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PMC:더 벙커'서 용병 팀 이끄는 에이헵 역 맡아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PMC:더 벙커'(감독 김병우)의 개봉 당일 언론 인터뷰에 나선 하정우는 이날도 이른 오전 6시부터 동작대교 부근을 걸으며 개봉 관련 긴장감을 달랬다고 했다.

30여편이 넘는 영화의 주연을 맡았고 '암살'과 '신과함께' 1, 2편을 합쳐 트리플 천만 기록을 세웠는가 하면, 최연소 1억 배우라는 기록을 세웠어도 새 작품이 관객들앞에 첫 선을 보일 때는 모든 것을 1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배우 하정우가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과 5년 가까이 준비한 영화 'PMC'로 돌아왔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호흡한 이후 하정우가 김병우 감독에게 'DMZ 지하에 지상과 데칼코마니 같은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전술 게임의 형식을 담은 'PMC'는 근미래인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일에 북한의 2인자 이영택 장군을 잡아 오라는 CIA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은 글로벌 군사기업 블랙리저드 랩터16팀의 리더 에이햅(하정우)가 지하 30M 비밀 벙커에서 북한의 킹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북한 의사 윤지의와 생존 액션을 펼치는 내용을 그렸다.

'PMC'는 영화의 출발 초기부터 한국 관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글로벌 프로젝트로 선보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있었다. 하정우가 직접 김병우 감독, 강명찬 제작자 등과 함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을 찾아가 'PMC'에 대한 브리핑을 하며 합작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시도를 한 적도 있다. 하정우과 이선균을 제외하고 CIA 팀장 역의 제니퍼 엘, 마쿠스 역의 케빈 듀런드 외 나머지 용병 배역들을 전원 미국 배우들로 캐스팅한다거나 극 중 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로 진행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하정우와 만났다. 평소 즐겨 신는 나이키 런닝화에 맨투맨 티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PMC'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영화 제작 과정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부터 이상적인 여성상과 꿈꾸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흥미롭게 펼쳐 나갔다. 형식과 스타일이 전혀 새로운,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도전적 작품 'PMC'를 선보이기에 앞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줄 것인지에 대한 긴장되는 마음과 설렘도 드러냈다.

- 최근 출간한 '걷는 사람 하정우' 책에서 평균 하루 3만보씩 걷는다고 했는데, 오늘은 얼마나 걷고 인터뷰 현장에 왔나.

▲ 오전 6시에 집에서 나가서 5600보 가량 걸었다. 동작대교 위에 북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걷기 모임 동료들과 한강 새벽반을 자주 진행한다.(웃음) 요즘은 아침에 더 챙겨 걸으려 한다. 24일에도 인터뷰가 있었는데 우리 영화가 장점만 많은 영화가 아니고 단점도 있기에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2~3시간 걸으며 생각했다. 걷다 보니 자신감도 더 생긴다.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장점을 더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 주연작만 30여편에 가깝고 조단역 출연작까지 하면 34편 정도 된다. 천만 흥행 배우도 관객수에 긴장이 되나?

▲ 작품의 편수가 쌓이고 경력이 쌓여도 새 작품에 들어가면 전부 새롭다. 모든 것이 다시 숫자 1부터 시작하는 것 같고 리셋되는 느낌이다. 매작품에 같은 심정이다.

- '더 테러 라이브'가 끝난 뒤 김병우 감독에게 차기작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던데. 당시는 신인 감독이었던 김병우의 어떤 점을 높게 봤나.

▲ '더 테러 라이브'를 찍을 때 김 감독의 강점을 느꼈다. 촬영이 끝날 무렵 합이 잘 맞는 걸 느꼈다. 김 감독은 순발력이 빠르고 촬영을 한 컷씩 찍는 방식이 아니라 내 연기를 보고 어떻게 찍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라이브로 느껴질지 파악하더라. 1회차 찍고 나서 기존 카메라 셋업을 무시하고 5~10분 분량씩 여러 카메라를 놓고 덩어리로 찍었다. 그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집중도 있게 연기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찍은 분량을 함께 확인하고 다시 촬영했다. 매사 '고단하다'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고 같이 호흡하고 평가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그러한 촬영 방식과 태도도 좋았고 촬영 이전의 엄청난 준비 기간도 촘촘히 준비된 상태로 지내왔다는 게 보이더라. 그 때 신뢰를 느꼈고 차기작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MC'를 준비하며 강명찬 프로듀서와 함께 퍼펙트스톰이라는 제작사도 차리게 됐다.

- 'PMC'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형식, 영어 대사 등을 볼 때 해외 시장을 동시 겨냥한 작품으로 보인다.

