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심슨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민족사관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를 거쳐 SAT 스타 강사로, 또 뮤지션으로, 이젠 사업가로 살고 있는 남자가 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닥터심슨.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닥터심슨(본명 최찬영)은 래퍼 헤이즈의 전시 기획 관련 업무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연신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분주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닥터심슨은 지난달 24~26일 진행된 ‘스펙트럼 오브 헤이즈'(Spectrum of Heize) 전시 기획을 진행했다. 헤이즈의 신보 음감회, 전시, 엔터테인먼트가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등 독특한 형식으로 화제를 모은 이벤트. “‘스펙트럼 오브 헤이즈’는 음악을 공간과 예술로 티징하는 전시였어요. 설치미술, 일러스트레이션과 음악이 만난, 이런 공감각적인 기획은 아마 국내 최초였을 거예요. ‘나 혼자 산다’에 나온 헤이즈를 인상 깊게 봤어요. ‘알바하러 서울 왔나’ 싶었다는 헤이즈를 보면서 제가 어릴 때 학원강사하면서 음악을 꿈꾸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헤이즈가 좋아하는 것, 그녀의 색깔을 스펙트럼처럼 보여주고 싶었죠. 다행히 도와주신 분들이 많아서 헤이즈와 팬들 모두가 만족하는 행사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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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심슨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뮤지션 중 하나다. 민사고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한 때 SAT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화려한 스펙 덕분에 ‘문제적 남자’, ‘F학점 공대형’ 등에 출연하며 ‘뇌섹남’ 면모로 주목받았다. 현재 닥터심슨컴퍼니의 대표이자, 자회사 디어뮤즈먼츠를 운영하고 있으며 월간지 ‘돈 패닉 서울’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엘리트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는 뮤지션이야 흔하지만, 그 중에서도 닥터심슨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 만큼 꽤나 독특한 면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그가 운영 중인 닥터심슨컴퍼니의 색깔이다. 닥터심슨컴퍼니는 요즘 인디신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들을 품고 있는 기획사. 최근 역주행 신화를 쓴 가수 ‘그_냥’부터 올해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수상한 ‘전범선과 양반들’ 등 색깔 있는 뮤지션들이 다수 소속돼있다. “일부러 인디가수들만 모으려던 건 아닌데 개인적인 음악적 욕심을 소속가수들이 해소해주고 있죠. 저희 회사의 특징은 A&R이 없다는 거예요. 앨범 기획부터 제작과정 전반에 걸친 A&R에서 주로 맡는 일들을 소속 아티스트들 스스로 해야 돼요. 인디가수의 정의가 뭘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에요. A&R부터 독립적이라면 인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본거죠.”

닥터심슨컴퍼니는 알고보면 속이 꽤 알차다. 사회공헌 문화기획사 디어뮤즈먼츠를 자회사로 두고 나날이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추세. 디어뮤즈먼츠는 수익·규모 등 자회사라고 넘기기엔 제법 몸집이 큰 조직이다. 굳이 잘 되고 있는 닥터심슨컴퍼니에서 자회사를 만든 이유를 들어보니, 역시나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콘서트를 하면 여성팬이 많은데 그분들께 뭔가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모레퍼시픽에서 설립한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를 한 적도 있고, 여성들의 유방건강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이 문화·의료적으로 얼마나 의미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죠. 그래서 '예뻐보여'가 수록된 앨범의 판매금 일부를 저소득층 유방암 환우들의 치료비로 전달하자는 기획을 하게 됐고, 그걸 하기 위해 만든 게 디어뮤즈먼츠였어요. 순수하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자는 뜻 그대로 실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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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심슨이 지금껏 해온 기획을 보면 그는 분명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가 편집인으로 활동 중인 ‘돈 패닉 서울’(Don't Panic Seoul)은 그런 그의 성향을 온전히 드러낸다. ‘돈 패닉 서울’은 한국의 서브컬쳐를 알리기 위한 글로벌 문화지로 영국 ‘돈패닉’ 본사에서 라이선스를 따왔다. 플라이어 팩 형태로 봉투를 뜯어보기 전엔 내용물을 알 수 없다는 게 특징. 대다수 지면 매체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추세를 굳이 역행하면서 오프라인 매체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에 이런걸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야 진짜 패닉이다’라고 했어요. 다들 안 될 거라고 했죠. 하지만 가장 지면다운 지면 매체를 만들면 살아남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아직도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스마트폰 검색 대신 찾아다니는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무가지로 카페나 문화공간에 한정 배포되고 있는데 요청하는 곳이 많아서 비공식 기록으로 보그만큼 찍는다고 들었어요. 인터넷 홈페이지도 일부러 안 만들었어요. 소개팅 전에 SNS를 안 하는 상대면 더 궁금해지잖아요? 그런 심리를 이용한거죠.”

