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터로 출발해 조감독 생활 동안 현장에서 열정과 끈기 배웠죠"

영화 '돈'으로 상업 영화 첫 도전… 대표 비수기에도 330만 흥행 달성

한재덕·윤종빈 두 제작자 의지 됐다

황상준 음악감독+김상범 편집감독도 큰 도움 줘

영화 '돈'을 연출한 박누리 감독 /사진제공=쇼박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영화 '돈'(감독 박누리, 제작 사나이픽처스)의 개봉 전 이 영화가 대표적 비수기인 3~4월의 흥행을 휩쓸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렇다 할 유명세가 없는 신인 박누리 감독의 데뷔작이자 주연 배우로 나선지는 몇 년 됐지만 아직까지 티켓 파워는 입증되지 않은 류준열의 단독 주연에 가까운 영화라는 것, 특히 영화의 주요 배경이 주식을 사고 파는 여의도 증권가라는 것도 그동안 경제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큰 흥행을 보인 적이 없기에 기대치는 예상 외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영화의 뚜껑이 열리자 그동안 본 적 없던 경쾌하면서도 공감가는 스토리와 류준열(조일현), 유지태(번호표), 조우진(한지철)이 펼쳐 가는 군더더기 없는 촘촘한 연기 호흡, 잔혹한 폭력신 없이도 쫀쫀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동반하는 짜임새 넘치는 연출력 탓에 무려 개봉 4주차를 맞이한 현재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330만 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박누리 감독은 영화 '돈'으로 '집으로' 이정향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 '탐정: 리턴즈'의 이언희 감독에 이어 네 번째로 300만 흥행을 넘긴 여성 감독에 오르게 됐다. 흥행이 영화 평가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관객들로부터 사랑받았다는 것만큼 연출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 또 있을까.

'돈'의 개봉 초기 영화의 제작사인 서울 한남동의 사나이픽처스 사무실에서 박누리 감독을 만났다. 박누리 감독은 유승호 주연의 영화 '서울이 보이냐'(2008)에서 연출부 막내로 영화를 시작해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의 ‘남자가 사랑할 때’(2013/한동욱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는 등 영화 현장에서 기본기를 충분히 닦으며 한 계단씩 밟아 온 사람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박 감독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공을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특별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한 주장을 펼치기보다 차분하면서 조근조근한 말투로 '돈'의 연출 후기에 대해 설명해 나가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불필요한 수식어나 미사여구를 늘어 놓지 않는 모습에서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영화 '돈'을 연출한 박누리 감독 /사진제공=쇼박스
- 첫 데뷔 영화로 주식을 소재로 삼은 계기가 궁금하다.

▲ 황정민, 한혜진 배우가 주연이었던 '남자가 사랑할 때'에 조연출로 참여한 후 제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이 장현도 작가의 소설 '돈을 '추천해 주셨다. 주식 이야기가 소재라는 건 알았지만 당시 나는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막상 책을 읽고 보니 주식 이야기보다 사람 이야기였다. 책의 첫장을 펴자마자 한 호흡으로 다 읽혔다.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결정했다.

- '돈'에서 특히 관심이 갔던 지점은.

▲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어려운 이야기였다면 힘들었겠지만 주인공이 평범했다.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 돈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공감대가 느껴졌다.

- 학교 다닐 때 영화 연출을 전공했나.

영화 '돈' 스틸
▲ 고교 시절 영화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는데 수능 점수에 맞추다 보니 광고 전공을 택하게 됐다. 단과대(한양대학교) 내에 방송반에서 캠코더와 조명이 있으니 단편 영화들을 만들면서 영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으로 영화를 할 방법을 찾다 보니 처음엔 영화사 기획팀 면접도 봤다. 씨네 2000에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이춘연 사장님이 저와 몇 마디 나누시더니 '자네는 이 회사 다닐 사람이 아니고 연출을 해야 될 사람 같으니 다른 방법을 알아보게'라 하시더라.

- 이춘연 사장님이 박누리 감독을 오늘 감독에 이르게 해준 것인가.

▲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우회할 게 아니라 연출부 막내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고 필름 메이커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인구직란을 열심히 살펴봤다. 그렇게 해서 유승호가 출연했던 '서울이 보이냐'의 연출부 막내로 상업 영화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다. 송동윤 감독님 작품이었고 2005년이었는데 예산 문제로 한두 달 촬영을 못한 적도 있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마치 사춘기 소녀가 낙엽만 굴러도 웃는다는 말처럼 라인만 말고 소품 하나를 놓아 두기만 해도 재미있고 뿌듯했다. 프레임을 채워나가는데 제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더라. 이어서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서 스크립터를 맡았고 '더 게임'에서도 스크립터를 했다.

- 고생도 많았을텐데 즐겁게 기억하는게 인상적이다.

▲ 현장을 계속 경험하고 필모그라피를 채워 나갔다. 영화 감독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한 계단씩 밟아 왔다. 그 꿈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계속 해올 수 있었다. 이후 2년 정도 참여하던 영화들이 엎어지고 하다가 류승완 감독님의 '부당거래'에 연출부 세컨드 조감독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절친이 된 한동욱 감독과의 인연이 계기가 돼 류 감독님 작품의 제안을 받게 됐다. 감독님은 연출부 스태프들의 단편 영화를 직접 보고 참여 유무를 결정하시는데 때 마침 단편 영화를 찍어둔 게 있어서 미팅 후 바로 참여하게 됐다.

