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성우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속는 순간, 우리 모두 끝장이야”

사제 중수(배성우)의 강렬한 구마 의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 ‘변신’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가족 사이에 숨어든 악마가 이들을 교란시키며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 우리가 평소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이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공포의 근원을 찾아냈다.

배우 배성우는 강구(성동일)의 동생이자 구마 사제인 중수를 연기했다. 중수는 과거 한 소녀의 구마의식 도중 벌어진 일 이후 큰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사제복을 벗으려 한다. 하지만 기묘한 일에 휘말린 강구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악마와 맞붙는 인물이다. 배성우는 특유의 이중적인 마스크를 십분 활용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실제로 공포물을 선호하지 않는데도 출연을 결심했을 만큼 그에게 ‘변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릴 땐 공포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엑소시스트’를 보고 후유증이 심해서 30대 이후로는 잘 안 봤어요. 그런데도 ‘변신’은 시나리오부터 소재도 신선했고 몰입도 있는 구성도 매력적이라고 느꼈죠. 굉장한 사건 속에 에너제틱하고 뜨거운 느낌까지 살려서 완성도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중수는 구마사제로서의 직업적인 능력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다. 배성우는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연기했고 덕분에 ‘변신’의 텐션은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된다. “중수의 죄책감, 회의감 이런 키워드는 섬세하게, 감정은 좀 더 뜨겁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잠깐 등장하는 라틴어도 열심히 배웠어요. 어려웠지만 제가 암기가 빠른 편이라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다만 라틴어를 거꾸로 하는 게 힘들었죠.”

특히 극 중 ‘분노하는 사람에게 악마가 온다’는 대사는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존재는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에 오싹함을 안긴다. 배성우는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노할 때가 있긴 있죠. 근데 너무 화내면 오히려 진 거라고 생각해요. 뒷수습도 어렵고요. 차라리 ‘나는 지금 이것 때문에 화가 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좀 가라앉더라고요. 저는 실제로 화가 날 때도 ‘아 이 감정을 잘 기억했다가 화나는 연기할 때 참고해야지’ 하는 것 같아요.”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변신’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든 악마’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넘치는 스릴, 진짜 악마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까지 공포물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조건을 갖췄다. 장르, 소재의 특성상 배우들은 항상 끔찍한 감정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몇 개월 간 ‘악마’, ‘구마’ 같은 소재와 씨름하다보면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악몽 한번쯤은 꿀 법도 한데 배성우는 “진짜 무서웠던 건 벌레였다”며 몸서리를 쳤다.

“진짜 공포는 벌레였어요. 저희 어머니가 시골에서 오래 사셨는데 여름만 되면 온통 벌레 세상이라 고통이었다고 하셨거든요. 지금도 벌레를 무서워하세요. 그런 유전자가 가족들한테 있나 봐요. 영화 속에 벌레들이 등장하는 신이 있는데 감독님이 CG(컴퓨터 그래픽)를 안 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네, 쥐 이런 친구들을 매니지먼트하는 분들이 계세요. 촬영장에 쫙 풀어놨다가 끝나면 다시 데려가셨어요. 이틀 정도 함께 촬영했는데 안 그랬으면 하는데 친구들이 자꾸 저한테 슬금슬금 다가오니까(웃음) 쥐는 ‘라따뚜이’ 생각도 나고 점점 귀여워보였는데 지네는 끝까지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저는 귀신보다 벌레가 더 무서워요.”

듣다보니 그동안 남자다운 인상과 날카로운 눈빛이 빚어놓은 팽팽한 이미지에 바람이 피식 빠지는 느낌이다. 극 중 캐릭터와 실제 배우의 성격을 혼동할 이유는 없지만 배성우와 이야기하다보면 순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오피스’, ‘내부자들’, ‘섬. 사라진 사람들’, ‘더 킹’, ‘꾼’, ‘안시성’ 등에서 쌓아온 거칠고 센 느낌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는 “강한 인상 때문에 억울하진 않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공연을 했는데 진짜 무섭게 생긴 친구들이 많았어요. 항상 그들의 존재감이 부러웠는데. 저는 좀 사납긴 해도 친근하고 편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실제 성격은 스스로는 ‘마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말랑말랑하다고 해요. 남자답게 보이고 싶어서 ‘나 사실 마초야’라고 하면 친구들이 다 웃어요. 감성적인 면은 있어요. 최근에 카페에서 이어폰 끼고 휴대폰으로 ‘어바웃 타임’을 보다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소리 내서 엉엉 울었어요. 평소엔 눈물이 없는데 영화 볼 땐 걸핏하면 울어요.”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변신’을 마친 배성우는 올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개봉을 앞뒀다. 연이은 활동에 쉴 틈도 없이 지금은 ‘출장수사’ 촬영에 한창이다. 꾸준히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는 건 순박한 얼굴이다가도 일순간 돌변하면 무섭도록 차가워지는 그의 이중적인 눈빛과 어떤 캐릭터든 믿음직하게 소화하는 연기력 덕분일 것이다. “모든 작품에서 재발견되고 싶다”는 그의 또 다른 변신이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연기를 한다는 게 단순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건 아니거든요. 너무 그런 변신에 집중해서 뭔가 해보려는 의도가 보이면 관객이 가슴으로 느끼기가 어려워요. 앞으로도 제 안에 있는 걸 잘 끄집어내서 캐릭터와 줄타기를 잘 해보고 싶어요. 배우의 매력, 생김새, 표현방식과 작품의 스토리, 캐릭터가 잘 결합했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 일단 올바르게 잘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계속 매력이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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