한 사람의 이름 앞에 이토록 많은 직업이 붙는 일은 분명 흔치 않다. 그래서 그는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소개할 필요가 없는 자리만 나간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최근까지 사업과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는 탓에 음악에 대한 외도는 어쩔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닥터심슨의 삶에서 음악은 절대 옅은 색은 아니었다.

“뮤지션으로서 팬들에게 게을러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음악을 놓을 생각은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어느정도 실무자가 정해지고 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음악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 사실 제대로 음악을 배우지도 않은 제가 음원을 내고 제작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무대에 오를 수록 부족한 면이 눈에 띄거든요. 음악이라곤 군악대에서 군생활하면서 배운 게 전부에요. 비록 ‘독도는 우리땅’ 뒤에 랩가사를 쓰라고 해서 쓰는 정도였지만.(웃음)”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지적인 이미지 탓에 마냥 이성적인 사람일 거란 편견이 있지만 그의 음악의 의외로 부드러운 감성이 충만하다. ‘미스 딕셔너리’(Ms.Dictionary), ‘이리도’ 등을 비롯해 올해 3월 발표한 ‘새벽’까지 그의 노래들은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로맨틱한 매력으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결집시켰다.

“대학교 때는 불만이 많은 학생이어서 반항적이고 거친 느낌의 힙합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근데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에서 래퍼들이 비싼 차나 집을 자랑하는 걸 보는데 멋이 없더라고요. 그게 힙합이라면 스티브 잡스가 가장 힙합이겠죠. 그래서 '난 비싼 시계 대신 네가 있잖아’ 이런 이야길 담고 싶어서 '있잖아'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고요. 사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고, 그게 멜로디컬한 랩을 쓰는 이유이기도 해요. 요즘엔 노래만 있는 음악도 많아요. 여기에 마디가 비면 얇은 붓으로 랩을 그려넣는 거죠. 그래서 전 스테레오 타입의 래퍼라기 보다는 뮤지션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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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계산없이 달려드는 탓에 벌써 손에 쥐고 있는 프로젝트만 여러 개. 당장 이번 달부터 올해 연말까지 스케줄표는 꽉 찬 상태다. 하지만 닥터심슨은 막무가내로 일만 벌이고 '나 몰라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강조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이 같은 우직한 면모 덕분에 닥터심슨을 찾는 곳은 방송·엔터·홍보 등 분야를 막론하고 참 많다. 올해 하반기에 출연 예정인 방송부터 사업, 소소한 프로젝트까지 “개인적인 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다”고 할 만큼 바쁘지만 닥터심슨은 행복해보였다.

“적어도 뒤통수 때리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게 잘 될지 안 될지 따지지 않고 할 생각이에요. 돈과 명예는 나중에 찾아봐도 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잖아요. 일단 어떤 일이 마음 속에서 차오른다면 그건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럼 일단 해보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죠. 실패할까봐 혹은 나이 때문에 시작도 안한다면 20년 뒤에도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건 그래서 참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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