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제품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친근한 상호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제품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대표 제품군과 그 제조업체의 성장 이면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스포츠한국 이승택 기자]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의 역사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와 궤를 같이 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국내를 대표하는 국민자동차 기업을 넘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자동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46년 설립한 현대자동차공업사와 1947년 세운 현대토건사가 모체다. 1960년대 건설업으로 큰 돈을 번 정 회장은 1967년 포드와 합작회사로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현대자동차는 1968년 11월부터 코티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9년에는 포드의 대형차인 20M, 1974년에는 뉴 코티나를 잇따라 출시했다. 하지만 포드 차량을 가져다 단순 조립 생산하는 방식이었던만큼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 국산 고유모델 1호 ‘포니’

정주영 회장과 정 회장의 동생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은 이에 독자적인 고유 모델 개발을 결단하게 된다. 현대차가 독자 모델 개발에 착수하자 일본은 물론 해외 자동차업계는 기술력도 없는 한국이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정 회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뚝심으로 국산차 개발을 추진해 나갔다.

현대자동차 경영진은 전 세계 투자자들을 찾아 다니며 차관을 끌어왔다. 기술적인 문제는 미쓰비시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해결했다. 현대자동차는 기본 엔진을 1.3리터급에 맞추고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설계는 만토바니에게 의뢰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손에서 탄생한 포니의 뒷모습
쥬지아로는 5인승 4도어 모델과 4인승 2도어 쿠페 두 모델을 제시했고, 이 중 4도어 모델이 최종 선정됐다. 여기에 미쓰비시의 4기통 1238cc 새턴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얹은 현대의 첫 독자모델 '포니'가 탄생했다. 포니는 개발에 돌입한 지 불과 1년 6개월 만인 1974년 10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됐다.

현대자동차는 1975년 12월 울산에 연간 생산능력 10만 대 규모의 종합공장을 세우고 1976년부터 4도어 해치백 포니1의 양산에 돌입했다. 한국은 포니 개발 성공으로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자동차 고유모델을 가진 국가가 됐다. 당시 포니의 판매가격은 대당 200만원. 잠실주공 15평 아파트 한 채 가격이 400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고가였다.

이처럼 높은 가격에도 포니는 첫 해에만 1만726대가 팔려나가 단숨에 국내 승용차 시장점유율 43.5%를 차지했다. 1976년 7월에는 국산차 최초로 에콰도르에 처녀 수출했으며, 1986년 1월에는 자동차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 '포니 엑셀' 1000대를 첫 수출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세대 쏘나타의 실패를 딛고 1988년 출시된 Y2 쏘나타
◆ 마이카 시대의 주역.. 국민 중형차 ‘쏘나타'

포니의 성공에 이어 현대자동차는 1984년 'Y2'프로젝트를 통해 수출 전략형 중형차 쏘나타 개발에 착수했다. 4년여의 연구 끝에 1988년 마침내 ‘Y2’, 즉 ‘쏘나타’가 탄생했다. 이름은 미국 현지 딜러들의 의견을 반영해 ‘SONATA’의 영문 철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한글 표기만 ‘쏘나타’로 바꿨다. 차의 성능과 디자인은 기존 모델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현대차는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였다. 쏘나타는 초창기 미국 시장에서 뼈 아픈 실패를 맛봐야 했다.

이어 1993년 출시된 ‘쏘나타Ⅱ’는 국산 중형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 중형차’라는 애칭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은 쏘나타Ⅱ의 디자인을 최고로 평가할 정도로 쏘나타 시리즈 중 명작으로 꼽힌다.

1998년 나온 4세대 모델 ‘EF쏘나타’는 현대차가 기술 독립을 선언한 차였다. 쏘나타가 미국 시장에서 찬사를 받은 것도 EF쏘나타의 부분 변경 모델인 ‘뉴 EF쏘나타’(2001년)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현대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5세대, 6세대, 7세대에 이어 지난해 8세대 쏘나타를 내놓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상품성을 입증했다.

지난 4월 출시된 8세대 쏘나타
쏘나타는 신모델이 나올 때마다 갖가지 화제를 낳았다. 1990년대 말 국내에선 한때 쏘나타의 ‘S’를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쏘나타Ⅲ의 ‘Ⅲ’은 대학수능시험 300점을 보장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때문에 전국적으로 입시철만 되면 쏘나타 엠블럼을 교체하는 웃지 못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다

현대자동차의 첫 고유 모델 포니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현대는 1976년 7월 남미 에콰도르에 5대를 시작으로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 포니를 수출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초창기부터 기술 독립을 통한 현대자동차의 글로벌화를 꿈꿨다. 1983년 캐나다 현지법인(HMC)과 1985년 미국 현지법인(HMA)을 설립한 현대차는 마침내 1986년 포니2의 후계차인 소형차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에는 기아차를 인수해 명실상부한 자동차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현대차의 울산공장 인근 수출 선적장에 수출차량이 수출선에 오르기 전 대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999년만 해도 세계 자동차시장 판매량 10위권 밖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0년 처음으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마침내 2010년에는 포드를 제치고 글로벌 판매량 5위에 올랐다.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 시장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18년 미국 시장 진출 33년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 대를 돌파하는 눈부신 성과를 달성했다. 당시 기준으로 현대차는 1222만4199대를, 1994년 미국에 첫 진출한 기아차는 784만 4851대를 팔았다.

현대차는 미국 진출 5년 만인 1989년 누적판매량 100만 대, 2004년 500만 대, 2011년 1000만 대를 돌파했다. 2011년 이후에는 매년 100만 대 넘게 팔았다. 1000만 대 돌파까지 26년이 걸린 데 비해, 2000만 대 돌파까지는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8월에는 창사 52년 만에 글로벌 판매 8000만대의 금자탑을 쌓았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 2분기 미국에서 27만699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전년 동기(35만9796대) 대비 24.8% 급감한 수치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붕괴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 전기차와 수소차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시장으로 불리는 전기차와 수소차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2020년 1분기 총 2만4116대의 순수 전기차를 판매해 테슬라(8만8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3만9355대), 폭스바겐그룹(3만3846대)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현대기아차는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이 중 절반이 넘는 23종을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2025년에는 전기차를 100만대 판매하고, 시장점유율을 10% 이상 기록해 전기차 부문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FCEV) 양산 체제를 구축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넥쏘의 인기에 힘입어 수소전기차 출시 7년 만에 글로벌 누적판매 1만대를 돌파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수소전기차 총 판매량이 1만대를 넘어선 것은 도요타에 이어 현대차가 두 번째다. 국내에선 7740대, 해외에서 2404대가 판매됐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수소전기차 연간 판매량을 11만 대로 늘리고,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 규모의 수소전기차 생산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수소 상용차 시장에도 공을 쏟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XCIENT Fuel Cell)' 10대를 스위스에 수출했다. 현대차는 스위스 H2에너지사에 수소전기 트럭을 올해 말까지 40대, 2025년까지 1600대 공급할 예정이다. 아울러 수소트럭 공급 지역을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고, 북미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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