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에서 푸르미 일동점 수산 파트 허과장 역으로 열연한 배우 조재룡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현주 기자] 배우 조재룡(39)에게는 여러 개의 얼굴이 공존했다. 인자하고 자상한 얼굴을 하다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짓말을 일삼는 야비한 모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금세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피해자의 얼굴이 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서 꼭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공분을 샀고, 그래서 더 연민이 갔다.

조재룡은 최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송곳’(극본 이남규 김수진,연출 김석윤)에서 푸르미 일동점 수산 파트 과장 허경식 역으로 열연했다. 허과장은 상사에게는 아부하고 밑에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인물이었다.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친분을 쌓았던 부하 직원 황준철(예성)을 배신하고 독박을 씌워 해고 위기로 몰아가기도 했다.

“허과장은 코믹하기도, 비열하기도, 인간적이기도 해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람이에요.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죠. 저는 노는 것도 좋아하고, 웃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 진지하고 또 비열할 때도 있거든요. (비열한 모습이) 드물기는 하지만 누구나 그런 모습은 있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봐요.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연기하면 되겠다 싶었죠.”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최대한 웹툰과 비슷한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직접 남대문 시장에 가서 안경을 공수하고, 웹툰 속 허과장의 표정은 물론 작은 손짓까지도 연구하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노력은 성과로 돌아왔다. 그는 “감사하게도 초반보다 분량이 많아졌다”면서 “비열한 모습부터 코믹한 모습까지 풍성하게 역할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평했다.

허과장이 공감을 산 이유는 단순히 비열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극 초반 조직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주는 인자한 인물이던 그는 회사의 강압적인 직원해고 지시에 따르게 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광기 어린 눈빛과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을 내지르며 ‘분노유발자’로 거듭났다. 상사와 부하 이상의 친분을 쌓아온 황준철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회사에서 좌천되자마자 이수인(지현우)에게 노조 가입서를 내밀며 “지켜주실 거잖아요”라고 비굴하고 애절한 모습으로 연민을 샀다.

그런 행동에 그는 “(허과장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면서 “솔직히 조작을 한 건 나쁘지만 100%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자신이 사는 게 먼저였던 것 같다”고 웃어 보이며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때문에 연기를 할 때 어려움 역시 크게 없었다.

“캐릭터가 너무 점프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들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은 갑자기 변할 수 있잖아요. 허과장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강했던 인물이에요. 댓글에서도 ‘주변에 있는 인물이다’는 평이 많았죠.”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던 예성과는 남다른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지만 그의 연기 열정에 놀랐고, 드라마 끝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밝혔다.

“연기할 때 나나 잘하는 주의예요. 내 것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 연기를 제가 어떻게 평가하겠어요. (웃음) 예성과는 붙는 신이 많아서 촬영 전에 예성 부모님께서 하는 커피숍에 가서 연습도 하고 더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더라고요. 보기 좋았죠. 예성이에게 암덩어리 같은 신이 징계위원회 장면이었어요. 쉽지 않았을 텐데 잘 울고 연기도 잘 하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예성 좋다’면서 몇 번이나 칭찬해주더라고요. 살갑기도 많이 살가웠어요. 현장에 가면 먼저 다가와주니까 좋았죠. 제가 9부에 전출을 당했는데 메시지로 ‘서운하다’고 하고, 좋은 댓글이 있으면 보내주기도 했죠.”

그 역시 노조나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지 생각만 하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작품을 하면서 갑자기 큰 사명감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아주 사소한 변화가 그에게 생겼다.

“마트에 갔는데 제가 직원들을 유심하게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오늘 당장만 해도 미용실에 다녀왔는데 ‘저분이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사회 전반을 조금 더 유심하게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웰메이드’ ‘수작’이라는 평가에도 시청률은 낮았다. 그는 ‘송곳’을 놓친 시청자들에게 뒤늦게라도 작품을 보기를 추천했다.

“캐스팅이 됐을 때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이 역할을 잘해야 사회에 파급력도 생기고 노조도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청률을 떠나서 좋은 감독님, 배우들이랑 참 열심히 즐겁게 찍었어요. 제 기억 속에 평생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아요. 흥행하는 드라마는 많이 있지만 훨씬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송곳’을 놓친 분들에게 한번 즈음 꼭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의 시작은 연극이었다. 연극을 하다 대학교를 다니고 다시 연극을 하다가 들어가기로 했던 극단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면서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됐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수없이 많은 단역을 거치다 조연으로 자신의 역할 범위를 놓였다. 지금은 주연 못지않은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로 극에 남다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무대에서는 잘 노는 편인데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는 무대 위에서만큼 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많아요. 지금까지는 급급했어요. 연극을 할 때는 에너지를 보여주잖아요. 설정을 하다 보니까 자꾸 오버가 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데 오래 거렸어요. 결국 내 스타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에 진심을 진실을 담아내면 통한다는 걸 느끼게 됐죠.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은 먼 것 같아요.”

그는 노후하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정신도 노후해지지만 처음과 같은 열정을 지켜내고 싶은 것이 그의 현재의 꿈이라고 했다.

“열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정신 상태를 가지고 연기에 임하느냐가 중요하죠. 늘 처음과 같은 정신 상태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무너지지 않고, 계속 고민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쉽지는 않아요. 젊었을 때는 열정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게 없어지잖아요. 청년이 좋은 것 같아요. (웃음) 몸이 늙으니까 자꾸 생각도 노후해지는 것 같아요. 정신이 노후하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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