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소화 및 CF출연 계약 성사 용이해 '쏠림현상' 심각

[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장르 드라마를 준비 중인 제작사 대표 A가 요즘 짓는 한숨은 깊다. 꽤 좋은 평가를 받는 대본도 확보했고, 지상파 방송사도 편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정작 출연할 배우가 없다. 몇 차례 대본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대본은 좋은데 ‘로코’를 하고 싶다.”

‘로코’는 로맨틱 코미디, 즉 ‘달달한 드라마’를 말한다. 최근 SBS 드라마 ‘상속자들’과 ‘별에서 온 그대’가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며 주연을 맡은 남녀 주인공이 각광을 받자 쏠림현상은 더 심해졌다.

왜 스타들은 ‘로코’에 집착할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뻔한 사랑놀음’이라 지적하지만 사랑 이야기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같은 이야기도 남녀 주연 배우의 어울림과 화학작용에 따라 대중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대중적인 장르인 드라마를 만들며 남녀노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소재인 '로맨틱한 사랑’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건 부인 못한다.

웃음 역시 지극히 보편적 정서다.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를 집필하며 대세로 떠오른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에는 항상 웃음이 넘친다. ‘로코의 여왕’으로 불린 김은숙 작가의 작품 속에도 웃음 코드는 빠지지 않는다. 웃음 코드는 작품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를 높이고 이는 출연 배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로 연결된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주중 미니시리즈는 통상 16~20부작으로 제작된다. ‘대장금’ ‘선덕여왕’ 등 소위 ‘대박’을 친 50부작 사극처럼 이야기를 벌릴 수가 없다. 경제적인 부분 뿐만 시간적 공간적 제약도 고려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대부분 현대극일 수밖에 없고, 직업군만 바뀔 뿐 뻔한 사랑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스타들이 로코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다. 광고 계약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인기는 출연 배우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광고 섭외로 이어진다. 그들이 이미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제품이 드라마 속 PPL로 배치되기도 하고, 역으로 PPL을 넣었던 업체가 출연 배우에게 정식 CF모델 계약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로코는 PPL을 유치하기 쉽다. 의류 액세서리 휴대폰 커피 화장품 등 CF 주요 품목이 대부분 PPL로 들어온다. 스타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광고 계약 임을 감안하면 PPL을 넣기 힘든 사극이나 장르물을 기피하고 로코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생존 논리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스타들의 행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르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자기 배만 불리겠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로코'를 외치면 이에 발맞춰 외주제작사들도 우후죽순 격으로 로코만 기획한다. 이런 편중 현상에 대중은 싫증을 느끼고 결국 드라마 시장의 하향 평준화로 귀결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드라마는 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쓰리데이즈’(극본 김은희, 연출 신경수)는 장르물 임에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광고 완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광고 판매 금액은 100% 방송사로 귀속되는 것을 감안하면 SBS의 효자라 할 수 있다. 주연 배우인 박유천 역시 이미 ‘쓰리 데이즈’가 소개된 중국을 비롯해 국ㆍ내외에서 광고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장르물도 잘 만들면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의미다.

SBS ‘신의 선물’(극본 최란, 연출 이동훈) 역시 호평받고 있다.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있지만 탄탄한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tvN 드라마 ‘갑동이’ 역시 ‘잘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장르물인 세 작품 모두 호평받으며 출연 배우들도 각광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 지 모르는 일 아닌가. 스타와 매니저 입장에서는 성공 확률을 높이려 노력할 수밖에 없고, 결국 로코에 집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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