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다룬 영화 '1987'로 4년 만에 돌아와

"영화화 초반 캐스팅 수락해준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큰 힘"

"김태리와 처음 얘기 나눈 순간 '내가 원한 연희가 나타났구나' 했다"

장준환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장준환 감독은 영화 '1987'을 완성해 대중들 앞에 내놓기 전 첫 번째 상영인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뜨거운 눈물을 20분가량 쏟아냈다. 당시 장준환 감독은 "이한열,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실 당시 나이가 스물두 살, 만으로 하면 스물한 살이었다. 그런 나이의 청년들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편집하면서도 여러 번 울었다"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이 해를 넘겨 개봉 4주차를 맞이했음에도 전국 672만 관객을 모으며 여전히 흥행 중이다. '1987'은 연이어 쏟아지는 신작에도 흔들림 없는 흥행세를 이어가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장준환 감독은 영화 '1987'을 만든 계기에 대해 30년 전 광장을 가득 메우고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상을 밝혀내라", "이한열을 살려내라"를 외치던 모든 시민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들었다. 또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 것인가'하는 고민이 영화 '1987'을 택하는데 큰 이유가 됐다고 했다.

장 감독은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아냈고 또 정치권력에 대항하다가 아픈 죽음을 맞이한 두 청년들을 향한 한결같은 진심으로 '1987'을 만들었다. 그는 또한 30년 전 광장에 나섰던 모든 국민들에게 "당신이 주인공이었다"라는 말을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준환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영화의 캐스팅이 진행되고 투자를 받아야 했던 시기인 2016년 당시만 해도 제작진 모두 '이 영화가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를 의심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엄혹한 시기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됐던 30년 전 그날의 주역들을 향한 장준환 감독, 제작자 이우정 대표,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 영화화 가능성조차 의심 받던 영화에 과감히 캐스팅 제안을 수락하며 힘과 진심을 보탠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김태리, 유해진, 박희순, 여진구 등 주연배우들과 수많은 조단역 배우들, 스태프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하나의 점처럼 모이고 모여 영화 '1987'은 완성됐고, 그들의 진심이 펼쳐낸 격정의 스토리에 동감한 관객들 또한 극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며 영화와 미완의 역사의 진정한 완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 '1987' 영화화 계기가 궁금하다.

▲ 많은 분들이 부채 의식을 가진 시대이기도 하고 또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사건이었다. 슬픈 역사이고 희생된 분들도 많지만 온 국민들이 한 마음이었고 그 마음이 모여서 큰 성취를 이뤄냈다. 우리의 마음이 다 모였던 그 시간을 다루고 싶었다. 2년 전 시나리오를 받았고 한참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조차 불안한 상황이었다.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시나리오 작업에 또 한참을 보냈다.

- 당시 영화화의 가능성조차 불안한 정치적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택한 결정적 이유는.

영화 '1987' 스틸
▲ 선택하면서도 나 자신도 놀란 부분이 있다. 내게 마이너한 감성과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취향이 있는 게 분명 사실이다. 본질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는 듯하다. 아버지가 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이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우리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하나', '어떤 세상을 물려줄까' 하는 생각이 커진다. '화이'는 아이를 낳을 무렵 만든 영화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진다. 본질적 문제, 실존적 문제를 고민하는 기초과학도 중요하지만 사회과학도 떨칠 수 없는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 강동원, 김윤석, 하정우가 초반기 캐스팅돼 영화화에 진척을 이뤘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 강동원 씨가 저와 단편을 하면서 인연이 돼 서로 술 한 잔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는데 '이런 작품을 준비 중이다'라고 하나 "다 되면 보여달라"고 하더라. 당시 정치적 상황이 하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과감히 같이 하자고 말하지 못하겠더라. 그래도 보여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보여줬다. 강동원이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대스타이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인데 성격상 이런 영화를 감히 하자고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강동원은 본인이 영화에 들어가서 도드라져 보이거나 작품에 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까지 고민하더라. 캐스팅이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 됐기에 '누가 먼저 됐다'고 이야기 하기는 곤란하다. 김윤석 선배도 안 좋은 상황 안에서 결정해줬다. 하정우 배우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강동원도 하기로 돼 있다'고 이야기 하니 "당장 함께 만나자"며 도원결의를 제안했다. 김윤석 선배는 형님으로 늘 '으ㅆㅑ으ㅆㅑ' 분위기를 이끌어줬고 하정우는 너무 쿨하게 "감독님, 왜 그렇게 걱정하시냐.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다"며 힘을 줬다. 과정이 너무 즐겁고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 박처원 처장 역의 김윤석은 등장부터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의 포악함이 느껴지더라.

▲ 김윤석 선배는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어울릴 수 있는 배우는 많이 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꽤 있으니까. '화이'에서 함께 작업 해보니 도전적인 걸 좋아하더라. 하던 것을 똑같이 하는 걸 꺼린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하더라. 윤석 선배라면 이 역할을 신선하게 해석하면서도 정통성이나 본질을 잃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저 스스로도 컸다.

