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현주 기자] # '봉황당' 택이 아빠가 낙엽을 쓰는 소리와 함께 쌍문동 골목길의 아침이 시작된다. '통 큰' 미란 여사는 아침부터 푸짐한 한상을 펼치고, '고양이와 쥐'인 보라-덕선 자매의 살벌한 신경전이 뉴스 소리를 뒤덮는다. 요란한 아침을 맞이하고 난 뒤 브로콜리 머리를 한 아줌마 3인방은 평상에 앉아 수다를 떤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골목친구 5인방은 한방에 모여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다.

그야말로 '응팔' 열풍이다. tvN 금토미니시리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이하 응팔)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사실 2015년과 1988년도의 괴리감이 컸기 때문에 '응팔'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신원호 PD 역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 "'폭망'할 것 같다"고 몸을 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응팔'은 방송 5회 만에 시청률 10%(이하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를 돌파했고, 지난 8회 방송은 12.2%를 기록하며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을 깼다.

▶ 골목길 그리고 가족·이웃 간의 情

온갖 공식을 뒤집었다. 흔히 흥행 드라마의 요건이라 볼 수 있는 막장 요소가 전무하다. 대신 '응팔'은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골목길과 그 골목길에 사는 가족과 이웃 간의 정에 초점을 맞췄다.

'응팔'의 배경은 쌍문동 골목길이다. 쌍문동 골목에 사는 다섯 이웃과 한 골목에서 나고 자란 골목친구 5인방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저씨들이 앞집 마당을 쓸며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주머니들이 골목 평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온갖 일에 참견한다. 아이들의 양육은 물론이거나 은밀한 밤 생활(?) 폭로전도 이어진다. 아이들은 저녁이 되면 반찬거리를 나르느라 바쁘다. 잡채를 받으면 귤을 얻어온다. 푸짐한 음식만큼이나 넉넉한 정이 오간다.

가족의 사랑과 이웃 간의 정이 주된 소재다. 성동일네 둘째딸 성덕선(혜리)은 공부 잘하는 첫째 언니와 귀한 셋째 아들 사이에 늘 치여 산다. 항상 양보하고 살아왔지만 그 역시도 아직 10대. 집에서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온 그에게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데, 우리 딸이 좀 봐줘"라고 달래주는 성동일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무뚝뚝한 아들 김정환(류준열)은 영어를 읽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엄마 라미란의 여권에 알파벳을 한글로 적어주는 남다른 배려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둑 천재인 아들 최택(박보검)에게 방해가 될까봐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는 것도 조심스러운 아빠 최무성의 모습 역시 짠한 감동을 안겼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하고, 윗집의 발소리에만 예민한 현대인에게 '응팔' 속 이웃 간의 정은 판타지다. 옥수수 바구니와 함께 무심하게 건넨 돈은 자식에게 용돈을 주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이일화의 눈시울을 붉힌다. "신세 좀 지면 어떻노"라며 1000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내미는 고향 오빠의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버릴 캐릭터가 없다.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쉰다. '응팔' 속 모든 인물들은 다 제 역할이 있고,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안긴다. 덕선은 예쁘지만 '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라고 해서 '특공대'라고 불린다. 하지만 친구들을 뒤에서 챙기는 예쁜 마음씨를 지녔다. 정환과 택의 사랑을 동시에 받을 정도로 해맑고 귀여운 매력을 지녔다.

나쁜 남자 스타일의 정환, 반듯하지만 좋아하는 여자에게만큼은 저돌적인 김선우(고경표), 모성애를 자극하는 택, 쌍문동 춤꾼이자 동네 재간둥이 류동룡(이동휘)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빚보증을 잘못 서 반지하 셋방살이 중이지만 정이 많은 탓에 불쌍한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동일,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지만 늘 가족을 챙기느라 바쁜 이일화, 화끈한 여장부 스타일로 골목 아줌마들을 이끄는 라미란, 남다른 개그 욕심의 김성균 등 꼭 우리네 옆집에 살 것 같은 동네 어른들의 모습 역시 공감을 이끄는 요소다.

반전 매력의 소유자들도 즐비하다. 우표 수집, 오락실 게임 등에 집착하며 '덕후'의 분위기를 풍기던 김정봉(안재홍)은 최근 영화 '늑대의 유혹' 속 강동원의 우산 장면을 따라하며 '정봉의 유혹' '봉므파탈' 등의 별명을 얻기도 했다. 2분가량의 클립 영상으로 공개된 이 장면은 공개 10일 만에 50만 건이 넘는 클릭수를 기록했다. 성보라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다혈질로 동네에서는 소위 '무서운 언니'로 통한다. 까칠하고 무섭지만 담배 피는 청소년을 훈계하고 최근 연하인 선우와 달달한 로맨스를 그리며 색다른 매력을 어필 중이다.

▶ 덕선♥정환만 있나? 선우母♥택父, 가슴이 뛴다

러브라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특징인 남편 찾기는 이번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덕선의 남편으로는 정환이 유력한 상황이다.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라는 뜻에서 '어남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버스에서 흔들리는 덕선을 지키기 위해 팔 힘줄을 붉으락푸르락하게 세우고, 덕선의 개그에 미소를 애써 숨기려는 그의 모습은 여심을 자극시킨다. 택이 역시 덕선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며 러브라인에 중심에 들어왔다. 덕선에게만 환한 미소를 짓고 "친구가 아니라 여자로 좋아한다"고 마음을 드러냈다. 제작진 역시 덕선의 러브라인의 향방을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덕선의 미래 남편으로 나오는 김주혁의 대사 지문에는 "정환처럼" "택이처럼"이라는 글귀가 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우 엄마와 택이 아빠의 관계 역시 흥미롭다. 두 사람은 과거 고향에서 가깝게 지냈던 사이로 택이 아빠가 아내를 잃고 힘들어하자 선우 엄마의 제안으로 한 동네에 살게 됐다. 두 사람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의지하고 챙겨준다. 10대처럼 풋풋한 관계는 아니지만 무르익은 중년의 로맨스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연상연하 커플인 보라-선우, 운명처럼 만난 정봉과 덕선 친구 장미옥(이민지)의 러브라인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웃의 정과 친구 관계 등 현대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실된 부분들을 '응팔'이 잘 건드렸기 때문에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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