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제 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이후 귀국 인터뷰에서 '칸영화제 수상 기쁨은 딱 오늘 하루만 즐기겠다. 이미 귀국행 비행기에서 다음 시나리오에 착수했다'며 지나치게 수상에 도취된 모양새를 경계했다.

봉 감독은 칸영화제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기쁨을 빨리 마음에 묻고 다음 작업들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선언했지만, 영화 '기생충'의 개봉이후 2주가 지난 현재에도 한국 영화계와 언론 지상은 물론이고 여전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마저 뜨겁다.

'기생충'은 지난 17일까지 845만 관객을 모으며 5월 개봉작 중 보기 힘든 흥행 열풍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각각 SNS와 영화 커뮤니티, 기사 댓글들을 통해 각자의 영화에 대한 해석을 쏟아내며 축제를 즐기듯 영화를 즐기고 있다.

칸에서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개봉일인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봉 감독은 지난달 칸국제영화제 초청 당시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유출 자제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최근 '뉴스룸'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에서도 스포일러 우려 때문에 영화 줄거리에 대한 답변을 우회적으로 비껴가기도 했다.

기자와의 이날 만남에서도 "2주 후에 써주십시오"라는 답변이 속출했다. 결국 개봉 2주 만에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속 시원히 공개하게 됐다.

*다음 내용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오해도 많고, 또 함축적으로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 제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지인들에게 처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2013년 체코 프라하에서 '설국열차'를 찍고 귀국한 다음이다. 서울에서 '씬 47'을 편집할 당시였다. 그 때는 제목이 '기생충'이 아닌 '데칼코마니'였다. 그 말인즉 두 가족이 있는데 양쪽 다 부모와 딸, 아들이 있는 4인 가족이었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대조적으로 있었고 양쪽 집 다 딸, 아들이 있었다. 이들 가족이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을 그리려 했다. 2014~15년까지는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으로 불렀고 그만큼 대칭을 이루는 스토리였다. 어느 시간부터 가난한 가족인 기택네 식구 시점으로 부잣집 가족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스토리를 구상하게 됐다. 물론 반대 시점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여하튼 관객이 같이 부잣집으로 침투해가는 시점으로 그리게 됐다. 과외 선생을 뽑았는데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 하는 장면들을 구상해 갔다.

-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그 시점에 구상된 것인가.

▲ 어느 때부터 가난한 가족의 시점으로 끌고 나갔다. 그 때 '기생충'으로 바꿨다. 꼭 '기생충'이라는 이름을 기택네 가족에게만 국한 지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부잣집이 기생하는 쪽일 수 있다. 공생이나 상생이 되면 가장 좋은 것이지만, '기생'이라는 표현은 모멸감이 느껴지는 표현이긴 하다. 공생이나 상생이 되려면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에 대한 예의나 리스펙트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게 세상만사 아닌가. 사실 '기생충'은 함께 사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가 언젠가 이런 서술을 했다. 서로에 대한 예의가 갖춰지기 쉽지 않은 시대라는, 그래서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데칼코마니'의 느낌은 많이 사그라졌다. '데칼코마니'가 제목이었다면 관찰자 시점이 됐겠지. 하지만 '기생충'은 사기 치는 느낌도 있고 킥킥 거리며 관객도 함께 스며드는 쾌감도 있다. 엄연히 범죄이긴 하지만 동참하는 느낌도 들지 않나.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설국열차'에서도 가난한 자와 가진 자가 대립 구도를 이뤘었다. 빈부 격차를 계속 화두로 던지는 이유가 뭔가.

▲ 2013년 '설국열차' 때 그 테마의 전반적인 것에 제 머리가 지배돼 있던 것 같다. 영화의 성격은 다르다. '설국열차'는 SF 액션의 틀을 지녔잖나. 영화의 결말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빈자와 부자가 대립하다가 마치 김밥 옆구리 터지듯 기차의 옆문을 열고 나가 버리지 않나. '기생충'에서는 기택 아버지가 스스로 눈을 가린 채 '노 플랜'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 상황이다. 그런 차이가 아닐까. '기생충'은 좀 더 현실의 슬픔을 직시하는 느낌이 있다. '설국열차'는 SF장르로 호기롭게 곰을 보여주며 끝난다. SF적 희망을 보여주며 끝나는데 '기생충'은 섣불리 그렇게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다루다 보니 그렇게 했다가 2시간 끌고 온 영화의 느낌 자체가 위험해 질 수 있다. 안타깝고 슬픈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마지막 최우식의 모습이나 다짐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의미다.

- 부자집 가족에 대한 묘사가 기존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심지어 기택(송강호)이 이야기한 '그 집 사모님은 부자인데 참 착해'라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현실 속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볼 여지를 준다.

▲ 배가 나와서 탐욕스럽고 노골적으로 갑질을 하는 묘사는 많았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더 복잡 미묘하잖나. 미묘한 결이 있는 부자를 묘사하고 싶었다. 이선균과 조여정이 그런 장벽을 잘 묘사해줬다. 그 둘을 캐스팅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젊은 신흥 부자 같은 느낌에 훨씬 더 고급 취향에 세련미가 있잖나. 양파 껍질을 벗기듯 벗겨보면 속에 또 전통적 부자의 모습도 존재하는 미묘한 레이어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선균(박사장 역)이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나'라며 밖에서 얘기하면 큰일날 만한 말을 한다. 서슴없이 그 말을 하지만 사적인 공간이고 그걸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다. 기택네 가족과 관객들은 그 말을 아주 가까이서 듣게 된다. 이 영화의 성격 자체가 그런 거다. 타인의 사생활을 부담스러울 만큼 가까이서 목도하는 영화다. 무대 자체가 집이고 사건의 90%이상이 집에서 이뤄진다. 다른 계층의 사생활을 서로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목도해야 하는 영화다. 여기에서 이 영화 스토리의 위험성이 나오고 예기치 못하는 파국까지 치닫게 된다. 별일이 없이도 차곡차곡 기택이 폭발할 때까지 사건이 쌓인다. 현미경 보듯 찍은 영화고 홍경표 촬영감독과 수시로 "타인의 사생활을 아주 가까이서 찍는 영화"라는 내용을 공유했다.