영화 '1987' 스틸
- 최검사 역에 하정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 최검사는 우리 영화 안에서 장르적이고 영화적 인물이다. 그런 느낌의 캐릭터를 많이 보셨을 텐데 그만큼 기대가 많은 것 같다. 중간에 스리슬쩍 사라지는데 그 캐릭터가 주는 경쾌함이나 에너제틱한 부분들이 재미있고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하정우 배우는 이 역할에 너무 잘 맞을 것 같아 캐스팅 제의를 했고 너무 잘 해줬다. 하정우가 관객들이 영화 속으로 쭉 들어가게 만드는 안내자 역할을 잘 해줬다. 아쉽지만 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 김태리 또한 영화 '아가씨' 이후 재발견이다. 시대극에 어울리면서도 인물의 순수함과 강직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 연희 역은 조심스럽고 민감한 캐릭터였다. 엄마와 함께 나오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이고 보통 사람의 시선과 갈등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한열 열사를 극 안에 부드럽게 끌어들이는 기능적 역할 했어야 했다. 제일 중요했던 건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하면서 극 안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 누구일까. 보통 사람 같으면서도 여성으로서 자기 주체성과 매력이 있고 드라마 구조 안에서 녹아내릴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김태리는 '아가씨'에서 너무 인상 깊게 봤던 배우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어떨까 매우 궁금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굉장히 진솔하면서도 무겁지 않더라. 가벼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야무지고 당차고 겁도 없는 20대였다. 그런 면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바라던 연희가 나타났구나"싶더라.

- 모든 배역에 전부 감정이 실린다. 한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는 스토리가 아닌 극 중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인 셈이다.

영화 '1987' 스틸
▲ 많은 캐릭터들이 하나의 악의 축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그들이 릴레이 하면서 큰 파도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배역들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야 했고 배역들이 영화가 끝나고 모두가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지길 바랐던 부분이 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당신들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이니 그런 구조를 갖췄다. "거리에 나와서 손을 들었던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이뤄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모든 배역들이 제 각자의 빛을 발하면서 살아나야 이 영화는 살아난다. 그랬기에 배역 하나하나에 다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 자칫 잘못하면 사회적 정의만을 강변하는 것에서 끝날 수 있는 위험 요소도 있었다.

▲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영화는 더 특수한 상황이었다. 팩트는 팩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면서 드라마적 재미와 이야기의 흐름을 관객들이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야 했다. 또 세부적으로 실명을 어디까지 쓸 것인가, 실제 사건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등 종합적 부분을 잘 어울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당신들이 주인공이다'라는 주제를 어떻게 깊이 전달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전통적 드라마트루기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을 따라서 쭉 가다가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를 주기 마련인데 우리 영화는 구조가 전혀 달랐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완수해내야만 했다.

- 박희순과 유해진은 고문 장면들을 직접 촬영하느라 고생이 남달랐을 것 같다. 두 중견배우의 열연이 유독 눈에 띈다.

▲ 박희순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연기를 너무 잘 해서 편집된 희한한 케이스다. 악역이라도 그 안에 있는 갈등을 3D로 잘 조각해서 전체가 어우러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조 반장이 독방에 갇혀서 하는 행동들을 붙여 놓고 보니 너무 연민이 들더라. 자칫 잘못해서 그 사람들도 피해자라고 보일 가능성은 절대 경계했다. 유해진이 연기한 한병용도 정말 중요한 인물이다. 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1987'에 검사, 의사, 변호사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결국 보통 사람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파노라마를 담고 싶었기에 이 가족이 중요했다. 유해진씨가 정말 필요했다. 유해진 배우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인데 제가 영화를 자주 만든게 아니라 그동안 출연 요청을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 엔딩크레딧에 아내인 문소리가 등장한다. 영화에 어떤 역할을 했나.

▲ 이 영화는 에필로그 장면 속 광장의 바로 그 시민들에게 '국민들이 주인공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다. 그 시간에 대한 부채감은 저에게도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 데뷔도 한 문소리 배우가 와서 도와줬다. 스크럼을 왜 짜야 하는지, 어떻게 짜야 백골단에게 잡혀 가지 않는지를 현장의 배우들에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설명했다. 버스에 연희가 올라가는 신을 자세히 보시면 저 멀리서 정확한 팔 동작으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사람이 바로 문소리다. 구호를 외칠 때 팔을 드는 각도부터 박수를 치는 이유까지 많은 걸 배우들에게 설명했다. 상당한 도움을 줬다.

- 장준환 감독의 1987년은 어떠했나.

▲ 그 시절에는 고등학생이었다. 대학 초년생 때는 남들이 다 청소년기에 겪는 실존에 대한 고민을 혼자 열심히 했다.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하는 개똥철학에 빠져 있었다.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학생 운동을 하거나 역사를 공부하거나 하는 노력은 없었다.

- 고문 장면에서 영정 사진 속 박종철 열사를 연기한 배우가 여진구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실제 역사의 아픔과 더불어 마음 속 한 구석이 아려오는 느낌이 있다.

▲ 그 장면에서 고문의 잔인함을 보여주지는 말자는 의지가 있었다. 다만 21세 대학생이 느꼈을 공포와 절박함은 드러내고 싶었다. 21세의 청년이 숨을 거둘 때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났을까. 그런 마음으로 접근한 장면이다. 그 때 박희순이 연기한 조반장이 이렇게 말한다. "나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 일 안 생겨"라고. 수조 안에서 죽어간 그 죽음이 결국 정의구현사제단의 명동성당 선언문 낭독으로 이어지고 또 광장으로 이어지며 얼마나 큰 파장과 파도를 일궈내나. 박 열사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선배의 행방을 몰랐을까.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을 하며 만들어진 장면이다.

- 흥행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또한 당시 시대 상황이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과 평가도 이뤄질 것 같다.

▲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시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는 걸 듣는 게 기본 욕망일수 있겠다. 많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깊이 교감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만든 사람으로서 그런 반응들에 의해서 저도 위로 받는 측면이 있다. 창작을 하는 과정이 자기 만족감도 있겠지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한다는 것은 그런 과정이 아닐까. 서로 외로움을 나누고 존재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서로 위로해주는 과정 말이다. '1987'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양질의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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