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두고 부하 여직원 탐하는 모습도 혐오스럽지 않게 느껴져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정현기자]배우 안성기의 가장 대표적인 수식어는 '국민배우'다. 그렇기에 한국영화계에서 '안성기'라는 이름은 무겁다. 이것은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해온 것과 동시에 타의 본보기가 된 것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또한 끊임없이 한국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것, 대중에 친숙함을 유지한 것도 무게를 더했다. 몸담은 한국 영화계에 대한 애정, 때론 쓴소리까지 털어낼 수 있는 이가 바로 그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던 안성기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다 자연스레 성인배우로 성장했다. 그의 대표작을 일일이 열거하긴 힘들다. 58년의 연기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히트작을 내놓았고 이름값을 증명했다. 그가 내놓은 신작 '화장'(감독 임권택ㆍ제작 명필름)은 어쩌면 새로운 도전이다. 충무로에서 보기 힘들었던 중년 남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자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을 소재로 했다.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젊은 부하 여직원을 탐하는 오상무(안성기)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은 바로 안성기가 연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9일 개봉한 영화 '화장'은 지금까지 확인된 안성기의 일백스물여덟 번째이자 거장 임권택 감독의 일백두 번째 작품이다.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가운데 거장과 국민배우, 그리고 충무로 파워맨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모여 화제가 됐다. 원작이 주는 압박감, 그리고 거장의 예리한 칼날 속에 신작을 소화해낸 배우 안성기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에게 여러 가지 도전이 있겠지만 '화장'만큼 세밀한 감정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출연작이 많아도 이번 작품을 놓고 특별하다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죠. 다른 영화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저 오상무가 되어야 했습니다. 감정을 연기하되 보여주면 안되고 관객에게 들켜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연기죠. 아내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절제해야 하는 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에피소드 자체가 저에게 고통을 주는 작품은 흔치 않죠."
"기억이라는 것은 참 야속합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잊히는 것이 순리겠죠. 그저 어떤 시대를 살아간 사람, 배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계속해서 기억해달라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배우로서 그저 묵묵히 연기할 따름입니다."
60세를 놓고 이순이라 한다. 일을 함에 있어 사리에 잘 통하고, 순리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이순을 벌써 3년이나 지난 그 역시 이제는 세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물으니 "젊음이 부러우나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과거에 했던 시행착오를 다시 겪을 자신감이 없다며 웃는다.
"젊음 자체는 참 좋습니다. 여러 가지에 도전할 수 있고, 실패조차 가치 있죠. 제 나이쯤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만요.(웃음) 어린 관객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때를 나는 어떻게 보냈을까'라 생각하곤 해요.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지금부터라도 행복하면 된다고요."
안성기는 영화배우 외에도 꽤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외적인 것에 한눈을 팔진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배우 및 영화인들과 친분을 맺고 교류한다. 최근 진행된 '화장' VIP시사회에 중국의 스타 양조위가 참석한 것은 친분관계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한 민간외교의 일환이기도 하다. 안성기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영화'에 대한 욕심을 밝혔다. 좋은 토양을 만드는 것은 이를 위해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안성기는 '화장'을 거쳐 '명량'을 만들었던 김한민 감독과 손잡는다. 차기작 '사냥'에서 그는 액션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중년의 몸이지만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 못잖은 박력을 갖추겠다는 각오다.
"알고 보니 리암 니슨과 동갑이더군요. 그 역시 다양한 작품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데 저라고 못할 것 있나요. 다음 작품에서는 산을 뛰어다니고 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화장'과는 또 다른 모습이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