- 홍수 장면의 생생한 묘사를 보면 매해 여름마다 뉴스에서 보아 온 익숙한 풍경이다. 체육관 풍경 또한 여러 건의 국가적 재난 사고들을 떠올리게 한다. 국내 관객 입장에서는 씁쓸함과 비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다.

▲ 홍수 장면도 모두 실제 제작된 세트에서 촬영을 했다. 그런 홍수 상황을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체험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도 표현해야 하는 것이 창작자의 짐이자 의무다. '살인의 추억' 때 살인을 하지 않고 찍었듯 말이다. 영화 속 부자집과 가난한 집 중 제 실제 환경은 어디에 가까웠냐는 질문도 많이 듣는데 두 집의 중간 정도였다. 제 아버님이 미대 교수셨기에 그 와중에 순탄하게 자랐다. 하지만 주위 친구나 지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있다. '기생충' 같은 영화가 나오기까지 제가 보고 느끼고 상상한 영역들이 있다. 자료 조사를 해서 시나리오 쓰는 건 아니니까 가까운 사람들의 기억까지 모아서 이야기를 축적시키는 거니까. 기우(최우식)가 처음 그 집에 들어갈 때는 제가 부자집 과외를 딱 두 달 하고 잘린 경험을 참고했다. 복층 빌라 집이었고 2층에 사우나가 있었다. 영화에서 철문이 '찡'하고 열리는 장면이다. 복층 빌라의 대리석 바닥, 부자 동네 특유의 조용함 등을 눈여겨봐달라. 소음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영화 속 부자 동네 같은 성북동 같은 곳에 가면 조용하잖나. 기택네 동네에 가면 기본적으로 소음이 크다. 이 영화에는 10~20개 정도 되는 레이어가 층층이 쌓여 있다.

- 영화는 여러 차례 관객들의 마음에 현실 세계를 소환해 영화 속 기우네 가족이 겪는 빈곤과 곤경이 현실 속 나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목도하게 한다.

▲ 영화를 본 지인들에게 문자가 왔는데 반응이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분들이 그렇게 많더라. 남녀 혹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영화의 엔딩에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잔상이 오래 간다, 뇌에 기스 났다'는 반응도 있었다. 여운도 꽤 길게 있는 것 같고.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도 들었다. 이 영화의 정서적 세기가 그렇게 센 편이었나 저도 궁금해진다.

- 엔딩에서는 모든 것이 휘몰아친다. 연교(조여정)가 아들 다송이를 위해 준비한 트라우마 극복 케이크의 예상 못한 쓰임새에 혀가 내둘러진다.

▲ 그런 걸 보면 이 영화가 잔인하기도 하다. 다송이 역의 현준이가 정말 열연했는데, 그 친구는 집중력이 대단하다. 신나게 까불고 놀다가 경기 일으키는 신을 찍어도 잘 한다. 연교가 '언니도 귀신 믿어? 다송이가 1학년 때 귀신을 봤잖아요'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 아닌가. 멀쩡히 산 사람을 땅 밑 귀신으로 만든다. 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부자집에 한 때 멀쩡히 대만 카스테라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이 지하에 살고 있다. 여기에 영화의 주제가 다 들어가 있다. 어떤 슬픔이 깔려 있다. 그 귀신이 또 부자집 왕자님 같은 아이에게 내상을 준다. 사실은 같이 사는 건데 같이 사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가장 기이한 형태의 동거인데 공생이 아닌 귀신으로 취급하는 슬픈 대목이다.

- 기택이 택한 결말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

▲ 문학적 혹은 상징적으로 접근하자면 또 다르겠지만 상식적으로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고 손에 피를 묻힌 채로 뛰어가고 있고 사람들은 흩어져 곳곳에 있다. 아마 원초적으로 빨리 숨고 싶지 않을까. 완벽하게 숨을 공간이 놓여 있고 막상 숨어 들었다 치자. 집이 비어 있는 기간이 있었고 경찰이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오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왜 안 나왔을까.

박사장의 사진을 보며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는 장면이 있지 않나. 셀프 퍼니시먼트의 의미가 아닐까. 스스로 처벌하는 느낌이다. 우발적으로 폭발해서 일을 저질렀지만 바로 스스로 놀라잖나.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도 그랬지만 자기가 한 짓을 보고 자기가 벙 쪄있다. 우발적 범죄가 그런 것이겠지. 송강호 선배가 완벽하게 표현을 해줬다. 영화의 예고편에서 이 가족들은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 안해요'라고 하지만 박정자 여사는 '엄연한 범죄'라고 한다. 부자들에게만 피해를 준 게 아니고 다른 약자들에게 피해를 줬다. 문광(이정은)-근세(박명훈) 부부의 희생이 있고 결국 이들도 희생을 치렀다. 서글픈 죄와 벌이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