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기억을 잃은 정우성 앞에 나타난 미스터리녀 역 열연
멜로는 배우로서 최대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르
결혼은 여배우에게 장애가 아닌 표현력 높일 수 있는 기회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스타들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간다. 전도연이 ‘칸의 여왕’, 하지원이 ‘액션퀸’으로 기억된다면 대한민국 여배우 중 ‘멜로퀸’은 당연히 김하늘이 아닐까? 김하늘은 청순한 미모에 풍부한 감성,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눈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제2막을 앞둔 김하늘이 새해 초 오랜만에 멜로퀸으로 돌아왔다.

김하늘의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나를 잊지 말아요’(감독 이윤정, 제작 더블유팩토리)는 기억의 편린과 상처의 치유를 그린 작품. 김하늘은 교통사고로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한 남자 연석원(정우성)의 앞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여자 진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새 살이 돋아나듯이 다층적인 구조의 스토리 안에서 김하늘은 다양한 감정의 결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하늘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는 안도감과 작품에 대한 만족감 때문인지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믿음=김하늘이 ‘나를 잊지 말아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작품과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복잡한 구성과 강렬한 주제의식 때문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울리는 시나리오와 신인답지 않은 강단을 지닌 이윤정 감독, 꼭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었던 정우성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1년 전에 촬영이 끝나고 그 사이 두 편의 영화를 촬영했지만 ‘나를 잊지 말아요’는 김하늘 가슴 속에 피어있는 물망초 같은 작품이었다.

“사실 시나리오가 많이 어려웠어요. 진영은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매신 다른 감정으로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전 캐릭터를 맡으면 푹 빠진 상태에서 밀고 가야 하는 연기 스타일인데 이 작품은 감정을 한 장씩 쌓아가며 연기해야 했어요. 그러나 이윤정 감독을 만나니 걱정이 사라지더라고요. 우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으면서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더라고요. 믿고 따라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성 오빠는 이번에 처음 함께 연기했는데 정말 흥미로운 분이었어요. 진지할 땐 진지하면서도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제작까지 직접 맡아 정말 힘들었을 텐데도 항상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어요. 정말 촬영장에서 의지할 만한 선배였고 제작자였던 것 같아요.”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멜로퀸=김하늘의 배우로서 최대 강점은 여성성이다. 아무리 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강한 여자가 대세라 해도 김하늘의 여성스러운 매력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중들의 마음을 흔든다. 김하늘이 연기하면 멜로물의 슬픈 사랑은 더 가슴 아파지고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한 사랑은 설렘지수가 더 높아진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도 ‘멜로퀸’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소 불친절한 스토리의 연결을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한다. 김하늘은 멜로 장르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멜로는 내 안의 극단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어요. 그러나 무척 힘들어요. 감정적으로 내 안의 감정을 바닥까지 끌고 내려가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분명히 연기하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분명히 느낄 수 있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도 그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결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분들이 있는 걸 알아요. 어찌 보면 새드 엔딩처럼 보일 수 있겠죠. 그러나 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진영에게) 희망이 없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두 사람이 그 다음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요?(웃음)”

#여배우=김하늘은 올해로 데뷔 18년차를 맞았다. 내년이면 이제 불혹.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청순한 소녀가 ‘믿고 볼 수 있다’는 찬사를 받는 당당한 여배우로 성장했다. 그러나 김하늘과 대한민국 여배우들이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멜로나 로맨틱코미디는 더 이상 대중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배우로서 감성의 공간은 더욱 커져만 가는데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작품은 줄어만 가고 있다.

“아까 어떤 기자분이 저에게 20년차 배우라고 해서 깜짝 놀라서 정정했어요. 2년 차이지만 더 오래된 느낌이 들잖아요.(웃음) 정말 세월이 금세 지났네요. 벌써 18년차라니.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엔 저 스스로 운이 좋았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분명 지칠 때도 있었죠. 그러나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한 작품씩 더할수록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져 갔기 때문에 버텼던 것 같아요.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가는 상황에서 아직도 절 불러주시고 제 작품을 봐주는 관객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좌절감까지는 아니어도 남자배우들이 부럽긴 해요. ‘나를 잊지 말아요’ VIP 시사회에 우성 오빠가 현재 촬영 중인 영화 ‘아수라’에 함께 출연하는 남자배우들이 다 왔는데 질투심이 나더라고요. 저도 여배우들끼리 모여 찍는 영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요? 윤여정 선배님요. 이제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꼭 한번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김하늘은 결혼 후에도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그에게 결혼은 연기 활동에 있어서 절대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결혼은 여자로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순간이죠. 일은 예전 같으면 한계가 올 수 있는데 요즘은 다른 여배우들도 결혼하고도 멋지게 활동하고 계시니 큰 걱정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왠지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에요. 배우로서 더 깊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생겨요. 결혼과 출산 등 삶의 순간들이 표현력을 더 늘려줄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의 배우로서 제가 어떻게 성장할지 제 자신도 기대돼요.”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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