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논란 후 '이웃사촌'으로 스크린 복귀

자택격리된 정치인 역할 열연

불편한 시선도 인정, 마음 열어주길

배우 오달수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배우 오달수(52)가 돌아왔다. '미투'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한 뒤 약 2년만의 복귀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가 관객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오는 25일 개봉하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 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와 밤낮으로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깊은 신념을 가진 야당 총재 역을 맡은 오달수는 최근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공식석상에 나서는 건 지난 2018년 2월 개봉한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이후 '이웃사촌'이 처음이다. 오달수는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그간의 근황을 전했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한두 어번 고사했어요. 그분(故 김대중 대통령)께 누가 될 것 같았고 그분의 진심을 잘 표현할 자신도 없었거든요. 또 시나리오 초고가 전라도 사투리 버전이었어요. 사투리 대사 특유의 감성이나 정서를 담아내야하는데 (내가 잘 연기하지 못할 것 같아) 무리라고 생각했죠. 근데 감독님이 제가 좀 더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수정해주셨어요. 그래서 '오케이,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이웃사촌'은 '7번방의 선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환경 감독의 7년만의 신작이다. '7번방의 선물'처럼 단란한 가족, 특히 아버지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면서도 이번엔 1980년대 시대상을 바탕으로 한층 확장된 인간 관계 속 휴먼 드라마를 그린다. 영화는 '신분, 계급, 정치색까지 다른 두 남자가 이웃으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따뜻하고 경쾌하게 담았다.

특히 이의식은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품은 정치인으로, 故 김대중 대통령을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다. 오달수는 개성 강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감동을 주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전작 '조선명탐정' 시리즈, '도둑들', '암살', '베테랑', '신과함께-죄와벌' 등에서 연기해온 캐릭터보다 웃음기는 덜하지만, 따뜻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작품에 무게감을 더했다.

"지금까지 제가 해오던 연기 패턴과 분명히 달랐어요. 영화를 수십편 찍으면서 다 다르게 연기했을텐데 이번엔 조금 더 낯설었달까요. 그래도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 도전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저랑 막걸리 동지에요. '7번방의 선물' 때부터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젠가 한번 같이 막걸리 마시다가 대뜸 읽어보라고 시나리오를 주고 갔어요. 그게 '이웃사촌'이었죠. 저한테 꼭 한 번 이런 역할을 맡겨보고 싶으셨다고 해요. 이렇게 진지한 캐릭터에 도전해보고싶다는 생각이 저한테도 일면 있었겠죠. 배우로서 변신이라면 변신인데, 저는 그런 말도 과찬으로 들립니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이웃사촌'은 개봉까지 여러 풍파를 겪은 작품이다. 지난 2018년 2월 크랭크업했지만 오달수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고 '미투'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개봉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 가운데 경찰은 지난해 초 오달수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 내사 종결 처리했다. 이와 함께 그는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고 독립영화 ‘요시찰’ 출연 소식을 전하며 복귀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촬영 이후 무려 3년을 표류한 ‘이웃사촌’은 배급사를 변경하고 마침내 개봉일을 확정했다. 자연스럽게 오달수의 상업영화 복귀도 이뤄졌다. 오달수는 "영화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었다. 한동안 카메라 플래시를 안 받다가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 무대에 서니까 무섭고 떨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며 '미투' 논란이 처음 터졌던 약 2년 전 그 날을 회상했다.

"처음 ('미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충청도에서 '이웃사촌' 막바지 작업 중이었습니다. 혼이 빠질만큼 정신없던 현장이라 중간에 혼자 빠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나중에 촬영 끝나고 서울에 가니까 제가 '그간 변호사들하고 계획을 짰다'고 알려져있더군요. 깜짝 놀랐죠.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요. 결국 병원 신세를 좀 지다가 부산에 있는 어머니 집에 내려갔는데 집 근처에 기자분들, 카메라들이 점점 늘어나서 형님이 계시는 거제도로 가게 됐습니다."

오달수는 공백기 내내 거제도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연기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기 위해 또 불필요한 상념들을 지우기 위해 자연 속에서 농사일에 몰두했다고.

"'단순하게 살자', '슬기로운 귀양살이를 하자'고 다짐했어요. 가장 단순하게 내 근육을 움직이고 내 노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텃밭 농사였죠. 저희 형님이 원래 건축가인데 집에 넓은 텃밭을 만드셨어요. 하루종일 텃밭에 있었어요. 아침에 해뜨기 전에 고추, 상추, 포도에 물 주고 막걸리 한잔하고요. 시골에선 해가 지면 농사 셔터문을 내려요. 그렇게 사방이 어두워지면 외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동안 제일 길게 쉰 게 한두 달 정도였고 늘 관객들, 현장 식구들이랑 살아왔으니까. 사람이 좋고 사람이 그리워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툭 끊겨버리니까 좀 그립더만요."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지만 오달수의 복귀를 향한 시선은 엇갈린다. 환영하는 팬들이 있는 반면 시기상조라는 반응도 거세다. 물론 연예인의 자숙에 정해진 기간이나 방식은 없지만 중요한 건 대중의 정서다. 여전히 논란의 여파가 남아있는 상황 속에서 따가운 시선은 ‘이웃사촌’, 그리고 활동을 재개할 오달수가 반드시 풀고가야할 숙제다. 오달수는 "불편한 시선에 대해서도 인정한다"며 인터뷰 말미 조심스럽게 속내를 전했다.

"저희 영화를 보시겠다면 이왕이면 배우하고 좀 친해지려고 노력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고 마음을 열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미안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하면 더 솔직담백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 그게 지금 제 전부입니다. 쉬는 동안 영화계 패러다임이나 플랫폼에 많은 변화가 생겼더라고요. 하지만 세상이 뒤집어져도 연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 저를 또 캐스팅해주신다면 좋은 시나리오 꼼꼼하게 따져서 불려갈 생각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지금껏 해왔던 대로 할 겁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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