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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혜옹주' 손예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김소희 기자] 손예진은 똑똑한 배우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인터뷰 내내 노련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항상 자신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덕분에 쌓인 결과물인 듯하다. 데뷔 후 17년 간 쌓은 내공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묻어났다.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신작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제작 호필름)로 올 여름 대작 전쟁에 나서는 손예진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렸다. 손예진이 덕혜옹주로 분했다.

언론시사회 및 각종 일반시사회를 통해 '덕혜옹주'가 공개된 후 손예진의 '인생작'이라는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해일은 "원래도 잘하는 배우지만 점점 묵직함까지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예진의 연기 인생에서 '덕혜옹주'로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정점을 찍었다. 평단 및 영화를 먼저 접한 대중들의 극찬을 첫 질문으로 전하니 손예진은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영화를 찍었다"며 좋아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은 건가요?(웃음) 그런 평가를 해주시는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제가 출연한 영화를 두고 좋은 평을 해주는 분들은 많았는데 인생작이란 얘기는 처음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려 하고 들떠있지 않으려고 해요. 영화 시사회 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전날 잠도 못잤어요. 되게 뭉클하면서도 뿌듯함이 뒤엉킨 느낌이에요."

손예진은 그동안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언론시사회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고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충무로 캐스팅 1순위 여배우인 그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려본 건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이전엔 자신의 출연작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 '덕혜옹주' 손예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보통 촬영을 할 때는 역할에 몰입돼 거기에 빠져서 찍지만 영화를 볼 때는 그게 안 돼요. 계속 허점이 보이고 후회되는 지점이 보이거든요. 한 작품씩 해나갈수록 편집점이나 감독님의 의도가 더 보여요. 이제는 믹싱, 음악까지 다 느껴질 정도죠. 신기하게도 '덕혜옹주'는 정말 관객의 입장에서 본 것 같아요. 너무 울어서 시사회 당시가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너무 우니까 해일 오빠가 쳐다 본 것만 기억나요. 이어지는 기자회견에 바로 나서기 어려울 정도로 화장이 다 지워진 거 있죠.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그 분에 대한 애환과 감정이 어딘가에 남아있나봐요."

손예진은 '덕혜옹주'에서 50대 노역에도 도전했다. 구부정한 자세와 초점 없는 눈빛,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쯤 미쳐버렸던 덕혜옹주를 표현해야 했다. 표정 연습을 따로 한 것은 아니다. 오직 '텅빈 동공'만 머리 속에 그리며 촬영했다. 가까스로 한국에 돌아와 창덕궁을 거니는 50대 덕혜옹주를 표현하는 손예진의 두 눈은 내내 충혈돼 있었다. 유독 충혈된 그의 두 눈동자와 벌겋게 부은 입술 등은 '덕혜옹주'를 향한 관객의 몰입감이 더해지도록 일조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몇 번씩 울컥해하는 손예진에게서 덕혜옹주의 잔상이 느껴질 정도였다.

'덕혜옹주'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당시부터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할지 허진호 감독, 배우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허진호 감독과는 11년 전 배용준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외출'에서 호흡을 맞췄다. '원신 원컷'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이지 않냐고 묻자 고개를 연방 끄덕인다. 20대에 만난 허진호 감독과 30대에 만난 허진호 감독은 어떻게 달랐을까.

"맞아요. '외출'은 하루에 한 신밖에 못 찍을 때도 있었어요. 30테이크는 기본으로 가셨죠. 이제는 영화 현장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시간이 다 돈이니까 스케줄에 맞춰서 찍어야 했고 분량도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컷이 굉장히 많았죠. 감독님은 의견과 질문을 좋아하세요. 예나 지금이나 배우에게 어떤 걸 강요하지 않아요. 심지어 대사를 하면 왜 그런 대사를 했냐고 물으세요. 당연히 대본에 있으니까 한 건데도요.(웃음) 허진호 감독님은 배우가 계속 생각하게 하세요. 자칫 자기화 돼서 틀에 박힌 정형성이 연기에서 나올 때가 있는데 그걸 짚어주세요."

'덕혜옹주' 타이틀롤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손예진이다.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가 원톱인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올해에만 두 작품이나 손예진 손에 들어갔다. 게다가 대작들이 즐비한다는 여름 영화 시장에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과 함께 '빅4'로 이름을 올렸다.

"여배우가 오롯이 끌고 가는 작품, 특히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현실이겠죠. 그런데 '덕혜옹주'는 덕혜옹주라는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고, 여름에 나왔다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잘 안되면 '역시'라는 말이 나올 거고 여배우인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줄어들 것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잘 됐으면 좋겠어요."