▲ 김병우 감독과 해외 경험이 풍부한 강명찬 대표 등이 있었기에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런 제작진과 감독, 배우의 합이 없었다면 1인칭 슈팅 게임 방식의 영화에 대부분 출연진을 외국 배우로 캐스팅해서 같이 하는 일은 어려웠을 거다. 한 단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성취했기에 다음 도전을 할 때 수월해 질 것이고 더 자신감이 있을 거라 본다. '부산행'이나 '신과함께' 1, 2편이 아시아 시장에 한국 영화 붐을 일으키며 지반을 다졌다면 'PMC'로 해외 관객께 좀 더 본격적으로 다가가 보려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한발 한발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간다면 K팝처럼 K무비의 붐이 뜨거워지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 에이헵 캐릭터의 전사가 최소한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인물을 구현해 나가는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 에이헵이 PMC라는 사설 군사 조직에 왜 들어갔는지 절실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제 주위에 비슷한 여정을 겪은 친구가 있다. 미국에서 셰프로 일하는 중학교 때 친구인데 미국에 간 지 14년 만에 영주권을 땄다. 단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다양한 일을 겪으며 지내더라. 에이헵의 마음이 내 친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헵을 포함해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피엠씨는 비정규직으로 고용을 해 보통 1년 이상 계약을 안 해준다. 파리 목숨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에이헵은 한국에서 장교로 생활하다가 군대에서 사고로 인해 쫓겨 나다시피 미국에 가서 피엠씨에 들어가고 자기 전공을 살려 활동하는 친구가 아니었을까.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 이번에도 인물의 전사를 친절하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김병우 감독은 극 중 상황이 강한 세팅을 즐겨하기에 인물의 이면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틈이라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극 중 상황 속에 말 한 마디라도 암시를 넣으려 했다.

- 엔딩 낙하산 장면 이전까지 에이헵조차 정을 쉽게 줄 수 없는 인물이다. 매 상황마다 양극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혼란스러워 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심플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큰 사고를 겪은 인물이고 중간에 배신을 당하고 또 고립된 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이 인물은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하며 갈등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런데 에이헵의 이런 모습이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솔직한 민낯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과 악 양면을 모두 지니고 살아가지 않나. 에이헵이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며 어떻게 생존해 왔고 또 이후 어떻게 생존해 나갈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캐릭터와 드라마에 끌렸다.

- 중반부에 들어서면 몸을 자유롭게 쓸 수도 없고 벙커가 무너져 내리고 화면을 보며 마우스로 대원들을 사지에서 끌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상대 역도 없이 그린 매트에서 연기한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 배우 입장에서는 모든 지형지물을 다 이용해야 한다. 리액션을 받을 수도 없고 상대 배우가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다. 스탠드가 쓰러지거나 대리석 조각에 내 손을 짚어서 고통을 느낀다거나 환경에 의존하는 게 많았다. 이런 방식의 연기에서는 예민해지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모든 상황에 몸이 다 열려버리니까. 스태프의 작은 실수에도 반응을 하다 보니 오래 찍을 수가 없다. 에너지 소비가 굉장히 크기에 임팩트있고 컴팩트하게 가야 한다. 보통 5~10분 짧게 테이크를 끊어 갔다. 회담장에서 나가기 전까지 5회차 분량이 가장 초반 분량이었다. 세트가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 저 혼자 먼저 들어가서 리허설 해보고 마크와 로건이 한국에 온 후 함께 다시 리허설을 했다. 대사도 많고 블로킹도 많기에 그 5회차 분량을 가장 많이 준비하고 연습했다. 이후 총격신 등은 무술팀 지휘 아래 찍었다.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오는 장면이 많아서 촬영 감독님들이 내 발과 손을 밟은 것도 부지기수다.(웃음)

- 에이헵을 위해 래퍼런스로 삼은 캐릭터가 있나.

▲ 댄젤 워싱턴의 '트레이닝 데이'와 브래드 피트의 '퓨리'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영어 대사는 주로 흑인들이 쓰는 언어를 캐치하려 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넘게 화술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며 노력을 했다. 영어 연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꽤 받았다. 좋은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결국 잘 하는 방법은 물리적 연습 밖에 없었다. 이 캐릭터를 처음 생각했을 때 래퍼들을 떠올렸다. 힙합을 하는 래퍼들의 문화에서 에이햅을 디자인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힙합 뮤지션들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 엔딩의 낙하산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 고공 낙하신을 연상 시킬 정도로 속도감과 쾌감이 엄청 나더라. 촬영의 비밀을 살짝 공개한다면.

▲ 낙하산 장면 촬영에만 7회차 이상 걸렸다. 낙하산을 잡고 15m 떠밀려 갔다가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장면이어서 공중부양 느낌도 있었다.(웃음) 30명 가까운 무술팀원들이 제 몸 각 관절에 연결된 와이어를 조종해 만들어 낸 장면이다. 노남석 무술 감독을 비롯해 무술팀원들 공이 컸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놀이기구를 공포스러워서 안 타는데 와이어에 매달려 오르내리려니 쉽지 않았다. CG와 3D로 미리 해당 장면을 구현하는 프리 비주얼 작업을 거쳤기에 7회차에 찍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빨려 나가는 장면도 원신 원컷처럼 보이지만 총 8컷으로 이뤄진 신이다. 그린 매트 촬영은 '신과 함께'에서 많이 경험했기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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