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배우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흥행 스코어가 계속 올라오고 있어요. 그 단톡방에 봉준호 감독님이랑 (송)강호 형은 없어요. 카톡을 안 하셔서. 건물주 없는 세입자 모임 느낌도 나고.(웃음)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감사하고 행복해요.”

영화 ‘PMC: 더 벙커’, ‘악질경찰’ 등으로 바쁜 행보를 이어오던 배우 이선균이 이번엔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을 들고 나왔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개봉 11일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 국내 극장가를 완벽하게 접수한 ‘기생충’은 익숙한 배우들의 낯선 얼굴을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성공한 IT기업의 CEO, 박사장으로 분한 이선균은 젠틀하지만 권위적인 캐릭터의 이중적인 면모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크게 호평받았다.

“감독님이 애초에 캐릭터를 너무 잘 만드셨어요. 일단 IT기업 사장 설정은 기존 재벌과 다른, 새로운 시대의 부자라는 걸 대변하는 것 같아요. 박사장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선’과 ‘냄새’인데 둘 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에요. 박사장은 나이스한 성격 같지만 직원들과 소통도 잘하고 또 가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남들한테 보이는 게 중요하고 남들이 자길 어떻게 대하는지도 중요하죠. 그 안에 천박함과 치졸함이 다 있어요. 그게 포인트였어요. 조여정씨와 러브신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천박해보일까?’ 고민했죠.”

‘기생충’의 흥행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봉준호 감독이 심어놓은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제대로 찾기 위해 ‘N차 관람’(다회차 관람)에 나서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관객 저마다의 모든 감상이 정답일 것이고 그만큼 극장을 나서며 영화의 모든 장면을 차근히 곱씹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이선균 역시 “영화를 정말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 희한한 영화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많아요. 그냥 대본으로 읽었을 땐 넘어갔던 게 중요한 상징이었던 것도 많고요. 지금까지 두 번 봤는데 매번 느낌이 달랐어요. 처음엔 제 연기나, 상황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엔 기우 입장에 이입이 돼서 먹먹했어요. 특히 ‘계획’이라는 대사가 크게 와닿았어요. (송)강호형이 초반에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하는데 그 장면이 코믹하면서도 되게 슬프더라고요.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데뷔 20년차인 이선균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선균은 ‘기생충’ 캐스팅 당시를 떠올리며 “설레면서도 긴장됐다”고 털어놨다. “봉준호 감독님을 뵙기 전에 아는 지인에게 감독님이 제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엔 괜히 바람 넣지 말라고 했죠.(웃음) 나중에 감독님과 만나서 ‘기생충’의 대략적인 스토리에 대해 들었고 뭐든 하겠다고 했어요. 아마 ‘악질경찰’ 때 어떤 화보에서 좀 예민하고 피곤해보이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걸 좋게 보셨던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과의 촬영은 어릴 때부터 동경해오던 작업이었죠. 예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영화 물어보면 항상 저는 ‘살인의 추억’이었어요. 너무나 많이 봤고 교과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기생충’은 그냥 영화 자체가 감독님 같아요. 멋부리지 않았는데 세련되고 재밌고 통찰력도 있고 푹 빠져들게 해요. 또 엉뚱한데 직설적이고, 그 모든 게 감독님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기생충’은 지난달 25일 폐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계에 큰 선물을 안겼다. 함께 경쟁부문에 오른 세계적인 거장 테렌스 맬릭, 쿠엔틴 타란티노, 다르덴 형제 등을 모두 물리치고 이룬 쾌거다. 빈부격차라는 보편적인 현상에 한국적인 정서를 더한 ‘기생충’만의 세계가 세대, 국적, 장르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이다. 해외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심상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9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개봉 11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천만 돌파를 향한 기대감도 한껏 고조된 상황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칸국제영화제는 단톡방에 실황 중계 링크를 공유해주셔서 그걸로 봤어요. 오히려 현장에 있었으면 긴장하느라 제대로 못 즐겼을텐데 더 짜릿하고 신나게 봤어요. 긴장보다는 벅찬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수상발표 나자마자 단톡방이 난리가 났었죠. 그날 번개로 모임까지 했는데 저는 다음날 스케줄 때문에 함께하진 못했어요. 대신 집에서 아내(배우 전혜진)랑 시원한 캔맥주 하나씩 마시면서 자축했죠.”

지난 몇 년간 쉴 틈 없이 작품에 매진해온 이선균은 ‘기생충’에 이어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기생충’의 눈부신 성취를 즐길 새도 없이 새로운 촬영이 시작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이선균은 “칸도 다녀오고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을 만큼 현실감이 없다. 빨리 다음 작품을 해야 하니까 좋은 것도 최대한 빨리 누리고 털어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계획이란 단어가 ‘기생충’에도 많이 나오지만, 저는 계획은 있는데 목표는 없어요. 어떤 목표를 잡고 가면 너무 힘들잖아요. 최대한 날 선택하신 분들이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게 유일한 바람이에요. ‘기생충’으로 얻은 게 많아요. 봉준호 감독님, (송)강호 형 등 좋아하던 사람들과 가까운 사이가 된 것도 좋고요. 많은 분들이 칸 수상을 모두의 경사라고 생각하시면서 축하해주셨어요. 그런 힘이 흥행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관객분들께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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