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극본 이경희ㆍ연출 김진원ㆍ이하 착한남자)는 늘 강마루(송중기)의 거꾸로 돌아가는 회중시계로 시작을 열었다. 회중시계는 마지막 회에서야 제대로 흘러갔고 7년 뒤 강마루와 서은기(문채원)의 해피엔딩에 종착했다. '착한남자'의 주인공은 마루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라고 바라본 이는 은기였다. '착한남자'의 화자이자 관찰자, 설명자는 곧 서은기를 연기한 배우 문채원이었던 셈이다. 드라마가 종방된 지 3주 만에 만난 문채원. 이제는 그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고 싶어졌다.

#D-14

고마운 작가님
"가까이서 봐야 예쁜 꽃이 돼라" 한마디

'착한남자'의 이경희 작가는 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는 열린 마인드로 정평이 나있다. '내가 쓴 대본이 아니라 그 대본을 표현하는 네 연기가 무조건 맞다'는 주의. 첫 방송을 2주 앞두고 긴장감과 불안감이 한껏 높았던 문채원. 그는 이경희 작가의 문자메시지 한 통에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캐릭터를 선택했냐'며 걱정이 많았어요. 그때 마침 작가님께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오래 봐야 예쁘고 가까이서 봐야 예쁘다. 그런 꽃이 돼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었어요. 조급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저로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위로였죠.(웃음) 앞으로도 제가 배우 인생을 살면서 힘이 돼줄 말이에요."

#1회

간절한 기다림
"기다려 주세요… 아직 못 보여드렸어요"

'착한남자' 방송 초반에 극중 은기는 태산그룹의 이사이자 후계자로 안하무인의 냉철한 캐릭터였다. 말 끝마다 욕이 붙었다.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다 한번 '터지면' 독설의 끝을 달렸다. 자동차를 거칠게 몰았고 오토바이도 즐겨 탔다. 첫 회가 방송된 후 '문채원이 달라졌다'는 시청자의 반응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다.

"드라마는 물론 은기까지 큰 사랑을 받은 걸 보면서 배우는 역시 혼자 하는 일이 아니구나 라는 걸 또 알게 됐어요. 3회까지는 제 비중이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청자 분들께 부탁을 드렸었죠. 1회를 보고 재미있으셨다면 2회도 봐주시고, 3,4회도 지켜봐 달라고요. '저 좀 기다려주세요. 아직 못 보여드렸습니다'라는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아요."

#5회

은기의 첫 경험
"이렇게 와르르 무너져도 되나"

문채원의 바람대로 시청자들은 그를 지켜봤다. 그리고 은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상은 5회에 이르러 흥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얼음장 같았던 은기가 마루에게 흠뻑 빠진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은기의 '첫 경험'에 시청자들의 눈에도 따뜻함이 서렸다.

"굉장히 중요한 회였어요, 저에게. 일본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이경희 작가님께서 문자메시지로 '어때, 이제 마루랑 붙으니까 좀 살 것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무조건 사랑스럽게 보여야 했어요. 처음 치마를 입고 처음 화장을 하고 처음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 거였으니까요. '저 여태까지 이렇게 차가웠는데, 5회에서 완전히 무너져도 되요?'라고 작가님께 여쭸더니, '와르르 무너져도 돼'라고 하셨죠."

#9회

나 홀로 마지막 회
"확 변한 은기… 혼자 멍하니 외로웠다"

사랑 앞에 무너진 은기였지만 사람은 한 순간에 변하기 어렵다. 결정적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은기는 극 중반 자동차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었다. 아이처럼 순수해졌다. 재희를 얻기 위해 자신을 악용했던 마루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 남자라며 따랐던 것도 망가진 뇌 때문이었다.

"9회에서 은기가 사고를 당한 뒤 깨어났어요. A처럼 살았던 은기가 B라는 사람으로 한 순간에 바뀌어야 했죠. 어려웠어요. 확 변해도 되나, 시청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적응할 수 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죠. 혼자서 '착한남자'를 종방하는 느낌이랄 까요.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 사이에서 저 혼자 멍하니 외롭기도 했어요."

#19회

해피엔딩
"마루 죽이지 마세요"작가님 졸라

문채원은 '착한남자'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싫었을 것" 같았다. 드라마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그 만의 철학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은기와 마루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상처받은 영혼들의 행복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19회 은기의 내레이션에서 "우리를 뜯어말릴 많은 사람들을 믿고, 다시 한번 뛰어들어도 되는 거잖아"라며 마루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대목은 문채원의 심장을 뛰게 했다.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랑'이었어요. 상처투성이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어떤 건지, 평범한 연애란 어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지,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작가님과 김진원 PD님에게 늘 그랬어요. '마루 죽이지 마세요' '제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주세요'라고요. 새드엔딩이어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저는 대만족입니다."

#또 다른 1회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배짱
"조금 어려워도 새로움에 도전할래"

지난해 드라마 '공주의 남자'와 영화 '최종병기 활'로 사랑 받은 문채원.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 받은 것도 이때였고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준 것도 같은 시기였다. 차기작에서 보여줄 모습이 '배우' 문채원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패였다. 어떤 작품도 쉽다 말할 순 없지만 정통멜로인 '착한남자'는 더욱 그랬다.

"배우가 결국 얻고 싶은 건 다양한 매력인 것 같아요. 잘할 수 있는 것을 알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도 좋죠. 하지만 보여드렸던 1에서 좀 더 발전된 2에 도전하는 것이 배우로서 예의고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남자'의 은기를 선택한 것도 지난해 받은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발전된 캐릭터라고 믿었기 때문이고요. 다음 작품 역시 이런 마음으로 임하게 되겠죠? '이런 건 본 적이 없다'는 인상을 또 심어드리고 싶어요.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길을 걷는 게 제 유일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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