'덕혜옹주'를 향한 시선들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황실에서 자라 일본으로 유학을 간 덕혜옹주가 영화에서는 조선의 독립에 포부를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무엇을 행동했는지 알 수 있는 사료가 부족한 탓도 있다. "볼거리 위주와 재미 위주의 '덕혜옹주'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덕혜옹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원했다.

"덕혜옹주에 대해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또 저희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잖아요. 영화화 하면서 각색도 되면서 소설에는 나오지 않은 망명 작전이 커졌어요. 당시 덕혜옹주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상상 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거예요. 또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보셔야 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겠죠. 그러나 덕혜옹주의 기본적인 사건과 감정은 철저히 가지고 갔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역사 왜곡이란 표현은 아쉽습니다."

최근 손예진은 '덕혜옹주' 제작에 사비 10억 원을 투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미 대중들에게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언급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적어도 3~4일은 들여서 찍어야 될 분량을 단 이틀 만에 찍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투자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그렇게 계산하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저도 이번에 영화 투자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됐어요. 투자하고 싶다고 해서 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게 잘 맞아야 되더라고요. 모두에게 이 영화는 중요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다 감사해요. 그래서 뿌듯함과 남다름도 있어요."

관객이 평가하기에 '덕혜옹주'는 그간 손예진이 연기한 캐릭터들과 성격이 사뭇 다르다. 유독 수동적이고 모든 걸 눌러 담는다. 지극히 한국적인 캐릭터다. 손예진은 현대적 여성상과 가까운 인물들을 주로 맡아왔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연애에 상당히 깨어있는 여자였고,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보도국 기자로 분주했다. '비밀은 없다', '해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그랬네요.(웃음) 그러나 그건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이 변한 까닭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덕혜옹주라는 한 인간의 성격이 수동적인 것 같아요. 덕혜옹주의 상황에선 어떤 것도 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거기서 오는 비극성도 있고요. 저도 애기 때, 10~20대 때 정말 많이 참고 지냈어요. 트리플 A형이었죠. 힘든데 안 힘든 척 하는 그런 사람이요. 일을 하면서 외향적으로 바뀌고 화를 안 내면 안 되겠다 싶어 화를 내게 됐죠. 당시 상황 속에서 덕혜옹주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던 건 완전히 이해가 돼요."

손예진은 4개월간 덕혜옹주로 살았다. 많은 작품을 찍으면서 그 작품에서 비교적 잘 빠져나오는 편이라 생각했던 그도 이번 작품만은 쉽지 않았다. '덕혜옹주'를 떨쳐내기 위해 일본행을 택했고, 촬영이 끝난 다음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한 시간 안에 어디든 가야만 했다고.

"촬영이 끝나면 다음날 일어날 때가 가장 힘들어요. 매일 가던 곳과 매일 생각하던 게 있으니까요. 역할을 하는 동안은 그 인물로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밥을 먹어도 제가 밥을 먹는 느낌이 아니에요 사실. 그렇게 몇 개월씩 지내다보면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순간도 있어요. 그래서 한 작품을 마치고 나면 제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은 허무한 느낌도 들어요. 그래서 어디든 가야만 했어요. 감독님과 해일 오빠한테 말했더니 추진력이 대단하다고 하면서 부러워 하던데요.(웃음)"

대놓고 '다작 배우'다. 17년간 배우 활동을 하면서 한 해도 쉰 적이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배우로서 손예진을 보기란 결코 어렵지 않았다. 많은 이의 응원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얼굴도 예쁘겠다, CF 스타로 편히(?)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참 바쁘게 살았다. 그럼에도 2008년 '스포트라이트', 2010년 '개인의 취향', 2013년 '상어' 이후 드라마에서 볼 수가 없어 아쉽다고 하니 "다 기억하고 계셨냐"며 놀라워 하지만 내심 기쁜 눈치다.

"올해는 조금 쉬고 싶어요. 또 작품에 들어가면 남아있는 정신력까지도 고갈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 반사전이나 사전 제작들이 많아지면서 드라마 촬영 환경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 겁이 덜 나기도 해요. 워낙 밤을 많이 새고 찍은 기억이 많으니까.(웃음) 배우들은 드라마에 한 번 들어갈 때 '그냥 죽었다'라는 각오로 들어가요. '연애시대'는 정말 촬영 시간을 길게 잡고 찍어서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대본 나오고 정신 없이 앉아서 읽기만 하면 재미 없잖아요. 한 번 더 생각하고 얼마나 공들여 찍느냐에 따라 완성도는 다르거든요. 저는 드라마도 언제든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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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6/08/03 07:00:29   수정시간 : 2016/08/08 14: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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