- '부당거래' 이후 '베를린' 조감독 경험까지 이어서 하면서 '돈' 제작자인 한재덕 대표와도 연을 맺게 됐다. 스크립터와 조감독을 하면서 얻은 자양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열정과 끈기를 배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 제가 뭔가 대단히 잘 했다거나 대단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끈기와 열정을 내세울 자신은 있다. 현장과 영화를 대하는 열정을 배웠다.

- '돈'을 영화화하면서 가장 큰 목표 또는 지켜야 할 원칙으로 세운 지점은.

▲ 리듬감과 속도감을 절대 잃지 않고 싶었다. 류준열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순간부터 온전히 류준열에 의한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준열에게도 처음부터 이야기했다. 이 영화 안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절대 가두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라'고 말했다. 이 영화 안에서 다 보여주고 후회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합의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 영화의 속도감에는 음악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 황상준 음악 감독님께 진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황 감독님은 시나리오보다 영화의 결과물을 중시하시더라. 무엇보다 '돈'이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주셨는데 그 부분이 가장 컸다. 영화를 좋아하시니 이 영화가 가야할 방향 또한 정확히 아셨다. 황 감독님이 "주식을 모르는 관객도 재미있게 봐야 하기 때문에 음악이 그 부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신나게 작업하신 것 같다. 편집본을 보고 한 달만에 메인 테마곡을 만드셨다. 초반부 일현이 성공하고 테마로 나오는 음악이 있다. 일현의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신나는 음인데 처음 작업하고 메일로 보내 주셨다. 때마침 전철 안이어서 전철에서 내려 텅빈 승강장에서 이어폰을 꼽고 곡을 듣는데 너무 신나고 전율이 일었다. 빈 승강장에서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신이 난다"고 바로 연락을 드렸다. 그렇게 또 다음 작업으로 신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음악 감독님이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게 큰 에너지로 큰 작용했고 작품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저에게 큰 에너지를 많이 주셨다.

김상범 편집감독님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영화가 전진 할수 있도록 이야기에는 꼭 필요하지만 관객들이 지루해할 요소를 티가 안나게 감춰 주고 재미 있는 장면에는 빠른 속도감이 붙도록 편집하는데 도움을 주셨다.

- 제작자인 한재덕 대표와 윤종빈 감독은 영화계 베테랑들인데 이들에게 도움 받은 부분이 있나.

▲ 한재덕 대표는 제가 '부당거래' 때 조감독 시절부터 오래 뵌 분이다. 겉으로 볼 때 막 터치하고 의견을 낼 것 같지만 절대 안 그러신다. 제가 온전히 감독으로 스스로 판단해 결정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받춰 주셨다. 감독의 자존심이나 역량에 반하지 않도록 정말 꼭 필요한 조언만 했다. 정말 멋있고 의지가 많이 된 분이다. 공동 제작자인 윤종빈 감독은 제작사 사장님이기도 하지만 같은 감독으로서 데뷔작을 만들어 본 분 아닌가. 데뷔작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이 어렵고 힘들지 다 아시기에 현실적 조언을 많이 주셨다. 자주 연락하고 그러는 사이는 아니지만 심적으로 큰 의지가 됐다. 의지는 됐지만 터치는 하지 않은 멋진 분들이다.

- 류준열의 장점을 고스란히 건져 올린 느낌이다. 순수한 청년의 모습부터 돈을 향해 이글거리는 욕망, 선택의 갈림길에서의 갈등 등 많은 모습을 날 것처럼 길어 올렸다.

▲ 류준열은 이전 작품도 다 보고 분석 해보니 전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돈'에서 그 얼굴들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순수한 청년부터 지질한 모습, 또 질투하는 모습까지 다양하게 보여준 뒤 이전에 보인 적 없는 얼굴을 후반부에 보여주고 싶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욕망을 쫓는 모습 말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되지 않나. 극한에 몰렸을 때 이전에 나온 적 없는 얼굴이 나오길 바랐다.

- 영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높이는 인물은 유지태가 맡은 번호표다. 최근 악역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유지태지만 '돈'에서의 모습이 유독 돋보인다.

▲ 번호표는 무엇을 쫓는 사람이고 왜 작전을 벌이는 건지, 악인인지 선인인지 다양한 고민을 배우들과 함께 했다. 대본 리딩 중 회의를 하다가 번호표는 왜 이런 일을 할까 토론이 벌어졌다. 그 때 류준열이 '재미있잖아'라는 말을 툭 던졌다. 유지태 배우도 그 대사를 받아 주며 바로 시나리오를 고쳤다. 거센 행동이나 폭력이 없어도 그저 재미로 작전을 펼치고 남을 해하는 일도 두려워 하지 않는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이 설명됐다. 안타고니스트라고 해서 전사를 주고 명분이나 악한 본심을 주는 건 싫다고 생각했다. 유지태도 이런 부분에 동의해줬고 특히 퇴장이 중요했는데 우아함을 잃지 않고 퇴장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조일현에게 '살아 있으니 다시 만나자'며 손수건을 내민다던가 한지철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는 등 여유를 잃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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