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서 소신 있는 정치인 김운범으로

실존 인물 연기 부담 느끼기도

'불한당' 제작진과 재회에 기대

배우 설경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올 설 연휴, 스타일리시한 정치 드라마 한편이 스크린에 걸린다. 영화 ‘킹메이커’(감독 변성현)다.

26일 개봉한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영화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과 제작진이 재회한 작품이다. 설경구는 ‘불한당’에 이어 다시 한번 변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솔직히 정치 이야기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닌데 ‘불한당’ 팀이 다시 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어요. 캐릭터도 조금은 부담이었죠. 아시다시피 돌아가신 DJ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고 캐릭터 이름도 처음엔 ‘김대중’이었거든요. 감독님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고 그러니까 좀 편해지더라고요. 처음엔 안 하고 싶었어요. 근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아우른 분이고 이미 너무 존경받는 인물이라 배우로서 해야 할 부분이 없다고 느꼈거든요. 실존 인물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모사할 수도 없었고요.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김운범은 치열한 선거 전쟁의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치인이다. 그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세상에 도전하는 인물로 남다른 소신과 열정을 품고 있다. 선거 전략가 서창대와 함께 선거를 뒤흔들고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게 된다. 설경구는 김운범의 강직한 리더십은 물론이고 선거 한복판에서 그가 느끼는 인간적 고뇌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대선 후보라는 거창한 목적 의식을 가진 사람 이전에 인간 김운범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출세욕, 권력욕 때문에 대권에 도전한 인물이 아니라 그냥 김운범 그 자체에 더 집중한 것이죠. 그게 더 재밌었어요. 처음부터 큰 인물로 보이려고 했다면 저도 불편하고 보시는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목포 연설을 꼽았다. 변 감독이 중요한 장면으로 강조했던 만큼, 설경구도 여느 때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부담이 컸죠. 원래 제 성격이 남들 앞에서 막 얘기하고 설득하는 편이 아니라서 촬영 한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양수리 야외 세트에서 찍었는데 엄청 폭염이었어요. 일단 안 더운 척 해야 했어요.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그래도 무사히 끝났어요. 생각해보면 김운범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어필하기보다 리액션이 더 많은 인물이에요. 주로 참모들 의견을 듣고 한마디 툭 던지는 식이죠. 그래서 대선 후보들이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운범도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김운범과 서창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대의 아래 같은 배를 탄다. 하지만 승리에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동반돼야 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차이는 긴장감을 폭발시킨다. 나아가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감수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두 사람의 호흡이 영화의 핵심인 만큼, 설경구는 변 감독에게 직접 이선균을 추천했다.

“이선균이란 사람 자체가 좋아요. 기복이 없고 멘탈도 강하고 든든해요. 그때 tvN ‘나의 아저씨’가 방송 중이었는데 극장 장면에 영화 ‘박하사탕’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우연히 그 장면을 보고 이선균씨를 추천하게 됐어요. 그것도 인연이면 인연인 것 같아서. 이선균씨가 맡은 서창대 캐릭터가 참 중요해요. 김운범은 그냥 큰 판을 깔아주고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서창대가 감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아야죠. 그게 ‘킹메이커’의 핵심이었어요.”

지난 1994년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를 시작한 설경구는 내년이면 데뷔 30년을 맞는다. 영화 ‘박하사탕’으로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그의 연기와 작품은 한국 영화의 역사 그 자체였다. 한동안 깊은 슬럼프에 시달리던 때도 있었지만 ‘불한당’이라는 세련된 액션 느와르로 연기 인생 터닝포인트를 맞았고 ‘살인자의 기억법’, ‘우상’, ‘생일’, ‘퍼펙트맨’, ‘자산어보’ 등으로 또 한 번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설경구의 차기작은 넷플릭스 ‘길복순’이다. 전도연, 이솜, 구교환 그리고 변 감독과 다시 한번 만난다.

“매번 뭘 얻으려고 작품을 하진 않아요. 사람들과 함께 한 것만으로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죠. 영화를 처음 했을 때 상을 많이 받아서 ‘아 영화하면 이렇게 늘 받는구나’, ‘해외 영화제도 자주 가는 거구나’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10년쯤 그런 일이 뚝 끊겼다가 ‘불한당’ 이후로 다시 많은 분들 사랑 받고 상도 받게 됐어요. 어릴 땐 멋모르고 받았고 오히려 지금이 더 떨리고 신인상 받듯 그래요. 상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더 잘해야겠는 생각도 들고요. 다음 작품은 ‘길복순’인데 제 분량이 많진 않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여태 본 작품 중 제일 상업적이에요. 변성현 감독의 또 다른 맛이 나올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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