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김좌진 장군의 후손 송일국이 김구 선생이 읽었던 추도사를 낭독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25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는 청산리 독립전쟁 100주년을 맞아 김좌진,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알아봤다.

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송일국은 이날 게스트로 출연해 전현무, 설민석, 김종민, 유병재 등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이날 설민석은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연합해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청산리 대첩에 대해 설명했다.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에 크게 패한 일제는 독립군 말살을 위해 간도로 향했다.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 맞서 연합하기로 하고 백두산 동쪽 청산리로 이동했다.

첫 번째 전투는 백운평에서 벌어졌다.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는 낙엽으로 매복한 뒤 일본군을 유인했다. 만주 한인들은 일본군에 거짓 정보를 유포해 독립군을 도왔다.

일본군이 10 발자국 앞까지 진출했을 때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이 공격을 시작했고, 교전 끝에 일본군 2~300명이 몰살됐다.

같은 시각 홍범도 장군은 완루구에서 양쪽에서 일본군이 진입해 위기에 처하자 뒤에서 오던 일본군과 합세해 마치 한 편인 것처럼 앞에서 오던 일본군을 물리쳤다.

일본 기마부대가 주둔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좌진 장군은 곧바로 이동해 말을 공격, 12기를 전멸시켰다. 기마부대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몇 명은 어랑촌으로 가 소식을 알렸다.

김좌진 장군은 잠도 잊은 채 어랑촌으로 가 길목을 지켰다가 일본군을 습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매복했다. 독립군과 일본군 모두 최대 병력을 투입한 가운데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김좌진 부대는 열세에 처하고 말았다.

김좌진 장군이 '이제 끝이구나'란 생각을 할 때 마침 홍범도 장군이 부대를 이끌고 어랑촌에 와 일본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홍범도 장군은 김좌진 장군의 전투 소식을 듣고 어랑촌으로 왔고, 고지대를 선점해 일본군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의 연합 작전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송일국은 "일제강점기 수십년 동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일본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기록이 많지 않다"며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송일국과 멤버들은 독립기념관을 나와 김좌진 장군의 묘를 찾았다. 김좌진 장군의 손자인 송일국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 오니까 느낌이 색다르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대첩 10년 후 만주에서 한인들을 위해 정미소를 운영하다 박상실이란 사람에게 암살당했다. 박상실은 정미소에서 일하던 공산주의자로 암살 이후 도주해 암살을 한 이유는 미궁에 빠졌다.

이에 대해 송일국은 "최근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일제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 전으로 추정되는 김좌진 장군 일가의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송일국의 어머니 김을동과 김좌진 장군의 부인, 어머니, 며느리 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송일국은 "6.25 전쟁 때 네 분이서 서울집에 계셨는데 북한군이 들어왔다. 김좌진 장군, 영웅의 가족이라고 해서 살려둔다고 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지셨다더라"고 전했다.

김좌진 장군이 순국한 뒤 치러진 사회장에서는 김구 선생이 추도사를 읽었다.

송일국은 당시 김구 선생의 추도사를 낭독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사실 41살에 돌아가셨잖나. 한창 일을 하실 나이에 세상을 등지셨다는 게"라며 "제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니까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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