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오 기자의 연예萬事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감히'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 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셰익스피어의 '자살에 관한 문학적 견해'로 보이지만 이를 '옳을 수도 있다'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스스로 자신을 죽음의 집으로 내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숨을 쉬는 사람으로서 죽음의 문턱 너머보다 지금이 낫다고 우기고 싶을 뿐이다.

또 한 명의 연예인이 죽었다. 故 김형은에게는 그리도 간절했던 삶을 가수 유니는 스스로 내던졌다. 유서는 물론 죽음의 징후조차 발견할 수 없었기에 허망할 뿐이다.

언론에서는 '왜'라는 것에 천착하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우울증, 앨범발매에 대한 압박, 안티 누리꾼과 악플러로 말미암은 고민…. 하지만 어디 한가지 이유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언론은 또 부질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글루미 선데이 신드롬'일까? '글루미 선데이 신드롬'은 1935년 레조 세리스(Rezso Seress)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직후부터 헝가리인 187명이 연달아 자살을 한 데에 따른 것이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자살행렬은 헝가리는 물론 전 세계를 덮쳤다. 일부에서는 레조 세리스의 저음이 '죽음으로 질주하는 우울'을 불렀기 때문이라고 지난 21일 일요일 아침, 유니가 '글루미 선데이'를 들었을리도 만무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니와 단독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사람에 대한 시련도 많았지만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러 가지 악성 입방아가 그녀를 짓눌렀지만 다른 연예인처럼 대놓고 싸울 성격도 아니었다. 그만큼 여린 모습이었다.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면 노출에 대해서도 수줍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처럼 여린 그녀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도 있을 게다.

자살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을 보여주는 '자살의 연구(알프레드 알바레즈 저, 청하 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직 죽음만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 또한 옳지 않아 보인다. 생을 선택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매캐한 죽음보다 상처입고 시든 삶이 그나마 화창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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