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십여 년 전, SBS '아내의 유혹'에서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라 우기는 설정으로 드라마계를 평정했던 김순옥 작가가 또 한 번 안방을 접수했다. '막장'이라 욕하면서도 채널을 고정시키는 힘, 김순옥표 중독성 강한 필력이 2020년에도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연출 주동민/제작 초록뱀미디어)는 자식을 위해 악녀가 될 수밖에 없던, 세 여자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 화두인 부동산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첫 방송부터 단숨에 10%를 넘기더니 매회 상승세다.

16일 방송된 7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순간 최고 시청률 16.7%, 전국 시청률 14.5%(2부), 수도권 시청률 15.9%(2부)를 기록하며 7회 연속 월화극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광고 관계자들의 주요지표인 2049 시청률 역시 5.8%(2부)로 1위다.

'펜트하우스'는 첫방송부터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배경으로 호화스러운 파티, 여학생의 투신 등 센 장면으로 충격을 안겼다. 재벌가 출신인 펜트하우스의 퀸 심수련(이지아), 최고의 소프라노이지만 허영심에 찌든 천서진(김소연), 딸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오윤희(유진) 등 인물 설정부터 범상치 않다. 장르로 따지자면 스릴러에 가깝다. 납치, 감금, 폭행, 협박, 불륜, 사체유기, 불법촬영 등 웬만한 범죄물에 나올법한 세상 모든 악행이 쏟아진다. 심지어 중학생들의 왕따, 집단 구타 등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방송 2회 만에 "보기 불편하다"는 질타와 함께 시청 등급 논란이 일었다. 결국 제작진은 일부 회차의 시청 등급을 19세 이상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자식들을 성공시키려는 부모들의 집착이라는 기본 설정 아래 자극적인 전개는 어느정도 예상됐던 바다. 하지만 독한 장면들이 경쟁적으로 나열될뿐,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메시지나 개연성은 희미하다. 더 많은 부와 명예, 권력을 향한 욕망이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라지만 그토록 극단적인 일들을 벌이는 동기라기엔 과하게 느껴지고 와닿지도 않는다. 여기에 교복만 입었을뿐 최소 대학생 같은 미성년자들, 싱크로율이 전혀 맞지 않는 성악 립싱크 등 엉성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튀고, 숨 쉴 구멍 없이 과하고 독한 대사는 피로감을 더한다.

이렇게 드라마의 빈틈을 눈치챌 때쯤 '펜트하우스'는 빠른 전개, 화려한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돌린다. 그 와중에 돋보이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배우 이지아, 김소연, 유진 등은 '배우가 아깝다'는 말이 나올만큼 노련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눈빛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이들의 조합은 몰입을 더하며 시청률 상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SBS 캡처
시청자들은 '펜트하우스' 속 수많은 악인들이 어떤 응징을 받을지, 얼마나 통쾌한 복수전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빠져든다. 당한 게 많을수록 복수극은 더 강렬해진다. 억지 설정이라는 건 알지만 역설적으로 '어디까지 가나 보자' 식의 기대 심리가 생긴다. 그야말로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의 전형이다.

어떤 이야기든 크고 작은 갈등 구조는 필요하겠지만, 그저 자극적인 눈요기에 승부를 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물론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소재의 다양성은 뒤로한 채 불륜, 복수 등 몇개 키워드로 정리되는 뻔한 스토리들은 드라마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로 지적받곤 했다.

'펜트하우스' 역시 불편한 자극을 쫓는 막장드라마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막장'은 여전히 잘 먹히는 소재임이 분명하고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적중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시청률은 커녕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드라마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무관심보다 낫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만 사회 통념상 소화하기 거북한 전개 탓에 사회적, 도덕적 비난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올 가을 시청자들의 선택은 '펜트하우스'다. 방송사들이 매번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유명 작가와 손잡고 막장 드라마를 편성하는 이유다. 이제 중반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펜트하우스'가 또 어떤 전개로 안방을 뒤집어놓을지 궁금증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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