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결혼과 안타까운 이혼 뒤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닮은 꼴 여배우의 행보

지난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된 7월 중순 무렵이었던 것 같다. MBC 방송센터 3층에 자리잡고 있는 드라마국에서 최진실은 국장실 한켠에 앉아 매니저 한명과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 왕년의 스타 최진실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검은 색 선글라스를 낀채 목늘어난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은 수수한 복장으로 착착함을 가누지 못하고 조용히 소리죽여 울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국장이 '할말 없다'며 나간 자리에서 혼자 울고 있던 최진실의 당시 현안은 이랬다. KBS의 새 수목극 '장밋빛 인생'에 출연을 허락받기 위해서 MBC에 전속계약으로 묶인 88회(1시간 기준)의 출연 잔여분량문제가 해결되야 하는 상황이었다.

MBC는 남은 출연분량을 소화하기전에는 KBS 드라마 출연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최진실은 당장 MBC에 출연할 것이 없으니 마침 캐스팅 제의가 온 KBS '장밋빛 인생'에 출연을 허락해달라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MBC는 떠들썩한 결혼과 역시 온 이목을 집중시킨 이혼으로 사회적 파장과 관심을 끌었던 최진실을 당장 쓸 생각은 없었고 그렇다고 혹시나 최진실의 내재된 성공 가능성을 떨떠름하게 여긴 까닭에 다른 방송사 출연을 막았던 것이다. 만일 출연을 강행한다면 방송 출연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는 으름짱까지 놓았다.

최진실은 절박했다. 이혼후 어떻게든 재기해보려 했지만 누구도 이혼과정 상에 대중에 적나라하게 비쳐졌던 스캔들 성 문제가 드라마 출연에 지장을 주고 있어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과거 자신을 대스타로 만들어준 MBC를 찾아 설득하고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허락을 구했지만 최진실은 벽에 부닥친 듯 좌절하고 말았다. KBS 출연을 강행하니 결국 가처분 신청이 접수됐다.

드라마 시작 직전에야 비로소 MBC가 소 취하를 하면서 국면은 극적으로 타개됐다. 최진실은 이에 용기백배해 남편의 불륜에 이혼까지 당하고 암까지 걸려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여주인공 '맹순이'역할을 드라마틱하게 소화하면서 부활했다.

최진실의 실제 파란 만장했던 결혼생활과 드라마 속 맹순이가 묘하게 오버랩되어 시청자들의 눈물을 쏟게 했고 대박 시청률인 40%를 넘나들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시작전 더 이상은 최진실을 보기 싫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지만 드라마가 이어지면서 그녀의 진실된 연기와 실제 스타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그녀가 겪은 실제 삶을 떠올리며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최진실은 부활(?)했다. 그리고 연말에 시작될 MBC 새 일일극 주인공으로 다시 캐스팅됐다.

신산했던 삶을 딛고 체화된 연기 선보여

이번에는 고현정 차례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연기를 시작, 수도꼭지 시청률을 기록했던 SBS '모래시계'의 공주 같은 자태로 남자들의 로망이 되었던 90년대 스타 고현정은 가장 화려한 시절 재벌가 자제와 결혼함으로써 연예인 여성 스타가 보여줄 수 있는 성공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 샘플이었다.

결혼 만큼이나 이혼도 드라마틱했던 고현정은 첫 복귀작을 2005년 초 SBS '봄날'로 정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과거 공주이미지를 품은 고현정이 달라지지 않고 과거 모습의 연장선 같아서인지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어 고현정은 연기활동을 통틀어 올해 여름 작가주의적 연출을 보여온 홍상수 감독과 손을 잡고 '해변의 여인'으로 파격변신을 예고했다. 비록 20만정도 흥행에 그쳤지만 고현정의 영화속 모습은 대단했다. 거칠고 솔직하고 수더분한 영화속 고현정의 모습은 낯설지만 관객에겐 기대와 상반된 쾌감을 주는 부분이 분명있었다.

이제껏 재벌가 며느리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포기하고 性에 대해 자유분방한 노처녀로 등장해 서민들의 거친 욕을 섞어가며 대중과의 눈높이를 새롭게 했다.

영화 개봉이후 연이어 캐스팅된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낮은데로 임하고(?) 있다. 고현정이 맡은 역할은 18세 미만 구독금지 성인잡지 '쎄시봉'에서 음란 소설을 창작하는 3류잡지 여기자 역할이다. 이미 10회가 나간 상태로 고현정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고현정은 바바리맨 흉내를 내기도 하고, 연하의 친구 남동생과 하룻밤을 보내는 사고를 치는가 하면, 상상씬이긴 하지만 남성과의 뜨거운 정사 장면을 연기로써 과감히 보여주며 과거이미지와는 360도 달라진 파격을 선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이 고현정에게 반응하는 데는 그녀의 앞선 공주같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망가진 모습 때문이다. 과연 고현정이 국내 굴지 재벌가 3세의 부인이자 며느리였는지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할만한 연기를 보여주는데서 혼란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극중에서 고현정의 엄마로 등장하는 중견 연기자 윤여정은 고현정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내가 이 드라마를 하라고 했다. 언제까지 광고속 공주이미지로 살아갈래?. 이제 현실로 내려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진실과 고현정이 시청자들에게 소구하는 공통점은 모두 최고의 스타였고 또 가장 화려한 결혼으로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으나 누구보다 뼈아픈 이혼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시작하고 있다. 과거의 영화를 잊고 이제 진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그들이 가장 꽃다운 시절 그 청순함으로 승부하려 했다면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우야 뭐하니'의 김남원 CP(책임 PD)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다시 반응하는 이유는 이제 그들이 잠시 지나가는 '스타'에서 내려와 진짜 '연기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산했던 최진실-고현정의 실제 삶이 연기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오며 시청자들에게 사실감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그들의 강점(?)이 되고 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