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서 피아니스트 준영 열연

잘 몰랐던 클래식 매력에 푹

내면 단단한 박은빈에 의지하기도

배우 김민재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냠냠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빠른 전개, 자극적인 소재가 대세인 시대다. 영화나 드라마는 서로 경쟁하듯 선정적인 주제를 내놓고, 잠깐 호흡이라도 느려지면 금세 심심하고 지루하다는 불평이 나온다. 이 가운데 등장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자칫 모험처럼 보였다. 아무리 신선하다 한들 독설, 막장에 길들여진 2020년의 시청자들에게 느리고 잔잔한 로맨스가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묵묵히 고유의 색깔을 지켰고 치열한 드라마 시장에서 톡톡히 인기를 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흥행의 중심엔 새로운 멜로킹으로 떠오른 배우 김민재가 있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지난 20일 최종회 시청률 6.9%(2부), 순간 최고 시청률 7.4%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김민재는 음악이 행복하지 않은 천재 피아니스트 준영을 연기하며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호평을 얻었다.

"시나리오부터 색달랐어요. 잔잔한데 요동치는 감정들이 신선했죠. 원래 클래식은 잘 모르는 장르였는데 스토리를 배우니까 정말 재밌어요. 가사가 없는 멜로디인데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재밌었어요. 인물 설정도 좋았어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지만 수줍은 성격에 말수도 적고 가정사도 있는 준영이를 꼭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배우 김민재를 비롯해 박은빈, 김성철, 박지현, 이유진 등 여러 명의 풋풋한 배우들이 등장했지만 누구보다도 섬세한 연기로 캐릭터를 만들었던 배우는 김민재다. 그는 특유의 깊은 감성으로 준영의 흔들리는 내면을 연기했다. "말수 적은 캐릭터 설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저도 평소에 말이 많지 않아서요. 준영이가 좀 답답해보이지만 필요한 표현은 꼭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면에선 실제 저랑 닮은 점이 많아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저도 상대방을 많이 배려하는 편이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힘들까봐 고민이나 감정을 숨길 때도 있고요. 그래도 연애할 때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긴 해요. 다만 확신이 있어야겠죠.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잘 안 만들기도 해요.(웃음)"

사진=냠냠엔터테인먼트
김민재가 연기한 준영은 국내 유수의 음악콩쿠르를 석권한 후 여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차례 우승한 인물. 피아노만 쳤던 그의 스물아홉 삶에 폭풍 같은 혼란이 찾아오고 꿈과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부담이었어요. 그냥 피아노 치는 수준이 아니라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라 막막했죠. 그래서 촬영 전에 한달 반 정도 틈틈이 레슨도 받고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어요. 사실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걸 보고 통으로 외웠어요. 악보 보는 법을 배우긴 했는데 곡에 대한 해석이나 스토리, 멜로디를 듣고 통째로 외우는 게 더 편하더라고요. 특히 손열음 씨 공연을 직접 가서 본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공연장의 긴장감과 피아니스트의 움직임, 입장과 퇴장, 작은 호흡 하나까지 배울 수 있었어요."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음악이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슈만 트로이메라이, 라벨 치간느, 베토벤 월광 소나타 2악장 X HAPPY BIRTHDAY,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 1악장 등의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는 차분하고 진한 러브스토리의 정서를 끝까지 유지시켜준 일등공신이었다.

"가장 많이 들은 건 드뷔시의 '달빛'이에요. '어떻게 그런 멜로디를 썼을까', '달빛을 어쩜 이렇게 소리로 표현했을까' 매번 감탄해요. 꼭 피아노로 쳐보고 싶은 곡이에요. 합주 장면도 정말 좋았어요. 오케스트라 합주 경험을 언제 해보겠어요. 다같이 합을 맞추는 부분에서는 항상 희열이 느껴져서 행복하고 재밌었어요. 클래식에 정말 많은 관심이 생겼죠."

사진=냠냠엔터테인먼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브람스-슈만-클라라'의 3각 관계를 이야기에 풀어내고, 송아와 준영의 로맨스에 클래식을 녹여내는 등 신선한 멜로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배우 박은빈과 김민재의 남다른 '케미'는 설렘을 더했다. 김민재는 박은빈에 대해 "잘 맞는 사람"이라며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박은빈은) 준영이가 송아를 처음 봤을 때처럼 느낌이 맞는 사람, 말을 안 해도 이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뭘 얘기하고 싶은지 잘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연기적인 부분에서도 의견이 잘 통했고요. 내면이 단단한 게 느껴져서 보고 있으면 멋있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역시 선배님!' 하면서 감탄했죠.(웃음) 연말 시상식 베스트 커플상이요? 주신다면 감사히 받아야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해 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선물했다. 바이올린을 좋아하지만 재능이 부족했던 송아와, 피아노를 치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던 준영은 뜨거운 성장통을 겪으며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다. 결국 정답은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마음의 힘을 키워가는 과정은 큰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김민재는 "준영이와 함께 성장한 기분이다. 연기하면서 확신이 없고 불안했는데 제 일을 사랑하게 됐다"며 작품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번에 팬들의 사랑을 크게 체감했어요. 그 사랑으로 자신감이 생겼고 연기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사실 그동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제 자신을 소모했고 슬럼프가 오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위로받고 힘을 얻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준영이를 하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근데 정말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제가 위로받고 있더라고요. 준영이의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저도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을 내뱉고 행복해진 것 같아요.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자길 좀 돌보기도 해야하잖아요. 앞으로도 배우로서 잘 나아가면서 또 준영이처럼 저를 좀 더 많이 사랑해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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