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이정현기자] 타이틀곡 하나에 사활을 거는 시대는 지났다. 수록곡 일부를 먼저 공개하는 이른바 선공개 마케팅이 유행하더니 이제 더블 타이틀이 대중음악계 대세가 됐다. 급변하는 음원차트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꺼번에 두 곡의 타이틀을 내세워 시장 석권을 노린다.

가수 입장에서 더블 타이틀은 꽤 구미가 당긴다. 서로 다른 매력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 최근 활동기간이 짧아지는 추세인 만큼 한꺼번에 두 퍼포먼스를 공개함으로써 단기간에 매력을 어필할 수 있다. 또 무게추를 양쪽으로 나눔으로써 단일 곡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인다. 팬덤에 의한 음원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충분히 고려할 만한 방식이다.

▲ 우리는 야누스

지난해 데뷔해 올해 대세로 자리 잡은 레드벨벳(아이린 슬기 웬디 조이 예리)은 더블 타이틀에 최적화되어 있는 걸그룹이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붉은 색과 벨벳실크 같은 부드러운 매력을 다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팀명에 담았다. 이를 증명하듯 이들은 서로 다른 느낌의 곡을 번갈아 내놓았으며 지난 3월 17일 발표한 첫 번째 미니앨범에는 발랄한 느낌의 '아이스크림 케이크'(Ice Cream Cake)와 농염한 '오토매틱'(Automatic) 등 더블 타이틀로 활동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지상파 음악방송 KBS '뮤직뱅크'와 SBS '인기가요' 1위 트로피를 거머쥐며 SM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주력 걸그룹임을 입증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김은아 팀장은 "두 색깔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레드벨벳의 최대 장점"이라면서 "이번에 더블 타이틀을 내놓은 것은 야누스 적인 레드벨벳의 매력을 살리려는 일종의 전략이다. 팀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데뷔곡 '행복'과는 결이 달랐던 '비 내츄럴'(Be Natural)을 곧바로 공개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발랄함과 섹시를 함께 내세우는 투트랙(Two track) 전략은 앞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대중성ㆍ음악성 다 잡는다

대중이 좋아할 곡과 자신의 음악적 색이 언제나 같을 순 없다. 이는 컴백을 앞둔 아티스트가 항상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더블 타이틀이 해법이 된다. 지난 3월 12일 컴백한 가인의 경우 곡 '애플'(Apple)과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웠다. 반응은 뜨거웠다. 전자가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후자는 '파격'을 전제로 하는 가인의 음악적 색깔에 가깝다. 선정성이 문제가 돼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등에서 소개되지는 못했으나 '타이틀'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기에 금방 화제가 됐다. 가인은 "'애플'은 대중을 위한 곡이지만 '파라다이스 로스트'는 대중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곡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바람대로 두 곡은 나란히 음원차트 정상에 오르며 인기를 구가했다.

더블 타이틀은 이전에 유행했던 선공개 마케팅과는 다른 전략이다. 타이틀곡 공개 전 분위기를 다져놓는 장점이 있으나 자칫 기대이하 반응을 얻는다면 아티스트의 사기를 꺾을 수 있고 반대로 선공개곡에 비해 타이틀곡이 흥행하지 못한다면 '본 곡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다. 가인의 홍보를 담당했던 포츈엔터테인먼트의 이진영 대표는 "최근에는 선공개곡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더블 타이틀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곡을 미리 공개했을 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은 곡이 더블 타이틀곡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앨범 '신발장'을 내놓았던 에픽하이(타블로 미쓰라 투컷)의 경우 '헤픈엔딩'과 '스포일러'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웠지만 되려 '본 헤이터'(Born hater)가 더 인기를 얻었다. 트리플 타이틀이라 해도 무방한 가운데 에픽하이의 곡들은 11월 MC몽의 여섯 번째 앨범이 공개되기 전까지 음원차트 정상을 독식했다.

▲ 시너지 나거나 둘 다 놓치거나

더블 타이틀곡을 내세울 때 기대하는 것은 두 곡의 시너지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곡인 만큼 대중에 대한 다각도 접근이 가능하다. 그룹 포미닛(남지현 허가윤 전지윤 김현아 권소현)의 경우 지난 컴백 당시 발라드곡 '추운비'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미쳐'로 단숨에 차트 석권 및 음악 프로그램 트로피까지 따냈다. 최근에는 중국시장에 진출해 QQ차트마저 정복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비록 '추운비'의 음원성적은 아쉬웠지만 '미쳐'의 대성공에 밑거름이 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선공개와 더블 타이틀의 장점을 적절하게 뒤섞은 것이 적중했다.

아무나 더블 타이틀곡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아티스트의 경우 음원싸움에서 집중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등장한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그룹 위너(강승윤 이승훈 송민호 남태현 김진우)의 경우 데뷔부터 더블 타이틀곡을 선택했지만 이전에 방송된 Mnet 경쟁 데뷔프로그램 'WIN'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기에 흥행이 가능했다. 결국 곡 하나에 마케팅을 집중시켜 대중에 이미지를 각인시키느냐 혹은 다양한 곡으로 승부를 보느냐는 가수의 인지도와 음원의 완성도,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와의 경쟁구도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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