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짱] 영화 '스카우트' 엄지원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배우 엄지원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알랭 드 보통의 이런 말을 빌어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영화 (감독 김현석ㆍ제작 두루미필름ㆍ15일 개봉) 촬영을 마친 뒤 파리 바르셀로나 말라가 그라나다 코르도바 톨레도 마드리드를 다녀와서 남긴 글이다.

그랬다. 엄지원은 최근 부산영화제에서 화려한 드레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듯 겉만 화려한 배우가 아니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행을 하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꽉 찬 열매 같았다.

#여행자 엄지원

엄지원은 지난 8월 를 마치고 스페인 남부와 프랑스를 여행했다. 30kg에 육박하는 짐을 혼자 끙끙대며 극성맞게 들고 다녔다. 친한 여자친구 한 명과 같이 동행했으니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매니저의 도움을 받는 ‘배우 엄지원’은 온데 간데 없었다.

“가우디 등 건축이 유명한 나라라 책이 욕심나서 건축 관련 책들을 샀더니 짐이 더욱 무거워졌죠. 글쎄,책만 9kg이나 나간 거 있죠! 버스나 기차로 이동할 때마다 ‘내가 이 쇼핑을 왜 했지?’하곤 후회했죠, 호호.”

말과 달리 표정만은 뿌듯해 보였다. 왜 스페인이 ‘정열의 나라’ ‘태양의 나라’인지 알게 되었다며 씨에스타(낮잠)를 잘 수 밖에 없는 기후조건을 이야기했다.

엄지원은 ‘경제력이 될 때 부터 조금씩 혼자’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여행의 어떤 점 때문에 엄지원은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것일까.

“일상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삶이라 자유롭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른 현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해나 관점 세계관이 넓어진다고나 할까요.”

#배우 엄지원

“제가 A형인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죠. 소심하거나 뒤끝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이죠.” 엄지원은 평소의 시원시원한 성격 덕분에 주변에서 자신의 혈액형을 잘 모른다고 했다.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배우 엄지원은 등 흥행보다 작품성으로 평가 받은 영화에 더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제작보고회에서 김현석 감독이 엄지원에 대해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배우”라고 농을 걸며 “사실은 재미있는 면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엄지원은 사실 이 작품의 세진 역을 고사했었다. ‘임창정의 첫사랑’보다 여성 중심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에 가 나타나 출연을 하게 됐다.

“평소 꿈을 잘 안 꾸는데 촬영하는 꿈을 꾼 거에요. 뇌리에 남아서 매니저에게 연락했죠. 이 작품을 해야 할 것 같다고요.”

스무살 똑똑하고 당찬 세영에서 7년 뒤 의식이 깨어있는 운동권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이게 됐다. 1980년 스카우터 호창(임창정)이 괴물투수 선동렬을 찾아 광주에서 스카우트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5.18 광주항쟁까지 버무려진다.

“그 시대에는 대학생이면 누구나 사회적인 의식이 없을 수 없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망보다 사회적인 욕망이 중요한 시절이었으니까요.”

엄지원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임창정과 첫 호흡이었지만 워낙 평소에도 익살스러운 성격이라 촬영장은 화기애애했단다. “감독님도 ‘고급유머’를 구사해서 항상 웃었죠. 늘 현장에서 오픈되어 있어 서로 의견을 나눴고요. 그게 영화의 매력 같아요.”

의 우정 출연을 앞두고 있는 엄지원은 앞으로 좀 더 동적이고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메릴 스트립이나 다이안 레인처럼 성숙할 수록 기품이 있는 여배우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자연인 엄지원

평소 엄지원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보다 지인과 깊게 우정을 주고 받는 편이다. 엄지원은 예전엔 친구들을 한꺼번에 10명씩 만나봤지만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가 있어서 조절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통의 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제 제 취향과 스타일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예전에는 마냥 한없이 좋은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졌어요.”

엄지원은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와 연애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웃었다.

“제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 잘 해줘도 마음이 안 움직이던걸요. 처음에 아니면 끝까지 아니더라고요.”

엄지원은 그동안 공부 잘 해 좋은 대학 가려던 목표, 그 이후 방송을 하고 싶은 소망, 또 연기를 하고 싶던 마음을 다 이뤘고 이제는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울 때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좋은 배우’라는 목표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립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기회가 된다면 책도 쓰고 싶다는 그는 야무진 배우였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