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나영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이든나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배우 이나영이 돌아왔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 가장 큰 두 가지 일을 마치고서 말이다. 2012년 영화 '하울링' 이후 꼭 6년 만이다. 지난 시간은 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그를 성숙하게 했다. 그리고 한동안 대중과 한 발 떨어져 있던 이나영을 스크린으로 돌아오게 만든 건 영화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다. 아내이자 엄마가 된 여배우는 또 다시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서 있다.

21일 개봉한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지닌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엄마'(이나영)와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 이들 사이에 숨겨진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엄마의 과거를 알아야만 하는 아들의 운명, 그것을 통해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겪으며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가족의 의미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자 메시지다. 이나영은 살기 위해 북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여자 역을 맡아 20여 년에 걸친 한 여자의 굴곡진 삶을 인상깊은 연기로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좀 먹먹하고 아련한, 이런 톤의 영화를 좋아해요. 힘든 거랑은 좀 달라요. 워낙 굴곡 있는 삶이라 관객들이 얼마나 이입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의상부터 말투까지 제가 다 결정했죠. 엄마라는 캐릭터의 10대 시절은 힘든 일을 겪은 어린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으면 했고, 20대는 좀 동물적이고 표현이 많았어요. 의상은 오히려 걷어냈어요. 꽃무늬 남방에 면바지, 빨간 트레이닝복에 가디건, 가죽 재킷 이런 것들인데 코디가 시장에 가서 저랑 소통하면서 직접 고른 옷들이에요. 30대 연기는 잘 보이지 않지만 손톱 색깔까지 고민했어요. 이 모든 게 이 여자에겐 그냥 삶인데 과연 이 여자가 강한 컬러의 네일을 할까 싶었죠. 그래서 메이크업은 약하게, 입술도 손으로 찍어바르는 정도의 색감만 줬어요. 나름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캐릭터에요.”

사진='뷰티풀 데이즈' 스틸
이나영이 연기한 엄마는 촌스럽고 수수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술집마담으로 사는 현재까지 하루도 쉽지 않은 삶을 사는 여자다. 극 중 그는 10대 시절 탈북 후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 살지만 몇 년 뒤 가족만 남겨둔 채 집을 떠난다. 이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 남자와 동거하며 술집을 운영한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그를 엄마라고 부르는 19살의 아들 젠첸이 나타나면서 모자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는다.

“생소한 캐릭터였어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공간과 생활 그리고 말투, 이런 것들 때문에 5년 동안 각본을 쓰신 감독님께 질문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이 여자의 삶을 한순간도 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매일 대본을 정독했어요. 대본을 파고 들수록 여자의 감정이 이해가 됐어요. 아들이 왔을 때도 별 반응도 없고 욕을 들어도 동요하지 않잖아요. 그냥 ‘아 왔구나, 그 다음엔 어쩌지’하고 덤덤할 뿐이죠. 아들이 ‘고작 이런 일 하려고 왔느냐’고 화를 내도 그저 가만히 바라보면서 시선을 툭 던지는 게 이 사람이 사는 방식일 것 같았죠.”

사진=이든나인
특히 아들 젠첸 역의 장동윤, 젠첸 아빠 역의 오광록, 엄마 애인 역의 서현우, 조선족 황사장 역의 이유준 등 네 명의 남배우들은 이나영과 치밀한 호흡으로 크고 작은 긴장과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이나영은 “엄마 애인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며 배우 서현우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엄마라는 여자는 이전까지 선택되어지는 삶을 살던 여자인데 애인은 엄마가 처음으로 선택한 사람인거죠. 애인의 모습에 따라 엄마의 취향과 인생이 표현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애인과 사는 엄마일까, 어려웠어요. 캐스팅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알아요. 근데 오히려 서현우씨가 연기하는 걸 보고 바로 안심이 됐어요. 어떤 면에선 눈빛이 날카로운데 말이나 행동은 따뜻해서 관객들도 안심하지 않았을까요. 여러 가지 우려가 무마될 만큼 좋은 연기를 해주셨어요.”

‘뷰티풀 데이즈’는 104분 간의 러닝타임을 달려 소녀에서 여자로, 그리고 엄마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억센 인생을 냉정하지만 차분하게 그린다. 무섭게 휘몰아친 풍파 끝에 의외로 거창하지 않은 엔딩은 ‘뷰티풀 데이즈’라는 영화의 제목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엔딩신의 된장찌개는 감독님의 의도가 담긴 거예요. 한국사회의 가정에서 밥상에 찌개를 놓고 각자 숟가락으로 퍼먹는 분위기가 상징하는 게 큰 것 같아요. 극 중 밥 먹는 신은 여러 번 나오지만 다같이 모여서 밥을 먹는 건 그게 처음이거든요. 별 대화는 없지만 이미 가족이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불친절한 엔딩이지만 관객의 상상을 불러오는 좋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해요. 엄마의 ‘뷰티풀 데이즈’는 그때부터 조금 열린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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