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아빠를 부탁해' 딸과 출연하며 아빠로서의 모습 공개

그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워낙 달변이라 평소 한 가지를 물으면 서너가지를 답하는 그이지만 이번에는 좀 동문서답이었다.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 이 사람이 왜 이럴까 생각해봤다. 결론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자식 문제 앞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식은 그렇게 부모를 달라지게 만드는 존재다.

결국, 인터뷰 말미에 원하는 답을 얻었다. '당신에게 자식은 뭐냐'는 반복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못해 놓은 숙제죠. 숙제가 밀렸는데 계속 못했어요. 그런 숙제 같은 겁니다."

SBS TV 관찰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에 딸 혜정(23)과 출연하며 자연인으로서,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배우 조재현(50)을 최근 대학로에서 만났다.

'부녀 관계 회복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와 함께 50대 아빠와 20대 딸의 교감을 보여주는 '아빠를 부탁해'는 요즘 '뜨는' 예능이다. 조재현과 함께 이경규, 조민기, 강석우 등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 4인이 '아빠'로서의 모습을 공개하면서 기존 드라마나 영화,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보여온 '직업인'의 모습을 깨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조재현은 점수가 가장 낮은 아빠다.

최근에도 SBS TV 드라마 '펀치'로 안방극장을 뒤흔들었던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그가 '아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딸과 둘이만 있을 때 어색해서 죽을 것 같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서툴고 무뚝뚝한 아빠다. 배우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딸과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퉁명스러운 아빠만 화면에 남는다. 심지어 지난 18일 방송에서는 그가 딸의 생일이 '12월'인 것만 알고 정확한 날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재현은 "요즘 어딜 가나 혜정이 이야기를 하면서 딸한테 좀 잘 해주라는 말을 듣는다"며 "그런데 사실 다른 가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자기가 그런 아빠라는 것을 잘 모를 뿐이지. 나도 이 프로그램 출연하기 전까지는 내가 딸에게 어떤 아빠였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나랑 딸만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지 우리 가족도 넷이 같이 있을 때는 말이 끊이지 않아요. 내가 딸과 둘이서만 있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또 바쁘긴 했지만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입학식, 운동회 등은 다 챙겼고 가족여행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된 거죠. 강석우 씨나 조민기 씨는 유별난 아빠죠. 안 그래요?(웃음) 이경규 씨는 저랑 비슷하고요. 난 정말 우리 딸이 날 싫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죠."

그렇게 해서 그는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게 됐고, 방송이 시작되고 난 후 4쌍의 부녀 중 조재현 부녀가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다. 평소에도 솔직한 언행의 조재현이 관찰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똑같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꾸밈없고 투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프로그램의 순도를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재현은 "혜정이가 배우 지망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방송 전 여러 논란도 있었고 지금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하기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를 부탁해'가 아니었다면 혜정이에게 아빠의 부재가 그렇게 컸다는 것을 모르고 넘어갔을 겁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요.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웃음) 하지만 내가 잘못해왔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아빠였는지를 그동안 몰랐었다는 것,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알아간다는 게 수확이죠. 1년간 거절하고 고민하다 결국 출연하게 됐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출연하기 잘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우리 딸이 좋아하니까 그걸로 된거죠."

딸 혜정은 '엎드려 절받기'일지라도 어찌 됐든 방송 덕분에 지금껏 아빠와 함께 보내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낸다는 점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다정다감하지 못한 아빠 조재현은 그런 딸의 반응에 짐짓 무심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함을 느낀다.

"미안하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해 미안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24세에 결혼해서 27세에 혜정이를 낳았어요. 너무 어렸죠. 인생에는 다 적당한 때가 있는데 난 너무 빨리 부모가 됐어요. 20대이니 아빠가 됐어도 난 내 꿈을 찾아나섰어요. 자식 귀한 줄 몰랐죠. 그러다 애들이 아빠를 필요로 할 때는 내가 진짜로 바빠졌죠. 똑같이 바빴어도 서른 넘어 결혼해서 애가 생겼다면 아마 더 마음이 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난 너무 어렸어요."

나름대로 내놓은 '변명'이었다. 부연 설명도 있다.

"우리 부모님이 시장에서 맞벌이를 하셔서 난 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삼촌 등 대가족이 함께 살아 집안은 북적거렸지만 난 늘 외로웠어요. 그 속에서 난 모든 걸 스스로 터득해가며 컸어요. 그래서 내 자식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자식에게 다정다감하게 해서 얻는 것도 있지만 너무 그러면 자식이 작아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아빠를 둔 딸 혜정은 '조재현의 딸'임을 내세우지 않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스스로 배우의 길을 찾고 있다. 미국에서 연기학교를 나온 혜정은 지난해 OCN '신의 퀴즈4'에 한회 얼굴을 내밀긴 했지만 이후 줄줄이 오디션에 떨어졌다.

"딸이 연기한다는 것을 말리지도 않지만 도와주지도 않아요. 내가 도와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 느끼고 깨지면서 배우는 거죠. 혜정이가 배우 지망생이기에 '아빠를 부탁해' 출연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딸 데뷔시키려고 이런 프로그램 한다는 소리나 듣고 프로그램도 잘 안되면 너무 피해가 크잖아요. 우리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혜정이도 그런 걸 잘 알아서 '아빠를 부탁해' 방송 이후 들어온 드라마 출연제안을 모두 거절했어요. 나중에 오디션을 봐서 자신의 힘으로 캐스팅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딸이 마냥 어리지만은 않구나 느꼈습니다."

OK, 부녀관계 회복은 좋다. 하지만 배우 조재현으로서는 가정사를 공개하는 것이 연기하는 데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에는 답변이 곧바로 명쾌하게 돌아온다.

"아이고, 내가 무슨 최정상 배우도 아니고,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내 이미지에 별 타격이 없어요. 반대로 크게 얻는 것도 없고요. 내가 신비감이 있는 배우도 아니고…. 이 나이에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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