하다 - 상처 받은 짐승이 숨을 곳을 찾아 은신처로 돌아오듯 - 자신이 다니던 지방의 대학교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과 후배인 옛날 여자 친구 지선이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꼭 비가 올 것 만 같은 우중충한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 교정을 돌며 학과 후배 지선과 연애를 할 당시 교정 이곳 저곳에서 스릴을 즐기며 야외 섹스를 하던 기억을 떠 올립니다.

▲ [코리안 파이]의 스틸 컷

한편 그 시간 지선은 동명이 졸업과 동시에 자신을 버리고 학교를 떠난 후 사귀게 된 신입생 학과 후배 현민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아직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신입생 현민은 그녀의 과거가 불결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 만큼 남을 사랑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현민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뜨겁게 사랑했던 상상을 할 때마다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그녀를 구타합니다. 그럴 때마다 연상녀 지선은 과거 실연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지만 너그럽게 현민의 분노를 풀어주기 위해 섹스를 해줍니다. 그런 폭력적인 섹스는 두 사람만의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날은 손님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선의 옛 애인이자 두 사람의 학과 선배인 동명이죠. 두 사람이 폭력적이고 격렬한 섹스를 끝내자마자 동명이 집 안으로 쳐 들어와 후배 현민을 관절 조르기로 괴롭히기 시작하고 현민은 무참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짓밟힙니다. 지선 앞에서는 강한 현민도 선배 동명 앞에선 가냘픈 후배일 뿐이었기 때문이죠.

동명은 현민에게서 관절 조르기로 기브업을 받아낸 후 '취직이 안 되 집에서 쫓겨 났으니 당분간 여기서 지낸다' 라고 선포합니다. 그는 현민이 꼬장 부리는 자신을 피해 방에서 나가 있을 동안 흘러간 사랑 지선을 꼬셔 섹스를 하기 시작합니다. 동명은 지선과의 섹스를 통해서만 어느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상처 받은 자존심을 치유 받습니다.

몇 년만에 섹스를 하며 자신만 돌아갈 자리가 없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지선에게 '너랑은 그 동안 너무 많이 해서 재미가 없다.'고 한 후 더럽다고 침을 뱉고 방에서 나가 버립니다. 지선은 또 다시 상처를 받고는 눈물을 흘리는데 기다렸다는 듯 현민이 들어옵니다.

곧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현민은 동명과 섹스 하는 소리를 다 들은 후 지선과의 이별을 직감합니다. 분노에 찬 그는 또 다시 지선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속절없이 맞고만 있던 지선은 순간적으로 모든 희노애락의 감정을 초월해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남자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생긴 거라고나 할까요?

그녀는 사랑의 초능력을 발휘해 현민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꼭 껴안아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점점 아기처럼 변해가는 현민을 보며 뭔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지선은 드디어 여성성으로 상처받은 남성들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만족하는 이상적인 섹스를 하게 되고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한편 동명은 학교 내에서 프리랜서 창녀로 활동하는 민지를 찾아가 외롭다고 하며 연애하자며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동명의 연애 제의를 거절하는 민지에게 화가 난 동명은 그녀에게 돈을 뿌리고 성교를 시작하는데 민지는 돈이 적다며 불평을 하기 시작하고 둘은 성교를 하며 싸웁니다.

그러다가 화가 난 민지는 질경련을 일으키고 동명의 성기는 민지의 질 사이에 완전히 낑기고야 맙니다. 동명은 질경련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 하고 민지는 지선에게 구해달라고 전화를 합니다.

이상적인 섹스를 마친 후 평화를 즐기고 있던 현민과 지선은 못난 선배 동명을 구하러 민지의 방으로 달려 갑니다.

