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한 고등학생이 데스노트를 줍게 된다. 죽이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죽는 그 노트를 손에 쥔 청년은 사회악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만의 정의를 실천한다. 그러나 살인을 통해 이뤄지는 그 정의를 차단하기 위해 탐정이 그를 저지하게 된다. 정의와 정의가 맞부딪힌다.

[스포츠한국 조현주기자] 진실 밝히려는 자와 이를 저지하려는 자의 대결이 팽팽하게 펼쳐졌다. 지난 20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데스노트’(Death Note)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두 남자의 숨막히는 대결을 무대에 펼쳐내는데 성공했다. 뮤지컬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홍광호와 김준수는 수준급의 가창력은 물론 섬세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데스노트’는 일본 만화가 오바타 다케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일본에서만 누적 발행 3000만부를 기록했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35개국에 번역·출간됐다.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드라마 방영 역시 앞두고 있다.

이름이 적히면 40초 안에 죽는 데스노트를 통해 범죄자를 처단하고 ‘키라’라는 이름으로 숭배 받는 천재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홍광호)와 이를 저지하려는 명탐정 엘(김준수)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주요 골자다.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회사 ‘호리프로’가 제작해 지난 4월 도쿄에서 세계 초연했다. 라이선스 공연으로 펼쳐지고 있는 한국판 ‘데스노트’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이유에는 탄탄한 원작과 더불어 웨스트엔드 진출 배우인 홍광호와 그룹 JYJ 멤버이자 독보적 티켓파워를 가지고 있는 김준수라는 투 톱 배우에게 거는 기대감이 크게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음색을 지닌 홍광호는 갑자기 솟구치는 고음에서도 완벽한 가창력을 뽐내며 베테랑 뮤지컬 배우다운 면모를 뽐냈다. 데스노트로 법을 대신해 정의를 행하던 라이토가 점차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듯 사람을 죽이는데, 정의를 실현하려는 비장한 눈빛에서 점차 비웃음으로 가득한 가소로운 표정 등 라이토의 감정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연기했다.

독특한 쇳소리의 김준수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고음으로 단조로운 무대에 강렬함을 선사했다. 라이토를 잡고자하는 그의 간절한 바람을 가사뿐 아니라 목소리로도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엘로 완벽 변신한 그의 비주얼이 놀라웠다. 헝클어진 머리에 구분정한 허리,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에 군것질을 할 때의 독특한 손동작 등 만화 속 엘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뮤지컬의 웃음 포인트는 대부분 사신 류크(강홍석)가 맡았는데 능청스러운 엘 역시 관객들에게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짙은 호소력이 돋보이는 홍광호와 ‘송곳’ 같은 쇳소리에 담긴 김준수의 목소리는 다른 개성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화음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듀엣곡 ‘정의는 어디에’는 극의 백미라 봐도 좋다. 폭발적 고음의 홍광호와 귀를 찌르는 듯한 김준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남자 사신 류크와 여자 사신 렘 역을 맡은 강홍석과 박혜나 그리고 라이토의 여자친구 미사 역의 정선아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의 몫을 해냈다. 무엇보다 강홍석은 주인공 못지않은 독보적 존재감을 발휘했다. 유머러스한 연기로 웃음을 책임지다가도 잔인한 악마 같은 모습으로 돌변해 눈길을 모았다.

열두 권 분량에 해당하는 원작 만화를 약 2시간 30분짜리 무대로 압축하기 위해 두 남자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졌는데, 다소 부족한 개연성과 라이토의 말로서 설명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원작이 주는 긴장감을 구현하는 데는 부족해보였다. 화려한 의상과 분장의 뮤지컬에 맛을 들린 관객이라면 다소 밋밋하고 단조로운 무대 구성 역시 아쉬울 수 있다. 8월 15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5만~14만 원.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