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안부러운 세련된 한국형 첩보액션물의 탄생

영화 '강철비' 포스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로만 알았던 전쟁장르물로 돌아왔다. 정우성·곽도원, 김갑수, 김의성, 이경영 등과 함께 한 영화 '강철비'로 말이다.

데뷔작인 '변호인'으로 1137만 흥행을 달성하며 화제를 모았던 양우석 감독은 당시의 흥행이 결코 톱스타 캐스팅과 행운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철비'로 입증했다.

북한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개성공단에 열린 행사에 참석한 북한 1호를 공격하기 위해 미군의 스틸레인이 발사돼 수많은 민간인이 사살당하고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한다. 북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부상을 입은 북한 1호를 호송해 남한으로 피신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북 군부 세력은 대한민국과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리고 이제 막 새 대통령의 당선을 맞은 남한은 정권이양이 되지 않은 상태여서 북의 공격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국 CIA와 일본, 중국의 주요 외교관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는 북한 1호가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북한 1호의 행방 찾기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 1호를 보호하고 있는 엄철우와 맞닥뜨리게 된 곽철우, 처음엔 적대 관계로 대치하지만 시시각각 이들의 목줄을 조여 오는 북한 공작원들의 공격과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두 사람은 한반도를 단번에 초토화 시킬 수 있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 공조하기 시작한다.

영화 '강철비'의 가장 큰 미덕은 북한과 핵으로 대치하게 되는 가상 상황과 한반도를 둘러 싼 미중일 등 주변국들의 대응에 대해 어떤 매체보다도 쉽고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것에 있다. 반백년이 넘는 세월을 분단 상황에서 살아오며 실체적 전쟁에 대해 다소 둔감해진 관객들에게 전쟁이 발발됐을 경우 어떤 경로를 거쳐 실체적 위협이 가해질 수 있는가를 촘촘히 짜인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영화라는 장르 속 가상 상황이라는 것을 잊고 실제 전쟁 위협이 내 목전에 놓인 것처럼 공포가 들 정도다.

감독 데뷔 이전 인기 웹툰 작가로 활약했던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의 근간이 된 웹툰 '스틸레인'을 통해 이미 남북 정세에 대한 10여 년에 걸친 꾸준한 자료조사를 통해 정치적·군사적 배경 지식을 쌓아왔고 그렇게 쌓은 배경 지식들을 통해 실제적 한국 영화 최초 핵전쟁을 다룬 '강철비'를 탄생시켰다.

양우석 감독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남북 핵전쟁을 그리는 과정에서 사실성을 가장 중요시 여기며 영화를 완성했다. 군사 장면을 위해 실제 총기류를 공수하며 북한 군사 물품을 중국에서 직접 수입하는가 하면 극 중 가장 참혹한 장면 중 하나인 스틸레인(강철비-영화 제목이자 살상 반경이 매우 커서 전세계 140여 개국 이상이 사용 금지협약을 맺은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 폭격 장면 등을 통해 사실감을 극대화시키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강조했다. 남북출입국 사무소 장면은 실제 장소를 섭외해 촬영하는가 하면 북 최고 요원 엄철우의 집 장면 또한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북한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강철비'의 또 다른 장점은 일촉즉발 위기에 놓인 남북한과 세계열강들의 이해관계와 역학관계를 실감나게 전달하면서도 첩보 액션물이 줄 수 있는 최고치의 긴장감과 전쟁 장르가 주는 공포감, 적대 관계로 만난 북한의 엄철우(정우성)와 남한의 곽철우(곽도원)의 브로맨스가 주는 밀도 높은 드라마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살린다는데 있다.

수개월 동안 평양 사투리 훈련을 받고 지역별 사투리의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북한 다큐멘터리를 수차례 돌려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은 정우성은 조직에 충성하는 우직한 군인의 모습과 딸과 아내를 둔 평범한 가장을 오가며 따뜻한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북한 요원 엄철우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액션 연기에 있어서는 자타 공인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그답게 타격 액션과 카 액션 신에서 심장박동 지수를 높이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액션 연기만큼이나 인상적인 모습은 엄철우와 우정을 나눌 때 또 딸과 교감할 때 그가 보여주는 촉촉한 눈빛 연기다.

'곡성'을 시작으로 '특별시민'으로 주연 배우 자리를 확고히 굳힌 곽도원은 '강철비'를 통해 향후 오랜 시간 충무로 캐스팅 1순위에 그의 이름 석 자가 오를 것임을 예고했다. 특히 돌싱남에 평범한 아버지면서도 전쟁 위험을 막아야 하는 고위직 관료, 여기에 엄철우와 우정까지 나눠야 하는 곽철우 역을 맡아 관객이 영화에 정서적으로 발을 붙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강렬한 악역 연기뿐만 아니라 세련미가 뚝뚝 묻어나는 고위직의 소화도 능청스럽게 가능함을 여실히 증명해 낸다. 특히 '아수라'에서 함께 호흡하며 교감을 나눈 동갑내기 정우성과 곽도원의 브로맨스 케미는 엄철우와 곽철우의 아랫목 온기 같은 묵직한 우정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북한 정찰총국장 역의 김갑수, 현 대통령 김의성, 대통령 당선인 이경영, 북한 요원 조우진 등 주요 배역들의 연기부터 핵탄두가 터져 나오는 VFX 장면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부분이 없다. 다만 김정은으로 추정되는 북한 1호의 얼굴이 단 한 차례라도 제대로 등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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