지선은 결합된 상태로 괴로워 하고 있는 동명에게 다가가고 동명은 지선의 뒤에서 환상적인 후광을 봅니다. 마치 천사가 다가오는 것 처럼요. 지선은 동명의 머리를 엄마처럼 쓰다듬어 주기 시작하고 동명은 마냥 어리고 귀엽기만 하던 지선의 변화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던 민지는 지선을 엄마라고 부르며 자기 머리도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민지의 질경련이 풀리고 동명과 민지는 결합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고통 속에서 해방된 네 사람은 어디선가 흘러 나오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고 동명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동명은 지선에게 사과를 하고 지선과 현민의 행복을 빌며 학교를 떠납니다. 현민도 지선의 진실된 사랑을 느꼈다고 하면서 이제 미련없이 군대에 갈 수 있다고 하며 떠납니다.

1년 후...지선은 또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침대 위에서 군에 가 있는 현민의 편지를 읽습니다. '누나가 정말 그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누나 생각만 해. 아직도 내 손가락에는 누나 속살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애.'

▲ [코리안 파이]의 두 주인공 하늘과 차린

동명 역의 관우씨, 지선 역의 h양-하늘씨, 현민 역의 신인이었던 재민씨, 민지 역의 에로계의 탑스타 차린씨... 다들 시나리오에 뭔가 묘한 매력이 있다면서 영혼이 느껴지는 연기를 해 주었고 저도 바로 이곳에서 내 힘으로 뭔가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가슴이 벅찬 채 열정적으로 연출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런 저런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총 촬영 기간이 하루였다는 점입니다. 한 시간이 넘는 영화를 하루 만에 찍는 건 조금 빠듯한 일정이긴 합니다만 촬영 기간이 하루였기 때문에 제대로 못 찍었다는 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이 영화의 모자란 점들은 다 제가 미숙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신들린 듯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바로 대여점에 출시를 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건 저의 이름으로 만든 작품이 우리 동네 비디오 대여점 신작 코너에 꽂혀 있던 풍경입니다. '내가 이 영화 만들었어요.' 라고 주인 아저씨한테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아~앞으로도 그 날의 이미지들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늘을 날 듯이 좋았지만 회사에서는 에로 비디오 찍어오는 줄 알았는데 다른 비디오와는 달리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당황을 하는 눈치였고 대여점에서의 손님 반응도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디오를 출시하자마자 H양 몰카 사건이 터져 스포츠 신문에서 인터뷰 세례를 받던 주연배우 하늘양의 덕을 볼 수도 있었는데, 작품 성격이 너무 어두워 기대만큼 팔리지 않아 속상해 하는 것 같더군요.

저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재능을 믿고 투자한 제작자에게 기대만큼의 수익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항상 저를 속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졸업 작품으로 심사를 한 후 그냥 빨리 졸업 시키는 편이 낫겠다 고 생각을 했는지 졸업하라고 하더군요.

감독을 하면 모든 게 바뀌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채 2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저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항상 제대로 못 만든 데뷔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남로당 화상특위 베스트 순위에 올라와 있는 [코리안 파이]를 보게 됐고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코리안 파이]를 보는 모든 남로당원들에게 행복한 발기의 시간이 찾아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작품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남로당에 감사하며 허접한 입봉 감독의 VOD 코멘터리를 마치겠습니다.

p.s.1

무비위크(2003.4.8~4.14) 리뷰 발췌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 하게 했던 'h양' 섹스 비디오. 그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자처하고 나섰던 에로 배우 하늘! 그녀가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싶은 작품이다.

'h' 양으로 지목됐던 함소원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극구 부인했고, 하늘이란 여자가 나타나 '내가 h양'이라며 뒤통수로 인터뷰까지 한 마당이라, 당시의 선정적 기사들로 도배돼 있는 재킷만 보고도 빌려 보고픈 마음이 솟구친다. 제목도 [아메리칸 파이]의 패러디인 [코리안 파이] 아닌가.

하지만, 여러분, 그런 걸 100퍼센트 믿는다면 진정한 에로 마니아가 아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뜨거운 영화가 아닐 뿐더러, 심각하게 말해 제법 '작가주의적'인 냄새까지 나고 있음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다소 서정적이다. 섹스신을 빼고는 진행도 매우 더딘 편이다.

p.s.2.

[코리안 파이]는 회사에서 지은 제목이고 디렉터스 컷 타이틀은 [욕정은 오래 지속된다]입니다.

* 본 기사는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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