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로 활약

고강도 액션+현실적인 평양 사투리 열연

연기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

배우 정우성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NEW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유독 특출한 외모 탓일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우성에게 갖는 편견이 있다. 잘생긴 얼굴로 명맥을 유지해온 톱스타라는 오해다. 이처럼 정형화된 수식어는 늘 그가 외모가 아닌 요소로 평가받을 기회를 빼앗곤 했다. 그런 면에서 ‘강철비’는 꽃미남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의 정우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강철비’는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하고,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으로 긴급히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사건을 그린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다. 정우성은 극 중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로 분해 날카로운 눈빛의 요원부터 책임감 넘치는 가장으로서의 모습 등 엄철우라는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면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특수요원 캐릭터를 떠올렸을 때 고착화된 이미지가 있지만, 양우석 감독은 오히려 그에게 ‘순수함’을 최우선으로 요구했다.

“기본적으로 저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서 감독님의 요구를 듣고 의아했어요. 순수한 모습도 중요했지만 엄철우라는 인간의 삶, 고단함, 책임감 이런 것들이 충실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정우성은 이번 캐릭터를 위해 북한 사투리부터 고강도의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어느 때보다 고민하고 애썼다. 날렵한 몸매를 위해 체중 감량은 불가피했고, 몸무게가 줄어들수록 체력은 저하됐다. 그 와중에 고강도의 액션신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체중이 줄어드니까 자연스럽게 체력도 떨어졌어요. 그래서 액션신을 찍을 때 체력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더 처절하고 사실적인 액션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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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엄철우라는 캐릭터를 지켜보면 여러 가지 감상이 든다. 우리가 북한 동포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종류다. 한민족이지만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엄철우에게 연민, 동질감, 적대심 등 복잡다단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특히 엄철우의 이질감을 극대화시키는 건 독특한 억양의 평양 사투리 몫이 크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북한 사투리가 아니라서 간혹 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정우성은 “그렇다면 의도한 바가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촬영 때도 관객들이 좀 더 듣기 쉽게 사투리를 변형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자꾸 타협하다보면 진짜 평양 사투리랑 점점 거리가 멀어지잖아요. 낯선 북한 말이라서 이질감을 느끼는 게 오히려 정확한 워딩보다 더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해요.”

극 중 엄철우와 곽철우(곽도원) 역시 마찬가지다. 체제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첫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같은 언어와 같은 정서로 연결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국수를 먹는 모습에선 마치 한 사람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결국엔 한 핏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연출에 뭉클함은 두 배였다. 정우성 역시 해당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마침 곽도원씨가 왼손잡이여서 우연히 탄생한 장면이에요. 둘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수갑이 마치 한반도를 갈라놓은 38선 같았어요. 또 엄철우는 오른손으로, 곽철우는 왼손으로 국수를 먹는 데 꼭 한 사람 같고 기분이 묘했죠.”

영화적 메시지, 세련된 연출, 톤 앤 매너 등 ‘강철비’는 분명 사랑받을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민감한 소재의 특성 탓에 좌파 영화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정우성은 “그런 선입견이 있는 관객이라면 제가 아무리 해명해도 안 볼 것 같다”면서도 “영화를 보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철비’는 어느 쪽을 지향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중립적이고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북한은 같은 민족이잖아요. '북이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다'는 대사도 있고.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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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사람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 삶에 대한 뚜렷한 소신은 이번 영화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의 말대로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강철비’는 단순한 첩보액션극 이상의 의미였다. 전작 ‘더 킹’, 차기작 ‘인랑’ 등 작품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게 된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정우성은 “인간답게 사는 게 최대 관심사”라며 천천히 운을 뗐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치죠. 저는 어린 나이에 사회에 던져졌어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어린 애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얼마나 사회의 불합리를 많이 봤겠어요. 실제로 제가 그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한때는 삶에서 어떤 단어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꼭 ‘존중’을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저는 그냥 우리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 혼자만 행복하면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닐 거예요.”

정우성을 향한 관객의 기대는 다양하다. 정우성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젠 ‘잘생겼다’는 칭찬에 ‘저도 알아요’라고 받아칠 만큼 여유가 생겼고, 그런 능청스러움이 그의 매력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때로는 관객의 기대와 맞지 않는 연기를 할 수도 있겠죠. 제 연기, 비주얼에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고 사실상 대중의 기대를 100% 채우긴 힘들어요. 저는 나이 먹어가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확대되는데 그게 관객이 원하는 이미지와 충돌할 수도 있죠. 그렇게 부딪히면서 생기는 상처도 제가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이에요. 그렇게 진짜 배우가 돼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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