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8년, 연기대상 최우수상으로 무명 설움 털어

1998년 데뷔.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 길게 이어진 무명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뭔가 될 것 같다가도 힘을 받지 못하는 일의 연속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인기가 실력의 척도가 돼 버린 코미디계에서 정성호가 별다른 유명세 없이 흐른 세월과 함께 '선배'가 돼 있을 무렵 행운의 신은 '주연아~'를 부르며 나타났다.

MBC 코미디언 공채 9기. 그러니까 올해로 활동 9년차를 시작하는 개그맨 정성호. '정성호'라는 이름 보다는 '주연아' 라는 코너 이름이 더 친숙할 정도로 그는 알려지지 않은 개그맨이었다.

"IMF 시절 신인 생활을 시작했었죠. 다른 방송사는 시험을 쳐보지도 못했는데 MBC 공채에 덜컥 붙더군요.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동안 다른 방송사쪽은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오늘은 좋은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으니 MBC 코미디 프로그램이 한창 힘을 받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해 MBC 코미디 프로그램의 침체기까지 골고루 겪은 'MBC 맨'이다.

프로그램 탓하지 않고 아이디어 개발에만 몰두

"다른 방송사로 옮길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탓하기 보다는 아이디어를 짜고 후배들과 머리를 모으는데 힘썼죠."

상대적으로 KBS의 '개그콘서트'와 SBS의 '웃찾사'가 큰 인기를 얻었던 몇 년 동안 활동 무대를 옮겨볼 수도 있었지만 'MBC에서 개그 프로그램은 안된다'는 공식이 생겨버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제가 선배가 돼 있더군요. 후배들을 보면서 어디로 가서 내가 잘 돼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내가 속한 곳에서 빛을 봐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못했지만요."

그렇게 절치부심 개그를 '갈고 닦는' 시간 동안 정성호는 제법 재주 있는 개그맨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백윤식씨나 한석규씨 성대모사를 이용한 개그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었어요. 하지만 '잘한다'는 말과 상관 없이 시청률이나 인기 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정말 '시청률에 저주가 내렸나' 싶을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다 정성호에게도 빛이 보이는 날이 왔다. '사모님'이라는 걸출한 코너와 함께 프로그램 '개그야'가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감춰져 있던 코너였던 '크레이지'와 '주연아' 등 그가 출연한 코너들이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코너가 좋아도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으면 코너를 만드는 수고가 무의미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사모님' 코너가 화제에 오르면서 '크레이지'나 '주연아' 코너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거죠."

어찌 보면 '주연아'는 정성호가 그동안 해온 개그의 집합체나 마찬가지다. 코너에서 정성호가 쓰는 말투는 영화배우 한석규의 성대모사를 기본으로 하고 몇몇 에피소드 역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따오는 등 정성호의 경험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다.

'주연아' 코너는 '정성호 표' 개그의 집합체

"비슷한 캐릭터 성대 모사를 오랜 시간 계속 하느냐는 지적을 받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되 새로운 포장을 입혀 가자는 생각으로 코너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어쩌면 그동안 능력은 인정받되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과거가 정성호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제 외모가 개그맨 치고는 평범해요. 아주 잘생기지도 아주 못생기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수염 하나만 붙여도 못 알아보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면에서 데뷔한 지는 오래됐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새 얼굴인 셈이죠."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술 파는 바를 열어보기도 하고 잠깐씩 '한눈'도 팔아봤다는 정성호.

"특별히 잘되는 게 없었어요.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 코미디를 계속 하는 게 제 길이었나보죠. 그래도 이제야 작은 빛이라도 볼 수 있으니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질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무명의 시절을 거친 정성호에게 후배들은 더없이 중요한 존재. 자신과 함께 활동하는 동지임과 동시에 그동안 밟아온 길을 따라올 동생들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리허설 중인 후배들을 위해 전화로 "피자 10판이요"라며 주문을 하는 정성호. "공채이면서도 무명인 저를 선배로 대해준 후배들에게 감사해요. 그만큼 지금의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자극제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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